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책

by 정재환

“오! 맙소사. 호봉계산을 잘못해서 월급이 잘못 나갔다고? 그것도 무려 10개월 동안이나? 그래서 백여 만원을 토해내야 된다고? 아이고, 정숙씨 장하십니다. 일부러 하려고 해도 힘든 일을 하셨네.”

“와! 이 와중에 월차를 쓰시겠다고요? 내일이 보일러 점검하는 날인데? 시설주임이 월차를 쓰면 점검은 누가 하나요? 뭐? 외부 업체가 와서 점검하는 것이라 시설주임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그럼 시설주임은 월차 쓰세요. 대신 총괄팀장께서 외부 업체하고 같이 점검하세요. 총괄팀장께선 보일러 켜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죠? 오케이?”

결재 서류를 들여다보던 여자는 오늘만큼은 싫은 소리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마구 퍼붓는 순간 속은 시원했지만 시원함은 너무 짧게 흩어졌다. 후회는 휘발되지 않은 채 길게 이어졌다. 정숙씨 혼자 회계처리를 하다보니 규정을 놓친 거지. 김 팀장이 한 번 더 체크하면 해결될 일인데 먼저 화부터 냈으니. 화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이 나이에도 감정조절이 안 되니. 월차는 쓰고 싶을 때 쓰는 거지 허락받고 쓰는 것이 아닌데. 시설 점검이 있으니 내일은 출근하시고 다른 날 월차를 쓰시면 어떠냐고 양해를 구했어야지. 어휴 난 아직도 마음 수양이 안 됐으니. 여자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는 자기학대에 가까운 반성과 성찰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덕주가 체포되어 경찰서로 이송된 뒤 여자는 발작에 가까운 불안 상태에 빠졌다. 불안은 늪처럼 서서히 그러나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덕주가 구속되거나 모진 고문에 어찌 될까 봐 숨쉬는 것도 힘들었다. 체포조에서 벗어나 휘청거리며 골목길에 들어서며 그녀는 뒤돌아보았다. 덕주는 체포조의 다리를 끝까지 부여잡고 있었다. 체포조가 그녀를 체포하지 못하게 모질게 맞아가며 버티었다. 내가 체포조와 맞서는 게 아니었는데. 시위대열에 몸을 숨기면 위기를 모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자는 체포조에 쫓기는 그 찰나에 이런 판단들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꼬리를 무는 자책에 시달렸다.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없는 날들이 길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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