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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지식in Nov 06. 2022

울지 않는 두견새 기다리기

노량진 언저리에서


일본 막부시대 큰 그림을 그린 오다 노부나가, 통일을 이룩하며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에도 막부 새 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까지 일본 대하소설 '대망'에는 세명의 명장이 등장합니다. 전국시대를 제패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인만큼 울지 않는 두견새를 울리는 방법도 독특합니다.


"울지 않는 두견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


그중에서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내심이 눈에 띕니다. 난세가 되어야 영웅을 알 수 있다는 삼국지 이야기처럼, 과묵하고 침착했습니다. 주도면밀한 히데요시 밑에서 살얼음 같은 시집살이를 견뎠습니다. 당시 척박한 에도(도쿄)로 쫓겨났을 때도, 막부 서열에서 연거푸 밀려났을 때도 감내했습니다. 차근차근 인내하며 세력을 키웠고 임진왜란에 참여하지 않으며 세력을 보존한 겁니다. 이는 히데요시가 죽은 이후 본인을 시기한 다이묘들을 격파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그리고 새 시대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했습니다. 궁색한 촌동네, 변변치 않은 영주 출신으로 일찍부터 아버지를 여의고 볼모 생활로 연명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위기는 기회였습니다. 타지 생활은 견문을 넓히는데 도움이 됐고 숱한 위기를 거치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졌습니다. 에도로 추방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잡초처럼 연명한 강한 생명력으로 도쿄를 당시 수도인 교토만큼 성장시켰습니다. 척박한 불모지가 전국 통일을 위한 본거지로 바뀐 겁니다.


■ 수험생활도 인생도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끝까지 버티면 결국 됩니다. 노량진 수험가에도, 금융권 공사나 언론사 스터디에서도 합격생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입니다. 제 주변만 봐도 무소의 뿔처럼 우직하게 걷는 사람이 합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스터디원이 있었는데, 막노동을 하면서 금융권 공사를 준비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리 유복한 가정환경은 아니었지만 본인이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보다 4~5살 어렸지만 성숙한 모습에 마음이 짠하더군요.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도 옆에서 도와줬는데, 그 친구의 합격소식을 전해 듣고 진심으로 축하해 줬습니다. 산업은행 면접에서 떨어지고 다른 금융권 공사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듬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근성을 저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을 돌이켜 봐도 그렇습니다. 저는 운 좋게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언론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남자 동기 중에서 가장 어린 27살이었지만, 누구보다 먼저 사표를 썼습니다. 우직함이 부족했습니다. 이후 금융권 공사와 노량진 수험가 합격 언저리에서도 마지막 뒷심이 부족했습니다. 늦은 나이라는 조바심, 부모님 걱정이라는 핑계들로 번번이 둥지를 바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사 동기 중에 늦깎이 합격생 형이 있습니다. 기자만 생각하며 공부한 동기는 뚝심 있게 밀어붙였습니다. 늦은 나이에 면접에서 필기시험에서 숱하게 떨어지고 사기업을 두 차례나 옮기면서도 언론사 기자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31살에 합격했습니다. 입사하고 나서도 그 꿈은 이어졌습니다. 군대문화가 팽배한 언론사에서 자기보다 나이 어린 선배들에게 숱하게 불려 갔습니다. 뒷짐 지고 쌍욕을 먹으면서도 새벽 5~6시에 전화받고 경찰서로 튀어가면서도 뻐꾸기가 울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코 흘리개 시절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법조팀 팀장으로 일하고 있더군요. 며칠 전 안부 연락이 왔는데,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때를 기다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사카성으로 향하고 난공불락 천의 요새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과 마지막 최후 성전을 펼친다.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히데요시 가문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한 시대 끝을 알리는 두견새는 마침내 구슬프게 울음을 터트린다.  

- 일본 대하소설 '대망' 中 -




<작가가 궁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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