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년 8월 18일 뻐꾸기가 구슬피 울며,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을 알렸습니다. 이후 임진왜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요. 조선과 명은 혼란한 상황을 틈타 일본군을 처단할 계획을 세웁니다. 울산과 사천, 순천에서 동시다발적 대공세를 준비하는데, 바로 '사로병진작전'입니다. 네 갈래 길로 동시에 진격하여 적을 몰아낸다는 계획입니다. 동로군인 김응서 장군이 울산왜성을, 중로군인 정기룡 장군이 사천왜성을, 서로군인 권율장군이 순천 왜교성을 공략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조명연합군의 각개격파 전략은 실패했습니다. 공성전은 수비가 유리한 전쟁죠. 결국 이순신이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노량해전은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였습니다.
정유재란은 1598년 12월 16일, 선조 31년에 벌어졌습니다. 이순신을 포함한 조명연합수군이 경상우도 노량해협에서 일본의 함대와 치열하게 싸운 전투입니다. 오시히로 등이 이끄는 일본함선 500여 척이 노량에 진입하자 매복해 있던 조선 함선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이순신 함대가 적선 50여 척을 격파하고 200여 명을 죽였습니다. 점차 패색이 짙어진 일본군은 남아있는 150여 척으로 격렬한 저항을 했죠. 이때 이순신 장군 명언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관음포에서 총탄을 맞은 이순신 장군은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며 눈을 감았습니다. 노량해전은 한산도대첩과 명량대첩에 이은 이순신의 3대 전투로 손에 꼽힙니다.
사로병진작전이 성공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이순신 장군도 살아계셨겠죠. 노량해전의 서막을 연 순천을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순천은 보수 여당의 정치적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호남의 송곳으로 불리죠. 어느 한쪽에서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의미겠죠. 지역은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인 전남이지만, 영남과 가깝죠. 그래서일까요. 국민의힘 소속인 이정현 전 의원이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순천에서만 2번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습니다.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천하람 변호사 역시 순천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여당에도 인물이 많다는 뜻이죠. 예로부터 벌교에서 주먹자랑하지 말고, 순천에서 인물자랑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순천은 문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작가 김승옥이 대표적입니다. 단편소설 <무진기행>이 유명하죠.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김승옥 작가는 이렇게 소설을 시작했습니다. 무진의 배경은 순천만 갈대숲이었죠.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내는 입김과도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설에 영감을 받은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몽환적인 미장센을 펼쳤습니다. 안개는 물질주의 속에서 허물어져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방황하는 젊음, 상실의 시대를 대변했죠. 한국판 무라카미입니다.
역사적, 정치적, 문학적으로 조예가 깊은 고장 순천으로 이번주말 가보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지식in문학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