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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말랑 Oct 27. 2024

경찰서 간 적 있어?


은수 : 쇼핑몰 하다 보면 다들 경찰서 한번씩 간다던데 너도 간 적 있어?
나 : 아니 경찰서까지 간 건 아닌데 최근에 저작권 때문에 골치 아팠던 적은 있지.



갑자기 빠른 정산이 중단됐다. 빠른 정산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된 상품을 발송후 송장번호를 입력하고 택배사 집하가 찍히면 다음날 바로 상품대금과 배송비가 입금 되는 시스템이다. 쿠팡이 정산에 1~2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반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는 빠른정산을 하면 바로 다음날 돈이 들어온다. 자금이 막힐 일이 없다. 오늘 판매한 상품이 내일 바로 입금이 되는 느낌이다. 신용카드 정산 입금보다 훨씬 빠르다. 그래서 택배 마감 시간이 가까워질 때 주문이 들어와도 웬만하면 다 챙겨서 보내려고 한다. 택배님이 도착하실 때까지 마지막 택배포장을 멈출 수가 없다. 보내는 대로 내일 입금이 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이런 빠른정산 서비스를 안 쓸 이유가 없다. 그런데 패널티로 인해 덜컥 서비스 중단 통보를 받은 것이다.


쇼핑몰 내에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에 선정 기준에 오류가 있나 보다 하고 다음달이 되면 풀리겠지 하며 기다렸다. 빠른 정산 심사일인 2일이 되었는데 여전히 빠른 정산은 중단상태였다. 고객 센터를 통해 확인해 보니 가품/이미테이션 판매 신고가 들어와서 빠른 정산이 중단됐다고 했다. 패널티로 몇 개월 정지가 되는 것인지 물었더니 영구정지라고 했다. 문제가 되는 상품을 찾아보니 명품브랜드와 비슷한 패턴으로 만들어진 머리끈이었다. 네이버 고객센터에서는 해당 명품업체로부터 정품인증서를 받아 정품임을 소명하면 다시 빠른정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해당 브랜드는 내가 판매하는 것과 같은 머리끈을 팔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정품임을 소명할 수 있겠는가.


나는 네이버 고객센터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상품은 가품/이미테이션이 아니다. 해당 브랜드명을 상품명이나 상세페이지에 표기하지도 않았고 해당 브랜드에 유사한 상품도 없다. 비슷한 색상을 사용했을 뿐 패턴도 다르다. 그러니 가품/이미테이션 일 수 없다. 패널티 사유를 저작권법 위반이나 다른 사유로 변경해 줄 수 있느냐고 여러 차례 문의했다. 하지만 고객센터에서는 위반 사유에 맞게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다고만 반복했다. 그렇게 빠른 정산이 중단되고 정산 받는데 평균 7일 이상 걸렸다.


성수기가 되고 매출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정산이 안 되고 묶인 돈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매출이 늘어나는 시점에는 팔리는 것보다 더 많은 재고를 좀 더 확보해 두어야 하는데 네이버에 일주일치 매출이 묶여 있으니 답답했다.


해당 브랜드에 연락해서 풀어보기로 했다. 괜히 연락했다가 상품 패널티가 아니라 경찰 고발을 당할까 무서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나는 브랜드 고객센터 카톡상담에 사연을 적어 해당 상품 신고를 취하해 줄 수 있는지 문의했다. 고객센터에서 바로 답변 드리기 어려우니 담당자 확인 후 연락처로 연락을 준다는 답변이 왔다. 갑자기 로펌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머리가 띵했다. 괜히 긁어부스럼을 만들었구나. 그냥 둘걸. 보통 이렇게 변호사가 연락오는 경우 합의를 위해 거액의 합의금을 요청할 게 뻔했다. 변호사는 우리가 팔았던 상품 이미지와 상품 금액, 판매 내역을 전달해 달라고 했다. 가슴이 두근거려 오후 내내 아무 일도 못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의 일이 무서워서 일주일 넘게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사실 굳이 해결하지 않아도 쇼핑몰 운영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일이었다. 정산을 조금 늦게 받을 뿐이지 못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른 척 넘어가고 싶었다. 이대로 조용히 묻히기를 숨죽여기다렸다. 


변호사에게서 자료를 언제쯤 보내줄 것인지 일정을 묻는 메일이 왔다. 나는 자료를 보낼 생각이 없었기에 변호사를 설득하려고 했다. 자료를 보내는 순간 내가 내 죄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패널티와 동시에 상품 페이지가 내려가서 더 이상 상품 페이지에 접근할 수 없고 남은 재고도 모두 폐기해서 이미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수입한지 오래됐고 소량이어서 도매처에서도 사진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변호사는 무슨 자료든 보내라고 했다. 나는 합의금 장사를 하려는 게 확실하다는 확신이 섰다. 더 무서웠다. 이미 내 이름과 전화번호, 쇼핑몰 이름은 모두 변호사에게 전달된 상태였다. 판매내역은 없고 비슷한 상품 사진을 찾아서 보내 볼께요. 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상품 사진과 함께 상품 금액 5900원. 판매내역 없음. 변호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 변호사는 서약서를 보내왔다. 나는 디자인을 도용한 상품을 판매했음을 인정한다. 이후의 모든 책임에 대한 변상을 책임진다. 서약서 작성 이후에도 유사한 상품을 판매할 경우 위약의 벌로 합의금과 별도로 1000만원을 낸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새가슴은 두근두근 했다. 이걸 보내면 내가 범죄자가 될 것 같았다. 서약서를 열어두고 오후 내내 고민했다. 합의 금액이 얼마인지 적혀 있지도 않아서 실제로 내가 얼마를 손해 봐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한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이런걸 서약을 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서약서를 보내고 합의금을 얼마를 요구할까 일주일을 노심초사하며 보냈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문제가 됐던 그 상품 주문이 들어왔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다시 팔지 않기로 서약하고 다시 팔면 합의금과 별도로 벌금까지 물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상품을 품절처리 했다. 품절 처리를 하고 보니 정신이 들었다. 이 상품이 갑자기 왜 팔린 거지? 살펴보니 명품브랜드에서 신고를 철회했고 아무런 통보도 없이 가품/이미테이션 신고가 됐던 것처럼 나도 모르게 신고가 취소가 돼서 상품이 정상판매가 되고 있던 것이다. 그동안 끊임없이 합의금을 요청할 것이라며 의심했던 게 미안해졌다. 그날 오후 바로 빠른 정산 입금 예정 금액이 떴다.


매일매일이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어쩜 이렇게 새로운 일들이 끊임없이 펼쳐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해결방법을 요구한다. 하나를 해결하는데도 수십번씩 망설이며 한발자국씩 내딛는다. 남이 가르쳐준 답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새로운 문제들 앞에서 당황한다. 그리고 빠르게 문제지를 뒤로 넘겨 답안지를 찾는다. 답을 찾을 때까지의 방황과 흔들림을 참아내기가 어렵다. 이대로 괜찮을까? 라는 망설임을 수십번씩 하면서 한발자국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는 요령을 익히지 못하면 한순간에 무너지기 쉽다. 이런 일들은 한두시간 강의나 하루이틀 연습으로 해결할 수 없다.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포기하게 된다. 문제해결능력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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