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위기. 나랏빚만 수백조 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은 그렇게 대한민국 숨통을 죄고 있었죠. 재깍재깍. 일촉즉발의 먹구름들이 엄습해 왔고, 떨어지는 칼날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돈줄이 막히는 '돈맥경화' 현실에 실핏줄부터 터집니다.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던 노동자들, 한없이 자상하고 인자했던 우리 아버지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살던 공장 노동자들이 타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송중기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기능사 자격증만 여러 개로 아진 자동차에 뼈를 묻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작 사직서 한 장뿐. 자신은 국밥집하는 마누라에게 꽃 한 송이 사줄 수 없는 상등신이라고 푸념만 늘어놓습니다.
파업 전선으로 내몰린 노동자들. 작업장에서 구슬땀을 흘려야 했지만, 그들이 찾은 곳은 광장이었습니다. 일어나라 그대여. 이마에는 실핏줄이 곤두서있습니다.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1970년, 청계천 일대에도 평화시장 비둘기가 있었습니다. 꼬깃꼬깃한 근로계약서를 들고 다니며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울부짖던 청년, 소년 가장 전태일입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시대에 대한 울분과 노동자의 한으로 써 내려간 일기장은 훗날 전태일 평전이 됐습니다.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들이붓고 응어리를 불태우며 그렇게 전태일은 죽었습니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대한민국을 낭떠러지로 이끈 원흉이었습니다. 문어발식 경영과 정경유착, 대마불사 뒤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습니다. 위기 때마다 투입된 국민 혈세입니다. 민간기업들은 국가 소유로 탈바꿈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안정적인 노후소득으로 만들어진 연기금은 투자업계 큰손으로 거듭났고, 대기업과 거대 금융들을 위한 방파제로 전락했습니다. 수십, 수천억 원의 어음들은 한여름밤 꿈으로 단란주점 여인네 가슴에 꽂히고, 기업 경인인들의 도덕적해이에 피와 땀과 눈물이 서린 중소기업 매출채권은 한순간에 쓰레기 더미가 됐습니다. 그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역사는 반복됩니다.
사람 장사 안 하고 기술장사 해야 한다.
다시 광장. 질끈 동여맨 머리끈이 물결을 이루고 붉은 깃발 아래로 군중이 모여있습니다. 공허한 파업구호만 허공에서 메아리칩니다. 조합원 수만 5만 명에 달하고,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에 최대사업장을 갖고 있는 현대자동차 귀족노조입니다. 1인당 평균 연봉이 1억 원에 달하는데, 정년은 공무원 철밥통이고 연봉은 대기업 임원 뺨칩니다. 그래서일까요. 현대차가 둥지를 튼 울산이 서울 강남보다 물가가 비쌉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그 아래 현대차 직원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립니다. 한때 더불어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홍영표 의원도 매년 파업하는 현대차 노조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대한민국 경제를 볼모로 기득권을 높이는 귀족노조의 현주소입니다. 생산성이 담보되지 않은 임금 인상은 도덕적해이만 불러올 수 있습니다. 파업이 파업을 낳습니다. 경제학원론에도 나와있죠. 파업이 강경할수록 일자리만 팍팍해집니다.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을 짓기 때문입니다. 저렴한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로, 세금 혜택을 좇아 북미로, 새로운 시장을 찾아 유럽으로 보금자리를 옮깁니다. 2030 세대 실업률이 올라가면서, 세대갈등으로까지 불똥이 튀고 있습니다. 기업 경영자들의 도덕적해이는 엄격하지만, 왜 노동자들의 도덕적해이는 관대할까요. 치열함도, 처절함도 없습니다. 전태일 정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망국적 도덕적해이 시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