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는 선지자일까요 아니면 판도라의 상자였을까요. 여기 희망이라는 불을 가져온 어느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앤디. 촉망받는 은행 부지점장이던 앤디는 아내와 그녀의 내연남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받습니다. 그렇게 쇼생크 교도소에 첫발을 내딛죠. 굳게 닫힌 철문과 겹겹이 에워싼 콘크리트 벽들. 교도소 감시자들은 24시간 대기 중입니다. 탈옥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습니다. 곳곳에는 살인과 강간을 저지른 강력범들이 득실거리고 법과 정의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교도소 간부들 역시 검은돈을 빼돌리며 부패와 손잡았습니다. 새장에 갇혀 사는 새들처럼, 날개를 꺾인 사람들의 깃털은 초라했습니다. 축 늘어진 어깨와 갈 곳을 잃은 눈동자 그리고 찢어진 죄수복에 기약 없는 나날들. 희망은 불에 타버린 지 오래였죠.
하지만 주인공 앤디는 희망의 불씨를 꺼버리지 않았습니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 작업장에 울려 퍼질 때 사막에서 촉촉한 빗줄기가 내립니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죄수복을 입고 지는 해를 지긋이 바라보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는 어떤 맛일까요. 자유와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앤디는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눈동자가 또렷해졌습니다. 마침내 새장의 벽을 무너뜨립니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 앤디는 스스로 그어 놓은 선을 넘습니다. 마치 이카루스처럼 희망과 자유에 대한 열망 하나로 태양을 향해 돌진합니다. 날개가 타버릴 수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불후의 명작, 네이버 평점 9.8을 기록한 수작, 매일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쏘시개가 되는 영화 '쇼생크 탈출'입니다.
'쇼생크 탈출' 현실판...희망은 유통기한이 없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현실 버전도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 지난 2004년 미국 정치사에는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납니다. 축복받았다는 의미의 버락. 오바마는 자신의 이야기로 청중들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케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아버지부터 영국 가사노예였던 할아버지의 이야기까지, 그가 마이크를 잡자 웅성거리던 전당대회장이 조용해졌습니다. 오바마는 희망이라는 주제로 생각과 관념, 관성과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공동체. 백인과 흑인을 편가르지 않는 미합중국. 어려움과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담대한 희망으로 이름 없던 정치 신예는 하루아침에 대선후보로 우뚝 섰습니다. Yes, we can. 담대한 한마디가 시대정신이 되며 희망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오바마. 그의 이야기가 곧 역사가 됐습니다.
희망에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쇼생크 감옥을 탈출했던 앤디에게도 보스턴연설의 파란을 일으켰던 정치 신예도 또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첫 시작을 글쓰기로 풀었습니다. 문득 1년 전 오늘이 생각나더군요. 브런치 작가만 7번 떨어지고 8번 만에 합격한 작가지망생. 희망보다 절망에 가까웠던 글쓰기. 늦깎이 9급 공무원.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써 내려간 글들이 모여 '노량연화' 책으로 꽃피었고 2023년 공직문학상 수필부문에는 '버섯꽃'으로 동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공모전 도장 깨기를 진행 중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DMZ 글쓰기'에는 '당신만 몰랐던 장승배기 고개의 율곡수목원'으로, 국가보훈부에는 '전 세계에 울려 퍼진 파란 눈의 아리랑'으로 도전했습니다. 앞으로 수상작들을 모아 <이기는 공모전> 책을 내겠습니다.
꽃을 버려야 열매가 된다...인적자본의 사회 환원
담대한 희망은 지금도 계속됩니다. 희망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처절한 노력을 해야 하겠죠. 나무는 꽃을 꺾어야 열매를 맺고 강은 그 강을 끝내야 바다로 나아간다는 화엄경 구절처럼 현실에 안주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아직도 배가 고픕니다. 글쓰기에는 끝이 없듯, 끊임없이 정진하겠습니다. 불혹의 나이를 앞둔 저는 글쓰기의 꽃인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꿈꾸고 있습니다. 3년 뒤, 8년 뒤, 13년 뒤 저에게는 그렇게 3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꾸면 그 꿈을 닮아간다는 앙드래 말로의 이야기를 믿습니다. 남들보다 1~2시간 일찍 일어나 조간신문의 칼럼을 찬찬히 읽고 그중 괜찮은 부분은 직접 필사도 합니다. 공모전과 브런치 글쓰기, 신문 매체 기고문 작성까지 목표를 위한 경험들도 하나씩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들입니다.
저만의 인적자본을 구축한 뒤 일정 부분 사회에 환원하겠습니다. 유상철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있었기에 오늘의 이강인 선수가 가능했습니다. 유상철 감독은 자신이 배운 축구 노하우를 후배들 양성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했습니다. 유상철 장학회까지 설립했습니다. 체력부터 커리어까지 조언을 들은 이강인 선수는 스페인 발렌시아 구단을 거쳐 지금은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살았지만, 열심히 산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현실 자본주의의 역설입니다. 20대 때는 저의 경력들을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30대가 된 지금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력에 대한 기회들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제보다 기대되는 오늘. 오늘보다 설레는 내일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