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문을 닫았다
갑자기 화장을 하고 싶다. 화장을 안 한 지는 오래 되어서 화장품이 이미 썩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다가 우리가 마스크를 끼지 않고는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어디에도 갈 수 없다. 내가 설령 그 모든 위헙을 무릅쓰겠다는 선언을 해도 어떤 건물도 날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화장을 하면 얼굴에 손도 대지 않는데 마스크라니. 하얀 마스크 안쪽으로 파운데이션이 묻어있는 상상을 한다. 역겹다. 화장을 하지 않는 건 편하지만, 어차피 할 수 없다.
<코로나가 끝나면> 이라고 자주 말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놀러갈 거야, 코로나가 끝나면 미뤄둔 일을 하려구…. 나는 우리가 삼 년 뒤에도, 십 년 뒤에도 그 말을 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된다. 한두 달 전에는 코로나가 종식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불안이 번지고 있다. 슬슬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나와 같은 의구심이 떠올랐으리라고 믿는다. 끝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거나 <코로나는 인류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같은 외신 기사들의 제목이 떠오른다. 불안. 그래. 그것이 우리를 잠식해가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일상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슴을 파고든다. 과연 이것이 끝나기는 할까?
이것은 시대의 전환이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는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몇 년쯤 더 지속된다면 어린아이들은 마스크를 끼지 않는 세상을 모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도서관이 다시 문을 닫았다.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내일부터 무기한 휴관합니다.> 여섯 시에 닫는데 오후 세 시쯤 문자가 왔다. 책을 빌려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도서관이 문을 닫는 것이 가장 슬펐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엄마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조금만 더 일찍 말해주지, 읽을 책이 하나도 없어, 하며 집안을 돌아다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봤다. <너는 책이 좀 있네.> 나는 대답한다. <응, 아껴 보려고.> 그래, 아껴 읽어야지. 도서관은 언제쯤 다시 문을 열지 알 수 없다. 그때까지 이 책들만으로 버텨야 한다. 다 읽어버리기 전에 다시 열면 좋을 텐데. 갑자기 책이 화폐처럼 느껴진다. 식량 같은 것. 겨울을 나야 하니까 아껴 먹어야지… 같은 것. 여러 권 빌려둔 것이 다행스럽다. 또한 아직 읽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도서관이 다시 열면 좋을 텐데. 코로나는 도서관을 빼앗아갔다. 이북을 읽으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겠지만 내게 종이로 만든 책이란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도 같이 포기하기 힘든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도서관에 갈 작정이다. 처음에는 당연한 미래를 이야기하는 가정문에 가까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표현에는 샛노란 희망이 깃들고 있다. 우리는 희망을 담아 말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세상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다는 증거다. 희망이 필요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이 시대를 어둠이나 겨울로 인식하지 않고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