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 지식in Oct 23. 2022

[감상문] 레트로와 유럽 감성의 서울역


서울역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입니다. 지역과 계층, 세대를 아우릅니다. 전국 팔도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고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나이도 다채롭습니다. 주변 곳곳에서 쉬고 있는 노숙인들도 보이지만, 친구, 가족과 여유를 만끽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소설가 구보씨가 된 것처럼 사람부터 장소까지 천태만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 찾은 서울역도 그랬습니다. 종교 집회부터 반정부 시위까지 하루하루 바람 잘날 없는 곳이었지만 골목길 사이사이로 뭉게구름처럼 새로운 분위기가 움트는 곳들이 있습니다. 복잡한 걱정거리도 잊을 겸 친구들과 종종 찾아갑니다. 레트로 감성부터 유럽 축제까지  곳곳에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서울역 하늘 공원을 따라 내려오면 허름한 골목 사이로 돼지고기 집이 있습니다. 국민회관입니다. 형형색색의 홍등을 지나 초록색 간판 네온사인이 보입니다. 급랭 삼겹살. 레트로 감성입니다. 부모님 손을 잡고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먹던 그 맛입니다. 어린 마음에 익지도 않은 삼겹살을 주워 먹었던 추억도 나는데, 그 감성을 아는 사람들이 비단 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약하기도 힘들고 기본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싸구려 냉동삼겹살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객의 80~90%가 MZ세대라는 게 놀랍습니다. 이 맛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꼬들꼬들한 삼겹살 비계의 느낌함과 돼지 고기 육즙의 쫀쫀한 고소함이 뒤엉켜있습니다. 급하게 얼린 삼겹살이 뜨거운 쿠킹호일에서 바짝바짝 익어갈 때 소리가 정겹습니다. 눈과 귀가 즐거워집니다. 기름 거품이 보글보글, 자글자글 소리를 내면서 위를 자극합니다. 삼겹살의 맛과 풍미만이 아닙니다. 식당 곳곳의 정취도 레트로 감성을 자극합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반찬 덮개만 봐도 그렇습니다. 빨간색부터 노란색 등 형형색색의 우산 모양이 하염없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1988을 연상시키는 반찬 그릇들도 있습니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옛날 감성이 식객들의 맛과 멋을 책임집니다. 손님들은 일본 드라마의 '고독한 미식가'부터 허영만 선생의 '식객'까지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습니다. 맛있으면 0칼로리일까요. 첫 입은 설레고 마지막 입은 그립습니다.  



구름 위를 걷듯 하늘 공원을 지나 도착한 또 다른 곳에는 천국이 펼쳐져 있습니다. 서울 리스타 수제 맥주집입니다. 첫 번째 장소가 을지로의 힙한 감성이라면, 여기는 유럽입니다. 서울역의 작은 유럽이죠. 독일의 맥주 축제가 생각나듯 외국인들도 많습니다. MZ세대만의 감성이 엿보입니다. 유럽식 피맥이 어울리는 곳입니다.


페페로니 피자의 짭조름한 살라미 햄을 먹으며 IPA에 갈증을 해소합니다. 그중에서도 굿맨 IPA가 일품입니다. 맥주 한 모금에 구름 같은 거품이 입안에 퍼지면 이곳은 곧 유럽이 됩니다. 맥주 홉의 강한 풍미와 IPA만의 독한 향미가 전해집니다. 시트러스의 첫맛에 뒤이어 풍부한 바디감이 몰려옵니다. 유럽 맥주만의 특징들이 느껴집니다. 알코올 도수 6.2%에 쓴맛도 63이나 차지합니다. 맥주와 분위기에 취하면서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립니다.  


서울역에는 레트로 감성부터 유럽의 느낌까지 다채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장준혁 작가부터 이청로 작가까지 서울역을 소재로 한 책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몰리면서 다양한 글감이 모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적한 주말, 서울역을 걸으면서 본인만의 글감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