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주의 하산길은 꿈꾸는 듯,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다. 시야가 뚜렷하지 않고 희미해졌다. 다리가 떨리고 몸이 휘청해서 주저앉았다. 마음이 크게 떨리고 두려웠다. 모든 환란이 안개 걷히듯 잠잠해지길 바랐지만 마음은 허물어졌고 희망은 불타버렸다.
"괜찮아요? 도와드릴까요?"
그림자가 덕주의 얼굴에 길게 드리웠다. 덕주가 지나쳐온 무수한 등산객 중 한 명일 것이다.
"아뇨. 고맙습니다. 혼자 갈 수 있습니다. 불타버린 돌을 무너진 흙더미에서 다시 꺼내 성벽을 쌓을 겁니다."
"예?"
"그가 차지할 몫은 없습니다. 그는 주장할 권리도, 기억할 만한 전통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무너질 겁니다."
"..."
등산객의 호의를 거절한 덕주의 눈빛엔 다시 초점이 생겼다.
덕주는 백담사에서 친구들을 놓쳤다. 친구들은 백담사 휴게소에서 백담사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올랐다. 덕주는 걸었고 백담사에서 친구가 안 보이자 끼니도 거르고 오르다 가장 빠른 길로 하산했다. 하산한 덕주는 택시를 타고 다시 백담사로 갔다. 친구들이 백담사나 소청에 없다면 중청까지 갈 것이다. 거기에도 없다면 대청까지 가리라. 친구를 만나 텐트를 치고 얼마 남지 않은 이 밤을 따뜻하게 보낼 것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친구들의 선한 손에 기대어 잠을 청할 것이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말할 것이다. 잠들지 않는 꿈에 대하여. 이렇게.
"친구야. 날이 밝으면 난 경찰서에 갈 거야. 전에 내가 이야기했던 신임 감사 기억하지? 그자가 회사에 온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거야. 술자리에 날 은밀히 불렀어. 회사에 재직 중인 학교 동문들이 그 자리에 있더라고. 기분이 언짢아서 일어서려는데 선배 한 분이 이러는 거 아니라며 강제로 앉히더라고. 술도 안 먹고 멀뚱히 앉아 있었어. 한 시간도 안 되어서 그 신임 감사가 막말을 하더라고. 네 에비에미가 널 그렇게 가르쳤냐며 삿대질도 했고. 여자 후배한테 추행도 했고. 이 정도면 형사처벌이 충분할 거야. 하산길 달빛 아래 긴 그림자가 내 얼굴을 덮을 때 바로 그 생각이 나더라고. 나의 신이 선하신 손길로 나를 보살펴 주셔서 나에게 기억나게 하신 거야.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