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하루 효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mji Oct 15. 2021

건축의 일상성 그리고 전통성

daily effect /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


스위스에는 건축명장 피터 줌터Peter Zumthor가 있습니다.  스위스 발즈 Vals의 온천장은 그의 시적詩的 건축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는 세심하게 조각된 미니멀한 공예품 같은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줌터의 세 번째 아틀리에 완성 당시 스텝 중 하나었던 스기야마 코이치로杉山幸一郎의 글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건축의 두 가지 난제인 '일상성'과 '전통성'에 대한 줌터의 입장이 잘 정리되어 있었는데 앞에서 설명한 줌터의 디자인 성향과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스기야마 코이치로는 이 글에서 아틀리에가 준공된 2016년 2월 부터 본 작품이 건축잡지에 게재되는 2017년 4월까지의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촬영은 건물을 사용한 지 11개월이 경과된 시점에 이루어졌으며 사진에는 별도의 청소나 물건정리 없이 평소 그대로의 일하는 모습이 별다른 보정 없이 담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글에 삽입한 사진에서의 아틀리에 내부 풍경은 마치 정교하게 기획된 듯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줌터 건축의 특징이 잘 읽히고 있습니다.


스기야마 코이치로는 추측합니다. 특별한 포즈를 취한 사람들, 정리되지 않은 물품과 같은 현실세계의 소음이 그대로 드러난 건축사진임에도 건축이 돋보이고 있는 것은 줌터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사용성(Gebrauch)을 목표로 한 건축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실제 대부분의 출판용 건축사진은 일상의 흔적을 소거하는 경우가 흔한데 이는 일상이 건축이 표현고자 하는 부분을 가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답사를 하다 보면 사용자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을 때 더욱 돋보이는 건축이 있습니다. 이것이 줌터가 말하는 사용성이 반영된 건축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은 전통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줌터는 콘크리트 구조체에 목조 커튼월을, 지붕에는 값싼 양철지붕을 사용해서 부지에 원래 있었던 헛간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 건물에 대랑의 유리가 쓰인 것은 프랑스 동부 주라Jura 지역과 와 스위스 바젤basel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작은 시계 공방들의 외벽이 유리로 되어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디자인 의도를 설명하기 위해 스기야마 코이치로는 피터 줌터의 말을 인용합니다.


"나는 전통적인 형태를 참조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것 속에 있는 감정이나 느낌과 같은 것을 참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만들어진 것이 현대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나라(지역)의 사람들이 이것이 자신의 나라(지역)의 건축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습니다"


오랜 역사적 바탕 위에 급격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에서 일상성과 전통성의 표현은 건축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기에 대한 줌터의 입장은 어떻게 보면 보편적이자 추상적인 것으로 구체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이며 그곳에 도달하는 것은 건축가 각자의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줌터가 그의 생각을 멋진 작품으로 구체화했듯이, 한국적 맥락에서 이 두 가지 관점의 탁월한 해석이 반영된 수작이 발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사진 출처 : https://ninerooms.gallery/post/183054802718


매거진의 이전글 레트로, 하지만 과거의 부활은 아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