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봉에 서다

by 정재환

앵 에앵 앵앵앵 사이렌 소리가 경고도 없이 함부로 울렸다. 조용한 동네가 찢어질 듯 요란했다. 오후 두 시였다. 국민 여러분 훈령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 여자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가슴이 불안해진다. 1986년 5월 3일, 인천에서도 사이렌이 울렸고 여자는 사이렌이 뿜어내는 그 낯선 기운에 취해 비틀거렸다.

1986년 4월, 야당은 직선제개헌을 위한 서명운동에 돌입하며 과격한 좌익학생과는 단절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이라는 구호를 과격하고 급진적이라 했다. 소수 학생의 과격한 주장을. 지지할 수 없다는 야당의 선 긋기에 학생운동권은 분개하며 인천에 모였다. 시위대는 도로를 점거하며 스크럼을 짜고 농성에 돌입했다.


그때까지 가두시위는 일상적이었고 경찰의 대응도 검거보다는 시위대 해산이 목적이었다. 검거된 몇 안 되는 학생들에게도 관대했다. 시위 일시나 장소를 알게 된 배경에 대한 진술도 형식적이었다. 학생회관 화장실에 붙어 있던 찌라시를 보고 호기심에 왔다거나(물론 시위는 하지 않고 구경만 했다고 둘러댔고) 시위 장소 근처 다방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기로 했는데 이유도 모른 채 잡혀 왔다고 볼멘소리를 하면 그만이었다. 경찰도 학생들을 즉심에 넘겨 이래저래 일을 만드는 것이 귀찮기도 했다. 경찰의 태도 전환은 도둑처럼 왔다. 야당이 학생운동을 급진적이고 과격하다고 선을 긋는 것이 신호탄이었다. 정권은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핵심을 색출하고 잡아들여 씨를 말리겠다고 나섰다. 호전적이고 단호했다.

얼마 전 일이다. 경찰서에 잡혀간 시위 학생들에게 정보과 형사가 말했다.

“학생회관 화장실에서 찌라시 보고 시위나온 사람 이리 나와.“

시위가담자 모두가 나왔다. 형사가 나가고 몽둥이를 든 전투경찰이 들어왔다. 매타작이 시작됐다. 통증은 두려움을 덧대었다. 생겨난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성을 마비시키며 존엄을 훼손시켰다. 다시 형사가 들어왔다.

”아직도 화장실에서 찌라시보고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 나오세요.“

반말보다 존댓말이 더 무서웠다. 이번엔 너댓 명만이 나왔고 그들은 끌려 나갔다. 장소가 바뀌면서 매타작은 더 혹독했다. 형사가 다시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아직도 찌라시 보고 온 사람.“

이번엔 한 명만이 나왔다. 장신에 거구였다. 자존심과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듯 당당했다. 두려움에 질식되지 않겠다는 의지가 눈빛으로 드러났다. 죽도록 맞았다. 이전처럼 몽둥이로 마구잡이로 패는 것이 아니었다. 급소만 쳤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고통이 이어졌다. 정신을 가다듬으면 이번엔 발길질이 날아왔다.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다시 정신이 몽롱해졌다. 의식이 아득해지고 고통이 둔탁하게 느껴지는 순간 뻑소리가 났다. 고문 기술자들도 실수가 있는 법이다. 상처 하나 나지 않고 타박상 흔적도 없이 매끈하게 처리하던 그들이 코뼈를 부러뜨렸다. 코뼈가 부러진 시위가담자는 경기도 외곽에 한밤중에 버려졌다. 어느 선량한 동네 주민의 도움으로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시위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뻗쳐올랐다. 도로를 장시간 점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찰병력이 출동하고 바로 진압되었던 이전과는 풍경이 달랐다. 경찰은 눈에 띄게 망설이며 주저했다.

전투경찰부대는 시위대가 점령한 도로를 모두 차단했지만, 시위대와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시위대에 워낙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있어서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시위대를 흥분시키지 않으려 했다. 증거채집을 위한 사진 촬영도 시위대가 보지 못하게 뒤에서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시위대가 점거한 도로는 해방구가 되어 온갖 구호로 뒤덮였다. 평온해 보였다. 이대로라면 날이 저물도록 해방구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자는 경계심을 늦추었다.


“혹시 검거되거든 학생회관 여자화장실에서 찌라시 보고 왔다고 해.”

덕주가 여자에게 무심한 듯 말했다.

“응. 알고 있어. 그런데 너무 뻔하지 않나?”

매번 시위 나갈 때마다 똑같은 알리바이를 이야기하는 것에 식상한 여자가 풋 웃으며 대꾸했다.

“맞아. 좀 허술하지. 경찰도 바보가 아닌데.”

”만약 잡히고 버티기 힘들면 내 이름을 대. 내가 시위 장소와 시간을 알려줬다고 해.“

덕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덕주 너는 어떻게 되는데? 배후 주동자가 되는 것 아냐? 수배되고 감옥에 가게 되는 거잖아?‘

여자는 이런 경우를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다급했고 무서웠다.

“난 노동운동을 할 거야. 공장노동자가 될 거야.”

덕주는 여자의 질문을 외면하며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왜 그런 중요한 결정을 나하고는 한 번도 상의하지 않은 거야?”

여자는 내가 얼마나 더 많은 책을 읽어야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토론을 더 치열하게 하면 공감할 수 있을까? 의아하고 답답했다. 나한테 사전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설명도 없이 이럴 수가 있나? 눈물이 났다. 걷잡을 수 없는 상실감이 밀려왔다.

“네가 힘들까 봐.”

덕주가 여자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들릴 듯 말 듯 아주 자그맣게 말했다. 여자는 덕주가 무슨 말을 더하길 기다리며 덕주를 바라보기만 했다.


삐익 삑삑 호루라기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소리를 신호로 전투경찰의 대오가 시위대를 향했다. 땅을 박차는 군홧발 소리가 질서정연했다. 소리는 쿵쿵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고 단호했다. 소리는 공격을 예고했다. 사기를 꺾고 의지를 주춤거리게 했다. 시위대의 구호가 함성으로 바뀌었고 긴장한 숨소리가 팽팽한 기압을 이루었다. 여자는 손에 목장갑을 끼고 화염병을 집었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독재타도 민주쟁취. 화염병을 힘껏 던졌다. 이천만 노동자, 농민 생존권 위협하는 군부독재 타도하자. 여자가 좋아하는 구호였다. 두 번째 화염병에 불을 붙였다.


전투경찰은 방패를 바짝 세워 머리 위로 날아 오는 돌과 화염병을 막았다. 뒤에 있는 분대 선임과 사복 체포조를 보호해야 한다. 세워 올린 방패 때문에 무릎 쪽으로 파고드는 돌은 피하기 힘들었다. 무릎 보호대는 통증을 다 막아내지 못했다.


사복 체포조가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다. 보통은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오늘은 검거가 우선이다. 야당은 시위대에 등을 돌렸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은 없다, 이번 기회에 검거를 통해 조직을 와해시켜야 한다, 뿌리를 뽑아야 한다, 씨를 말리겠다, 퇴로는 봉쇄된 상태다, 앞에서 화염병을 던지던 놈들부터 검거하면 된다, 그들이 무너지면 시위대의 사기는 꺾이고 대열은 무너질 것이다, 지금은 거센 파도처럼 드세지만 대열이 무너지면 오합지졸이다, 그때 한 놈씩 한 년씩 마당에 떨어진 감 줍듯이 검거하면 끝이다.

사복 체포조가 먹잇감을 향하는 야수같이 시위대 선두를 향해 달려왔다. 뒤엔 전투경찰이 막아섰다. 독 안에 든 쥐다. 여자는 사복 체포조와 맞섰다. 각목을 치켜든 덕주가 여자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체포조와 여자의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지자 덕주가 다급히 소리쳤다.

“순영아, 저기 미장원 옆 좁은 골목길 보이지. 그 길을 쭉 따라가. 거긴 병력이 없어.”


체포조는 자신을 향해 돌진해 온 덕주의 배를 가격했다. 덕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뒤따르던 다른 체포조가 골목길을 향하는 순영을 보고 뒤쫓으려 했다. 덕주는 쓰러진 몸을 일으켜 체포조를 잡고 늘어졌다. 경찰봉이 날아오고 발길질이 뒤를 이었다. 불빛이 희미해지고 세상이 작동을 멈추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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