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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mji Mar 17. 2024

야마모토 리켄이 추구하는 공공성

한컷의 건축

야마모토 리켄의 수상 소식 이후 그가 주장하는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더 깊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 제가 정리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핵심 개념어인 threshold에 대한 설명입니다.


threshold 또는 역閾의 개념.

야마모토 리켄의 주요 개념으로 알려져 있는 threshold는 역閾의 영문 표현입니다. 야마모토 리켄은 1970년대, 세계 토착 마을의 주거답사에서 사적/공적 영역의 경계가 공통적으로 존재함을 발견하고 이것을 역閾으로 불렀습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건축구성요소인 '문턱, 문지방' 보다는 사적/공적 영역의 뚜렷한 경계가 어떤 형식으로도 형성되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그리고 No Man's Land.

야마모토 리켄은 한나 아렌트를 접하고 나서 답사에서 얻은 경험을 자신만의 이론으로 정립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의 조건' 저자로 알려진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는 인간성에 대한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위한 목적으로 고대 그리스 주택을 예시했습니다. 그녀는 사적영역 private realm인 주택 내에서 사적공간 private sphere에 속하지 않는 중성적 공간을 발견하고 이것을 No Man's Land -무인지대라고 명명했습니다.


No Man's Land란 1차 세계대전, 독일군과 연합군 양 진영이 만든 참호와 참호 사이의 좁은 공간을 뜻합니다. 이 공간에서는 수년동안 진퇴를 거듭하는 백병전이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수만 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당시 이 공간은 포탄이 떨어지먼 흙 대신 시체가 튀어 올라올 정도로 참혹한 죽음의 땅이었으며 말 그대로 무인지대였습니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가 이 같은 의미로 No Man's Land를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양 진영 어디에서도 점령하지 못하고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는 교착상태의 공간, 즉 두 공간의 경계이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모호한 성격의 사이공간의미로 사용한 것입니다. 주거에서의 No Man's Land란 먹고, 생식하고 양육하는 생의 욕구를 충족하는 사적공간과 법과 규율이 적용되는 공적영역 간의 경계로서 커뮤니티 형성에 필요한 교류와 결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야마모토 리켄이 추구하는 공공성.

한나 아렌트는 현대에 들어서 자본화를 통해  주거에서 No Man's Land와 같은 교류, 담론의 공간이 사라져 버리고 그 역할마저도 일부 정치가나 시장market에 맡겨졌음을 비판합니다. 야마모토 리켄의 공간도식과 경계의 투명성은 한나아렌트가 말하는 No Man's Land을 복원을 통해 커뮤니티의 형성을 유도하는 노력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것을 종합한 것이 야마모토 리켄의 '지역사회권주의地域社會圈主義'입니다.


짧게 정리했습니다. 한나 아렌트와 야마모토 리켄이 말하는 인간환경에 관해서는 '콘크리-토 일본건축문화독법 6장 사이타마현립대학 1999 야마모토 리켄'에서 조금 더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쓴 책이기는 하나 국내에 본 내용을 언급한 문헌이 드물어 졸고임에도 불구하고 소개해 드립니다.


Saitama Prefectural University / Riken Yamam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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