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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석 더 프리맨 Nov 05. 2022

무맛이라고? 추워야 맛드는 월동무

[푸드로지] 국민채소 무맛의 세계

  

서울 문래동 송원마포돼지갈비의 무생채비빔밥


■ 이우석의 푸드로지 - 무


동아시아서 즐겨 먹는 작물
한국선 김치의 주재료로 사용
조림·국물의 감칠맛 낼때나
짜장면 콤비 ‘단무지’로 인기
재배기간 짧고 가격도 저렴
과일 못지않은 비타민C 함유



  

초겨울, 무에 맛이 제대로 들었다.



배추와 함께 당당히 국민 채소로 이름을 올려온 것이 무(Radish)다.


실은 배추보다 훨씬 이르다. 한민족은 삼국시대부터 무를 재배하고 먹어왔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이고 지(漬)를 담그는 귀중한 채소였다. 김치도 배추보다 무로 먼저 담갔다. 일 년 내내 맛이 들진 않지만 땅이 얼기 전에 무 구덩이를 파서 저장해놓고 겨우내 먹을 정도로 우리 밥상과 늘 함께했다.



봄 무와 가을 무는 맵고 달기가 서로 다르다. 10월부터 수확하는 가을 무가 더욱 맛이 좋다. 제주 등 따스한 지역에서 11월부터 겨울까지 수확하는 무는 특별히 ‘월동무’라 부른다. 올가을, 다시 돌아온 무 맛이 밥상을 행복하게 한다. 시월부터 제대로 무 맛을 봐야 한다. 이처럼 대대로 소중한 작물이며 여전히 사랑받고 있지만 흔히들 맛이 아예 없을 때 무맛(無味)이라고 표현하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무는 배추와 가까운 친척 간이다. 배추과에 속하는 식물은 매우 많지만 그나마 가까운 뿌리채소다. 로마제국 등 유럽에서도 일찌감치 재배한 기록이 있듯 세계 곳곳에서 재배하는 작물이지만 특히나 동아시아에서 아주 즐겨 먹는다.

한자로는 나복(蘿蔔), 중국에서도 ‘뤄보’이지만 일본에선 그저 큰 뿌리라 해 다이콘(大根)이라 부른다.

나박김치도 나복에서 나온 이름이다.

지중해가 원산이지만 아주 오래전에 이미 전해 내려와 토종화됐다. 동양에서 주로 기르는 흰 무는 조선무, 중국무, 일본무 등으로 나누는데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조선무는 끄트머리가 뾰족하고, 중국무는 순무처럼 짧고 뭉툭하다. 일본무는 길쭉하고 늘씬하다.



사실상 모든 채소가 예전 것이 지금 것과 같지 않듯 무도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내려온 것은 아니다. 작고 왜소했던 조선무도 엄청나게 커졌다. 요즘 우리가 맛보는 무는 건장한 종아리만큼이나 커다랗고 웬만한 사과처럼 단맛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둥근 무, 복지 무 등으로 부르는 이 무는 진주대평무, 의성반청무, 중국청피무, 용현무 등 다양한 품종이 있다. 깍두기를 담그거나 치킨 무, 섞박지 등 그대로 식재료로 쓰거나 무채를 썰어 김장 소를 만들기도 한다.


희고 기다란 왜무로는 ‘예상대로’ 치자물을 들여 단무지를 담그는 데 쓴다. 총각김치를 담그는 데 쓰는 무는 총각무라고도 한다. 괜히 총각 행세를 하겠나. 얼굴 모양 곡선에 달린 무청이 총각 떠꺼머리와 닮았대서 그렇다.

뿌리가 작고 이파리가 야들야들한 열무는 물김치 등의 재료로 쓰는데 매콤한 맛이 좋아 비빔국수나 비빔밥 등에 넣으면 대번에 맛을 살린다. 시래기용 무도 있다. 보통은 뿌리채소로 먹는 게 무라지만 이 품종은 뿌리는 버리고 무청만 따로 말려 쓴다. 서늘한 곳에서 잘 자라는 습성이라 여름철에는 고랭지 이외에선 제대로 자라지도 않고 맛이 나지 않는다. 또 냉해를 입어도 ‘바람 든 무’라 해서 품질이 떨어진다.


한식에서 무는 정말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국에 넣고 생선이나 고기를 조릴 때 밑에 깔기도 한다. 물론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김치나 깍두기, 섞박지, 동치미, 무말랭이 등 무 그대로 반찬으로 쓸 때다. 달달하고 시원한 맛은 물론 입맛을 당장 살리는 특유의 톡 쏘는 맛도 품고 있다. 동치미의 청량한 맛은 가을 무에서 나온다. 막국수나 냉면 육수로도 딱이다.



  

무교원 원대구탕의 대구탕.



  

무김치에 싸먹는 답십리 성천막국수.



  

단무지와 뗄 수 없는 짜장면.



  

팀호완 무 케이크.



영양성분도 나무랄 바 없다. 뿌리에는 수분이 많지만 미량의 단백질과 탄수화물, 섬유질이 들었고 특히 비타민이 많다. 비타민 C 함량은 과일 못지않게 많아 겨울철 따로 채소나 과일 섭취가 어려울 때 무만 제대로 챙겨 먹어도 감기 예방에 좋다. 무에는 소화효소도 있어 민간 소화제로도 쓰인다. 퍽퍽한 곡물을 먹을 때 동치미 국물을 한 사발 떠먹으면 소화가 잘된다. 괜히 치킨에 무를 곁들이는 게 아니다. 무 안에 함유된 아밀라아제(디아스타아제) 등 효소가 전분을 분해하고 소화를 돕는다.


식이섬유(dietary fiber)도 다량 함유해 장에 좋다. 특히 무청을 말린 시래기에는 일반 잎채소보다 훨씬 많은 식이섬유가 들었다. 무청에는 식이섬유 이외에도 카로틴, 철분, 칼슘 등이 뿌리보다 풍부하다. 연탄가스에 동치미가 좋다는 말처럼 실제로 연기나 가스 중독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겨울 산삼, 즉 동삼(冬蔘)이라는 별명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의학에선 삼과는 달리 무에는 찬 기운이 많아 평소 열이 많은 이들에겐 상관없지만 냉한 사람들에겐 그리 좋지 않다고도 한다.



값싸고 맛이 좋은 무는 국이나 조림에 빠지지 않는 재료다. 찌개부터 조림, 국 등 대부분의 국물 요리에 들어간다. 특히 생선조림은 생선의 맛이 모두 무에 배어들어 부드럽고 감칠맛 넘치는 ‘주연 아닌 조연’이 된다. 갈치나 고등어조림 밑에 깔린 무는 사실 가장 맛있는 재료다. 도시락엔 무말랭이가 자연스럽고, 만두나 짜장면을 먹을 때도 무(단무지)가 없으면 섭섭하다. 버릴 게 없다. 무청은 시래기로 말리고 샐러드엔 무순을 쓰고 갈아서는 무떡도 만든다. 콩나물밥처럼 무밥을 하기도 한다.



이는 일본에서도 비슷하다. 찜 요리에 다이콘을 즐겨 쓴다. 하나씩 따로 파는 어묵에서도 다이콘은 꽤 인기가 있어 값비싼 메뉴로 꼽힌다. 무를 갈아서 만든 다이콘오로시는 생선구이나 메밀국수를 먹을 때 빠지지 않는 재료다. 특히 아침 식사에는 늘 밥 위에 다이콘오로시를 곁들인다. 치자물을 들여 절인 다쿠안도 주먹밥 재료 등 다양한 음식에 활용된다.



중국인도 일상적으로 무를 즐겨 먹어왔는데 삼국지에 이와 관련한 일화도 내려온다. 조조가 풍토병에 걸린 자신의 병사들에게 삶은 무를 먹여 고쳤다는 내용이다. 이 비법을 알려준 당 씨 노인을 무의 왕으로 봉했다는 이야기다. 실제였는지는 모르지만 중국에선 그 정도로 무의 효능에 주목하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무를 갈아 만든 무 케이크가 인기다. 특유의 구수한 맛이 든 무 케이크는 은은한 단맛이 매력이다.




이외에도 인천 강화도 특산물로 유명한 순무가 있는데 사실 순무는 무와 다른 속에 속한다. 무보다는 배추에 더 가까운 식물이다. 이파리를 위주로 개량한 것이 배추이며 뿌리를 먹을 셈으로 개량한 것이 순무라 보면 된다. 순무는 짧고 둥글게 자라며 색은 붉은빛을 띤다. 무에 비해 수분이 적어 땡감을 베어 물 때의 식감이 나며 좀 더 달달하다. 재배 기간도 짧아 서양에선 감자를 들여오기 전까지 구황작물로 썼다.



 동양에서도 마찬가지. 중국 문헌에 따르면 순무는 제갈채(諸葛菜)라고도 불렸는데, 삼국시대 촉의 제갈량(諸葛亮)은 북벌 과정에서 식량난에 대비해 둔전을 실시하며 순무를 심도록 했다고 한다. 그만큼 값도 싸고 빨리 자라는 데다 영양도 두둑했던 까닭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순무를 이롭기만 하고 해로운 것이 전혀 없는 채소로 소개하고 있다. 또 오장을 좋아지게 하고 음식을 소화시키며 기를 내리고 황달을 치료한다는 효능을 기록했다. 강화도는 예로부터 토양이 맞아 순무가 잘 자란다. 특산물로 순무김치를 자랑한다.



이래저래 무는 우리네 식탁에 단골로 오르는 식재료다. 날이 선선해 그 커다란 뿌리에 단맛이 감돌기 시작하면 상차림이 달라진다. 구수한 향과 은근한 단맛이 말도 사람도 살찌우는 가을이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무생채비빔밥 = ‘송원마포돼지갈비’는 문래동의 돼지갈비 노포다. 옛날식 간장 양념에 재운 갈비를 구워 고추장을 찍어 먹는 방식으로 단골손님을 몰고 있다. 마지막에 무채 비빔밥을 빼먹으면 아쉽다. 달달하고 아삭한 무생채와 화끈한 고추장이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한다. 훌륭한 식사의 마무리다.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47길 14000원.



◇무생채 = ‘장위동 유성집’은 한우등심구이를 잘하는 노포다. 50여 년 전부터 변두리에 있었지만 질 좋은 한우 한 가지만 내는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 명성을 쌓았다. 반찬은 달랑 무생채 하나지만 달달하고 구수한 생채가 기름진 고기의 느끼함을 말끔히 걷어준다. 소화도 돕고 입맛도 살린다. 고기와도 어울리고 국수와도 절묘하게 맞는다. 서울 성북구 화랑로 118. 한우등심(180g) 4만9000원.



◇대구탕 = ‘무교원 원대구탕’. 대구탕 집인데 푹 익혀낸 큼지막한 무가 압권이다. 담백한 대구 토막과 커다란 무가 하나씩 달랑 들었다. 달고 부드럽고 시원하다. 무를 한입 베어 물면 툭 터지며 시원한 대구탕 국물이 입안에 퍼져간다. 특유의 무즙 맛이 더해지며 그냥 국물을 삼킬 때보다 더욱 진한 풍미를 낸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11길 42. 1만1000원.



◇무 케이크 = ‘팀호완’. 홍콩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팀호완이 자랑하는 디저트다. 딤섬 종류인 무 케이크는 현지에서 인기 메뉴다. 갈아낸 무 특유의 아삭함만 걷어낸 질감에 달달하면서도 살짝 구릿한 무의 향이 가득하다. 딤섬 중간에 쉬어가는 맛으로 즐겨도, 뜨거운 국물의 국수 종류와 곁들여도 좋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23길 55 아이파크몰 패션파크 1층. 6000원.


◇무떡 = 홍콩식 딤섬과 다양한 메뉴를 내는 티엔미미가 홍대에도 생겼다. 매장이 넓어지면서 정지선 셰프의 다채로운 구성이 입맛을 자극한다. 딤섬이야 말할 것도 없고 무떡과 배추찜 등 새로운 메뉴가 생겼다. 딤섬 중간에 맛보는 홍콩식 무떡은 새로운 풍미를 선사할 뿐 아니라 소화도 돕는다. 살짜기 달달하면서도 구수한 맛을 내니 입맛을 끌어내는데는 일등공신이다. 서울 마포구 양화로 144 4층(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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