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떨어진 불에 구워먹는 마시멜로가 더 맛있다
브런치에는 왜 이렇게 쓸만한 이야기만 써야 할 것 같을까? 전에 바지를 샀는데 사이즈를 잘못 고르는 바람에 벨트를 주문했고 그 벨트마저 사이즈를 잘못 골라서 절망했다는 이야기 같은 건 어쩐지 쓰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장소나 집단이 있다. 내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숨겨야 할 것 같고 남들이 뭘 내놓나 보면서 비슷하게 번듯한 것을 올려두어야 할 것 같은 기분. 각을 세우는 건 그렇지 않은 것보다 공이 들어가는 일이라 쉽지 않다. 남들은 브런치에 무슨 이야기를 쓰지. 커리어 얘기, 정보성 글 등의 번듯한 글만 많이 봐서 그런지 이렇게 일기 쓰듯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이번 글은 전에 일을 시작하지 않고 미루는 습관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남긴 메모를 조금 다듬은 글이다. 그리고 벨트 말인데 잘못 산 건 당근마켓에 팔아넘겼고 이번에야말로 딱 맞는 벨트를 샀다.
자기는 불안하니까 일을 미루지 못하는데 반대로 미루는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친구가 궁금해한 것이 계기였다.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없으리라는 불안 때문에 상자를 여는 대신 닫힌 상태로 그냥 두는 게 이유라고 생각한다. 완벽한 결과가 아니어도 어떤 결과든 스스로 괜찮았다면 시작했을 테니까. 당연히 그들도 이게 미련한 행동이고 비합리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불안에 떠밀려 간다.
차라리 진행되지 않아 결과를 모르는 일, 미개봉된 상자를 1초라도 빨리 열어버리는 게 낫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그러면 엉망이더라도 개선할 시간이 1초라도 더 생기니까. 단지 불안과 자기불신으로 인해 합리적인 행동을 선택하는 대신 끊임없는 자기혐오와 무력감에 목을 졸리면서 계속 미룬다.
자기불신이란 방어가 불가능한 기술 같은 것으로서 조건부 불안이라면 생각의 방향이라도 틀어 보지, 모든 행위를 하는 주체인 나 자신을 그렇게 느끼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내가 하는 일은 엉망이 될 테고 결코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이제 시작도 않고 놔둔다 같은 선택이 생긴다. 왜? 내가 하면 마이너스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0이니까. 무슨 일이든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는 말을 쉽사리 받아들이기가 당연히 어렵다. 나는 모든 일을 망치니까.
경쟁으로 얻어내는 자리도 똑같다. 내가 얻어내지 못해도 나처럼 망쳐버리지 않는 사람이 대신 그 자리에 갔을 테니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사고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쓰다 보니 평범한 정신질환 이야기인 것 같다고 메모의 끄트머리에 적어두었다. 객관적으로는 스스로가 그렇게 엉망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렇게 재주가 없는 편도 아닌데 그냥 이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정말 어렵다. 사실은 나가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병원에서 상담받으면서 했더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여태껏 어떻게 살았냐고 했다. 그러게요…. 라고 말했는데 그래서 아마 제대로 못 산 거겠지. 행복해지고 싶다. 내 정신에 있는 페스츄리처럼 섬세한 우울의 겹을 몰아내고 액자 속의 움직이지 않는 그림 한 장처럼 나는 그냥 행복해지고 싶을 뿐인데. 아니다. 괴롭고 싶지 않은 거다. 그걸 행복이라고 부르는 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