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인문학일까?

SANAA_Onishi Public Hall,

by demji

인문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환경을 물리적인 측면에서 측정하고, 산술적으로 분석, 판단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인문적인 것입니다. 일본의 지성 카토 슈이치는 기계적인, 합리적인 사고에서 탄생한 인간의 피조물과 삶을 연결하는 것이 인문(교양)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인문적인 것은 인간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혹시 철학, 역사, 심리학 등을 지칭하는 '인문학'이라는 범주를 인문적인 모든 것을 뜻하는 것으로 혼동하는 오류는 범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인문으로서의 건축'이 붐을 이루고 있는 현재 한국 건축의 문제는 역설적으로 인문적인 사고가 배제되면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건축 전문가들이, 우리 건축에서 인문적인 것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시공품질이 외면당하고 있다고 지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과녁에서 벗어난 화살과 같습니다. 구축에서의 질과 인문적인 것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뒤집어 말하면 인문적인 것의 강조가 섬세한 디테일과 시공성의 부재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허술한 디테일과 부실한 시공은 인문적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건축을 수익창출의 수단으로만 한정하는 문화, 저가 수주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경제구조, 그리고 모든 것을 "싸고 빠르게" 해내야 하는 세태야 말로 의미가 빈약하고 디테일이 부실한 건축이 지어지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인문적인 것의 과도한 강조 탓에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설계경기와 건축교육에서 작동되지 않는 콘셉트가 횡행한다고도 하는데, 이것도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 원인이 과도한 인문적인 관심이기는커녕, 그와 반대로 인문적인 사고의 부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스템 내에서는 본질과 무관한 콘셉트가 양산되고 표피적인 홍보수단으로써 소비되고 망각됩니다. 이러한 프로세스로 건축물이 지어진 결과, 남는 것은 삶에 대한 배려는 티끌만큼도 없는 빈 껍데기와 같은 도시환경입니다.

다시 말하면, 산술적인 평가가 가능한 것만 인정하는 가치 기준, 무형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부재가 우리의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군마현 오니시, 이곳은 인구 7000명의 울릉도와 비슷한 크기의 촌락으로 수려한 자연환경과 작은 집들이 잘 어우러진 곳입니다. 이러한 곳에 주민을 위한 체육관과 집회 공간을 만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층의 낡은 주택과 낮은 구릉으로 둘러싸인 이곳의 풍경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대공간의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환경에 응당 맞는 콘셉트가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건축가 카즈오 세지마가 사용한 세 가지 기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건물의 높이를 주변 민가에 맞추고, 필요한 대공간은 지하를 파들어 감으로서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건물은 주변의 환경을 가리지 않게 되어 풍경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번째는 투명한 외벽을 통한 주변 풍경의 유입입니다. 녹색의 풍경과 소박한 농가의 모습은 건물의 내부에서 보았을 때 병풍과도 같은 역할을 하며 선생님을 따라 줄지어 걷는 아이들은 움직이는 풍경이 됩니다.

세 번째는 유동성입니다. 내부 공간을 차단하는 벽은 건물 내에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공간과 공간의 분리는 공간의 폭의 변화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확보되는 개방적 공간은 이 건물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열린 공공건축임을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이 세 가지 기법은 제법 큰 덩치의 건물을 촌락의 일부로 보이도록 만들었습니다. 개방성과 투명성은 커뮤니티 구성원 간의 친밀감을 더욱 두텁게 할 것입니다. 카즈오 세지마가 구사하는 무심한 듯한 디테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조형, 투명성은 그녀가 건축의 보이는 부분보다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관심을 두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건물과 환경이 하나가 되고, 지속 가능한 지역 환경이 조성되는 것. 이것은 시공의 품질에 고착된 관심과 편협한 작가적 욕망으로는 이룰 수 없는 성과라 볼 수 있습니다. 환경과 건축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바로 인문적 사고에서 탄생한 건축입니다.

좋은 건축에는 실체로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건축의 알레고리적 요소라 부를 수 있을 듯합니다. 알레고리란 단편적인 사건, 서사가 의미를 갖게 하는 그 어떤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건축은 최대 면적의 확보, 문제없는 냉난방과 급배수, 결로 방지와 완벽한 방수, 미관을 위한 형태와 디테일 외에 무엇인가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문적 요소 - 인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배려-이며, 기능으로서의 건물에 건축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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