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프리츠커 상 수상자는 일본의 건축가 아라타 이소자키입니다. 이 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건축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건축가의 작품과 기여도를 평가해서 매 년 한 명씩 수여합니다.일본은 일곱번째 수상자를 배출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명실상부한 건축 강국입니다. 이러한 성과는 개인의 역량은 물론 일본 건축계의 능력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건축 작업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1960년 동경에서 열린 세계 디자인 회의에서 메타볼리즘Metabolism이란 건축집단과 함께 그들의 이론이 소개되었습니다. 도시와 건축의 생성과정을 생물의 신진대사에 빗대어 해석하고자 하는 이들의 이론은 당시 기계적 합리성이 지배적이었던 건축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패전국 일본의 경제와 당시의 낮은 기술 수준으로는 서양의 건축을 재현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과 종전 이후 급속한 도시화에 의해 사라져 가는 그들의 풍토적 특성을 되살려야 한다는 두 가지 과제에 맞닥뜨리게 된 일본의 건축가들은 합리적 이성에 근거한 근대건축과 일본의 전통성을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건축 언어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이 운동에는 당시 명성을 떨치고 많은 건축가들이 다수 참여했습니다. 기요노리 기쿠다케, 겐조 단케와 기쇼 구로가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당시 29세의 신진 건축가였던 아라타 이소자키도 여기에 동참했습니다. 기쇼 쿠로가와는 메타볼리즘에 대해여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메타볼리즘은 서양의 근대건축을 재구성하기 위해 일본의 문화적 전통을 사용하려던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들은 유럽 중심의 기계적 모더니즘 건축에 반발, 성장, 변화, 유동성과 같은 생물의 신진대사를 일본의 전통문화로 재해석하여 건축이 모여 도시가 생성되는 원리로 이해하고 새로운 건축의 계획 개념으로 확장하였습니다. 이렇게 세계 어디서든 '참'으로 통용되는 개념을 지엽적인 일본의 문화로 해석하여새로운 보편성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은 일본의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의 작업방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서양 철학의 바탕은 구축의 의지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구축이란 모든 것을 설명하는 범용적인 하나의 이론을 만드는 것을 뜻하며 서양철학과 과학이 모두 이것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진보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패권을 가진 하나의 개념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이 대두되어 그 한계에 다다르면 기존의 것을 전복시키는 새로운 개념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더 세밀하게 관찰하면 새롭게 창안된 개념이 낡은 것을 대체한다기보다는 변방의 소외되었던 개념이 중심을 치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영속적인 참은 없으며 참의 범위 바깥에 타자로서의 개념이 항상 존재합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마이너리티의 위치에서 중심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의 일자一者-변함없는 주체로서의 나-를 비판함과 동시에 타자의 위치도 재검토합니다.
아라타 이소자키는 서구 건축을 일본성으로 비판하는건축의 마이너리티로서 자신만의 노선을 걷기 시작합니다. 시대를 주도하는 사고방식의 답습을 피하고 타자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함으로써 또 다른 참을 모색하는 그의 접근법은 가라타니 고진의 초반기 저서인 ‘은유로서의 건축’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아라타 이소자키는 저자 가라타니 고진의 이론을 빌려 자신의 건축관을 피력합니다. 그의 글을 조금 인용해보겠습니다.
“나의 책 <건축의 해체 The Dissolution of Architectrue>(1975)은 이러한 위기들을 개관하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였다. 그 책은 유토피아가 사라진 이후, 건축가에게 주체를 공급해 온 텔로스 telos(목표)가 상실될 징후를 자세히 검토했으며, 진정한 주체는 ‘주체의 부재여야만 할 것이라 제안했다”
주체의 부재, 거대담론의 소멸입니다. 그는 건축계를 주도하던 큰 흐름인 유토피아 지향의 시대가 끝나감을 적시하고, 더 이상닫힌계가 아닌 타 분야와 소통가능한 열린 텍스트로서건축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업을 시도합니다.이렇게 탈 모더니즘의 건축을 시작한 1974년, 아라타 이소자키는 동경 외곽인 군마현에 지어질 Gunma Prefectural Gallery를 설계합니다.
이 건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그리드의 반복 사용입니다. 생성과 반복을 추구하는 메타볼리즘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중요한 의도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근대건축의 합리성을 벗어나 건축의 구성요소를 메타포로서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는 균일한 크기의 구조부재로 구성된 그리드를 내부에 노출시켜 건물의 하중이 구조를 통해 땅으로 전달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숨겼습니다. 그 결과, 기둥과 보는 구조부재가 아닌 일종의 컴포지션으로 느껴집니다. 외부의 본체와 기둥을 감싸고 있는 정사각형 알루미늄 마감재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건물은 큐브를 쌓아 올린 듯 보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회화 작품의 액자가 그림을 주변에서 분리시켜 예술로서의 독립성을 갖게 하듯, 입체 그리드를 통해서 미술품을 주변에서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술관의 주목적 중 하나인 미술품의 효과적인 디스플레이 전략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니멀한 내부 공간 디자인은 그 배경으로서의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다만, 여기 하나의 역설이 있습니다. 중량감을 소거하고 배후로 물러남으로써 예술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의지와는 다르게 건물의 내부는 매우 돋보입니다. 그 이유는 시각적 시퀀스를 고려해서 공들여 만든 미려한 건축요소로 내부가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디테일도 섬세합니다. 계단 하나, 난간 하나조차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하얏트 재단은아라타 이소자키를 수상자로 선정한 사유 중 하나로서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그리고 시간의 경계마저도 초월하는 그의 작업방식을 꼽습니다. 일본적이면서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을 추구했던 메타볼리즘의 연장에 있는 그의 작업방식, 여기에 동참하는 많은 일본 건축가들이 자아내는 일본 건축의 향취가 세계에 어필하고 있다는 사실은,뿌리가 잘린 채 성장만을 도모하고 있는 듯한 한국 건축계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