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어있을 때가 더 좋아

프로타주

by 이공



정신질환을 앓고 있거나 오래도록 한 기억에 사로잡힌 사람의 세계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본인에게는 당연하고 타인은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언젠가 이 손수건의 주름이 펴졌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지곤 한다. 원래는 어떤 무늬였을까. 그리고 그때 돌아보면 지금이 얼마나 왜곡된 형상일까? 그러니 이런 류의 글들은 기본적으로 프로타주에 가깝다. 독특한 질감의 벽이나 이파리 위에 얇은 종이를 겹치고 연필로 문질러 본을 뜨는 것과 유사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왜곡된 현실인식 중 하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호의를 가지면 (로맨틱한 의미가 아닐지라도) 무언가 착오가 있었음이 분명하리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언젠가 진실이 까발려져 모든 게 들통나리라는 상상이 내 안에서 무한히 돌아가는 영사기처럼 재생된다. 모든 것. 누군가가 그를 좋아한다면 그건 실수나 오해임이 분명한 사람. 그래서 누군가가 내게 호감을 표하면 기쁨과 동시에 남을 속이고 있는 듯한 죄책감과 언제 지은 죄를 들킬지 모르는 사람의 불안에 시달린다.


아무도 좋아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면 와다닥 주고 싶어지는데 동시에 그런 행동들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나를 싫어하게 만든다는 것이 슬프다. 내가 그를 특별히 여기지 않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호의적인 관계일 수 있지만, 내가 특별한 애정을 가지기 시작하면 나는 사랑을 얻어내기는 커녕 상대방이 내게 질리게끔 만든다. 남 탓을 하라던데 아무리 봐도 내 탓으로만 가득찬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정도는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남 탓. 그러나 타인을 찌르는 것은 어렵고 스스로에게 칼날을 돌리는 것은 그보다 훨씬 쉽다. 자기 자신을 지키려면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면 마음이 무겁다. 이제 곧 끝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를 조금 더 특별히 여겼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면 다 끝나버리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불안에 시달리느니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 마음을 와다닥 쏟아붓고 관계가 끊겨버렸으면 좋겠다. 내가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가 나를 점점 싫어하게 될 거라는 건 너무 괴로우니까. 차라리 죽은 것과 다름없이 부동하는 그를 내 안에서 곱씹으면서 혼자 사랑하는 것이 열 배는 낫다. 나도 안다. 이런 건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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