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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l 17. 2020

컨트롤을 놓게 될 수도 있다는 것

  어제는 가슴이 꽉 막히듯 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것을 글로 풀어보려 했을 때엔 마른걸레를 쥐어짜는 것처럼 이상하게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몇 문장을 적었을 때엔 오히려 그것이 작위적인 것처럼 느껴져 형편없게 보였다.


  어제 처음으로 정신치료를 시작했고 예비 면담 시간을 가졌다. 어제 아침엔 분석가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잠드는 동안 꾼 짧은 꿈이었다. 깨어나서 깜짝 놀랐다. 정말 이런 꿈을 꾸게 되는구나. 기대와 환상을 포함한 나의 무의식이 정말 나도 모르는 새 작동하고 있구나. 한편으로 내가 나중에 이런 꿈을 보고하면 치료자는 뭐라고 할까. 만약 내 환자가 내게 이런 꿈을 보고했다면 난 어떻게 생각했을까. 저를 거절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로 들릴까. 그렇다면 분석가는 거절하면 안 될 듯한 압력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나는 시작부터 내 주장을 하고 상대를 압박하는 사람인가. 한편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꿈에서 벌어진 일인데 별다른 도리가 없지 않나.


  코로나로 인해 화상연결을 했다. 오류가 있어 5분가량 지체되었다. 치료 시작 전엔 손이 차가워져 여름철에 좀처럼 마시지 않던 따뜻한 차를 마셨다. 세션 중 분석가의 의문에 마음이 크게 반응했다.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르게 이해할 수 있겠구나. 나는 어릴 때부터 있던 일이라 다른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그 의문은 작은 질문이었던 듯했는데 마음은 한껏 민감해져 있었다.


  시간을 빨리 지나갔다. 아니 벌써? 다른 공간에 있다 온 기분. 운동을 하는 때에는 45분이 정말 느리게 지나가는데. 체감상 서너 배는 빠르게 시간이 지나간 듯했다. 내 입장에서는 부연설명에 부연설명이 한참 남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이해하는데 정말 그것이 모두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타지로 이사 와서 병원에 진료받으러 갈 때 직업이 의사라고 밝혀야 하나 하는 고민을 종종 한다. 진료를 받는 중 뜬금없이 제가 의사인데요 하고 말하는 것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진료에 필요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런 고민이 드는 것은 의사결정권을 놓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나도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어떤 것을 결정하는 때에 나와 함께 결정해주세요 하는 의미.


    예전에 수련병원에서 수술을 받느라 수면마취를 했다. 수면 마취를 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마취를 진행했던 선배가 내가 잠드는 과정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당시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수술은 내가 자는 동안 자신을 온전히 다른 의사에게 맡기고 진행되는데 그것이 두려워 의식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정신치료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어쩌면 비슷한 마음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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