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되자 여자는 사촌 언니를 찾아갔다. 지난 학기에 등록금을 빌려주어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 그 돈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번 돈인지 여자는 잘 알고 있었다. 시내버스 120번 보성여객을 타고 구로시장 입구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20미터 정도 내려가다 가게가 나오면 가게를 끼고 돌아 두 번째 집이라고 했다.
집은 비탈진 곳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함석지붕이 여름의 열기를 연기처럼 뿜어냈다. 저렴하고 빨리 지을 수 있어 경제적이겠지만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서 생활하기에 불편해 보였다. 게다가 지은 지 오래된 녹슨 지붕이 위태로워 보였다. 허름한 건물에서 삐져나온 전선이 어지럽게 하늘을 가렸고 바닥엔 쓰레기가 함부로 버려져 있었다. 담벼락엔 방뇨의 흔적이 냄새와 함께 생경하게 남아 있었다. 대문을 열면 긴 복도가 이어지고 복도를 끼고 양쪽으로 방문들이 빼곡히 줄지어 있었다. 복도 끝에 수돗가와 화장실이 있었다. 어느 방문을 열어야 하나 난감해할 때 언니가 오른쪽 세 번째 방문에서 나왔다.
“언니, 왜 이리 야위었어? 눈도 충혈되었고. 어디 아픈 것 아냐?”
“주야간 2교대라 좀 힘들어.”
언니는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집이 좀 누추해. 내년엔 좀 큰 집으로 이사 갈 거야.“
세 명이 누우면 꽉 차는 방에서 여섯 명이 지낸다고 했다. 주야간 2교대라 출근조가 나간 사이 퇴근조가 방을 차지하고 쉬었다. 세면장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방문이 8개였으므로 최대 48명이 하나의 세면대에서 씻고 하나의 화장실에서 볼일을 봐야 했다. 방안엔 별도의 수도가 없어 세면장에서 쌀을 씻고 반찬거리를 다듬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컬러티브이가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흑백티브이도 없었다. 어차피 티브이 볼 시간도 없다며 언니는 어설프게 웃었다.
”작은 엄마가 너희 가르치겠다고 일찍 서울 오셔서 고생한 보람이 있네. 대학 졸업하면 돈 많이 벌어 효도해. 네 엄마가 고생 많이 하신 것 잘 알지?”
언니는 소금기 없는 눈빛으로 여자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가 시장에 좌판을 놓고 행상을 하지만 이런 가난은 아니었다. 우리집엔 작년에 들여놓은 컬러티브이가 있다. 냉장고 세탁기도 있다. 공동 화장실을 어릴 적에 사용한 기억은 있지만 중학교 이후엔 화장실 달린 집에서 살았다.
언니는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데, 눈이 충혈되도록 잠을 설쳐가며 일하는데, 더운 여름날 환기도 안 되는 곳에서 전자부품이 뿜어내는 온갖 위험한 냄새를 맡아가며 일하는데. 성실하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넘치도록 노동을 하지만 언니는 항상 빈손이다. 뼈를 갈아 넣어도 가난은 그대로다. 민주쟁취, 민족해방 이런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면 제대로 살 수 있는 사회를 원할 뿐이다. 왜 이런 당연한 것이 불가능할까?
언니는 칠 공주 중 둘째였다. 밭뙈기 한 평 없는 시골 살림은 궁색했다. 언니네 집은 흙벽에 초가지붕이었다. 동네 뒷산에서 주워 온 솔가지와 나뭇가지로 불을 때었다. 전기는 저녁밥 짓는 시간에만 제한적으로 공급되었다. 대부분의 저녁 시간은 호롱불이 전기를 대신했다. 언니의 아버지는 소작농으로 마소(馬牛)처럼 일했지만 끝없이 따라붙는 가난을 어쩌지 못했다. 농사일은 일손이 필요했다. 언니는 농사와 가사 일로 내몰렸다. 입에 풀칠하기 힘든 살림에 중학교 이상의 학업은 사치였다.
언니는 중학교를 마치자 서울에 사는 먼 친척집에 식모로 보내졌다. 먼 친척은 생면부지 남보다 더 간악했다. 돈을 훔쳤다고 언니를 쥐잡듯이 괴롭히고 못 견디게 다그쳤다. 언니는 ‘저는 제가 노력해서 번 돈만 씁니다.’라며 굽히지 않고 맞섰다. 결국 그 집 아들이 유흥비로 훔쳐 간 것으로 밝혀졌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다. 이 집을 떠난다고 언니가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돈 한푼 없이 쫓겨난 꼴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곳의 지긋지긋한 가난도 견딜 수 없었다.
바깥 세상은 언니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다. 손 뻗어볼 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현실을 절감할수록 겁나고 두려웠다. 하지만 그곳에 머무는 것은 너무도 수치스러웠다.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자 격려나 응원이 없어도 용기가 솟았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연대를 한다. 수소문과 연결 그리고 소개를 통해 언니는 전자부품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새로운 일자리도 꿈과 희망은 아니었다. 새로운 지옥이었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긴 노동을 견뎌야 했다. 작업환경은 열악했다. 환기시설이나 안전 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겨울엔 뼛속까지 시렸다. 여름에는 열기로 호흡곤란이 왔다. 언니의 삶은 비틀렸으며 운명은 저주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