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연재-이우석의 푸드로지
현정화 양영자, 배삼룡 이기동, 서경석 이윤석
인생사 사주팔자 궁합처럼 음식에도 결혼 못잖은 궁합이 있다. 짝을 지으니 맛을 더 좋게 내는 경우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뭔가 짝을 짓는 것을 좋아한다. 화음의 음악, 복식 스포츠, 버디 영화도 그렇지만 음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각각 고유의 맛을 이끌어 내고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는 음식 궁합. 어떤 커플이 가장 맛있는지 알아봤다.
우선 고기와 해산물 조합이 있다. 이 궁합의 대표적인 메뉴로는 주꾸미와 삼겹살 또는 오징어와 삼겹살이 있다. ‘쭈삼’ 또는 ‘오삼’이라 한다. 주꾸미와 오징어는 연체동물로 기름기가 거의 없다. 반면 삼겹살은 기름투성이다. 지방이 많은 삼겹살에 주꾸미와 오징어를 넣으면 느끼한 맛이 가신다. 여기서 착안한 것이 주꾸미를 삼겹살과 함께 먹는 것이다. 들들 볶아 먹으니 서로 맛을 보완하며 시너지를 낸다. 쫄깃하고 탱탱한 저작감(咀嚼感)은 그대로 두고 고소한 동물성 기름이 더해져 맛이 깊어진다. 우선 양념 자체가 매콤 칼칼하고 삼겹살만 먹는 것보다 몸에 덜 미안(?)하기도 하니 많은 여성이 이 조합을 좋아한다. 칼칼한 주꾸미 볶음에 기름이 스며 매운맛도 가시니 양념 조합도 딱이다. 입맛을 위한 동맹이다.
낙지엔 불고기나 곱창을 넣는다. 한발 더 나아가 ‘불낙새(불고기+낙지+새우)’ ‘낙곱새(낙지+곱창+새우)’ 등의 삼자동맹도 있다. 볶지 않고 백숙을 끓인다면 토종닭과 함께 전복이나 낙지를 넣고 ‘해천탕(또는 해신탕)’이라 불리는 조합이 인기다. 몸에 좋다는 바다와 육지 재료가 한 솥(도시락집이 아니다)에서 만났다. 비싸고 영양가 높은 식재료가 한데 모였으니 얼마나 맛이 좋을까. 담백한 맛이 잘 어울린다.
오랜 시간 인류가 발견한 맛의 조합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주변만 둘러봐도 고구마와 동치미(또는 물김치), 여름날 찻물에 밥을 말아 올리는 오이지, 치킨에 무, 설렁탕에 깍두기, 자장면에 곁들이는 단무지 등이 여전히 대중적인 공감을 얻고 있다.
김장하면 돼지고기를 삶아 갓 담근 김치와 함께 먹는데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경기지방 음식인 보쌈은 수육과 따로 보쌈김치를 담가 함께 낸다. 존득하고 부드러운 수육에 아삭한 무와 달착지근한 김치가 고기의 감칠맛을 돋운다. 김치찌개처럼 돼지고기와 김치는 누구나 인정하는 조합, 아니 찰떡궁합이기 때문이다.(레이먼 김 셰프처럼 김치찌개엔 참치가 어울린다고 주장하는 이도 간혹 있다)
김치와 돼지고기에 아예 하나 더 내는 경우도 있다. 곰삭은 묵은지에 돼지 수육, 그리고 푹 삭힌 홍어회까지 세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이를 따로 ‘삼합(三合)’이라 부른다. 삼합의 원리는 동양에서 완전한 수를 이르는 3에서 비롯됐다. 달라도 아주 다른 세 가지가 하나를 이룬다는 의미. 동양철학이나 한의학에서도 삼합을 이야기한다. 음식에선 세가지 식재료의 조합을 일컫는다.
광주·목포권에는 홍탁삼합(洪濁三合·홍어와 막걸리에 곁들이는 안주)이, 장흥에는 장흥삼합이 유명하지만, 지금은 마케팅 차원에서 많이 개발한 탓인지 서울삼합, 부산삼합, 충주삼합, 여수삼합 등 다양한 삼합이 트렌드를 타고 쏟아지고 있다. 가장 이름을 많이 떨친 홍탁삼합은 원래 돼지고기가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홍어가 이름을 올리면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몸값 비싼 놈이 제 이름을 붙이는 게 맞는다.
장흥삼합은 역사가 오랜 음식은 아니다. 해산물이 풍부한 장흥군이 한우를 많이 키우면서 생겨났다. ‘뭔가 먹을 줄 아는 동네’에서 입맛에 맞춰 자생적으로 형성된 문화라 할 수 있다. 소고기를 구워 키조개 관자와 표고버섯을 올린다. 고기와 해산물, 채소가 함께 맛의 화음을 낸다. 육즙 풍부한 한우의 짭조름한 맛, 쫄깃한 식감의 관자, 그리고 감칠맛의 상징인 표고버섯이 함께 씹히면 ‘제4의 맛’을 느낄 수 있다.장흥삼합
이런 ‘조합의 맛’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항상 곁들이는 두세 가지 식재료의 찰떡궁합이다. 서프 앤드 터프(surf and turf)는 육류와 해산물 요리를 함께 내는 것을 뜻한다. 일종의 ‘쭈삼’인 셈이다. 프렌치 다이닝에서는 서프 앤드 터프가 메인요리로 들어가는 경우를 더 고급으로 친다. 보통은 소고기와 새우, 랍스터 등 갑각류를 조합하는데, 유럽에선 사슴고기, 오리고기 등 가축, 가금류를 흰살생선과 함께 내기도 한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류니끄’는 여름 코스 메뉴에 갑오징어와 판체타, 라르도(라드)를 사용한 서프 앤드 터프를 내세우고 있다. 소고기를 많이 생산하는 호주에선 따로 리프 앤드 비프(reef and beef)라 분류해서 쓴다.
주재료+부재료 조합은 서양식에도 많다. 피자와 피클은 이미 잘 알려진 조합이며, 독일에선 슈바인스학센(족발)에 사워크라우트(sauerkraut·양배추 절임)를 반드시 곁들인다. 서유럽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가끔 내는 메뉴 중 연어와 돼지고기는 아예 돌돌 말아 함께 훈연해 한입 크기로 차린다. 이 경우에도 식감의 차이가 전혀 새로운 맛을 내는 데 도움을 준다. 중동에서는 양고기에 민트젤리소스를 곁들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영국의 영향이다. 원래는 커민과 후추 등 전통 향신료와 함께 조리했다. 영국 식민지배 시절 양고기는 반드시 박하를 넣은 민트젤리소스와 함께 먹는 레시피를 퍼뜨렸다고 한다.
일본은 조합에 무척 신경 쓰는 인상이다. 소고기덮밥(규동)에 붉은 초생강(쇼가), 스시에 락교, 스키야키에 난황(달걀 노른자), 메밀국수(소바)에 무 등 마치 독일의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처럼 ‘이렇게 써야 한다’는 조항이라도 있는 양 철저히 따른다. 어디를 가든 이 같은 규칙을 지키고 있으니 일본 국민 모두 숙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심지어 달걀프라이에 우스터소스 혹은 간장 등 개인별·지역별 가장 선호하는 소스의 조합까지 따로 정해 둘 정도다.
맛을 내기 위한 궁합도 있지만, 함께 섭취하면 영양가를 해치거나 오히려 건강에 해로워 꺼리는 최악의 조합도 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여름철에 많이 먹던 ‘토마토와 설탕’ 조합이다. 설탕을 뿌려 먹으면 맛이 좋지만, 토마토가 함유한 비타민 B1 성분이 파괴된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지만 맥주와 땅콩도 그렇다. 숙취를 지속시키고 속 쓰림을 유발한다. 당근과 오이 역시 같이 썰어놓으면 색상 대비가 고와서 샐러드에 많이 넣지만 함께 섭취하면 좋지 않다. 특히 당근의 껍질 부분에 함유된 아스코르비나아제(ascorbinase)는 비타민 C 파괴 효소다. 미역과 파는 최악이다. 파의 인 성분이 미역의 칼슘 흡수를 막을 뿐만 아니라 맛도 없다. 미역국에 파를 넣지 않는 이유다. 미역이 많이 든 너구리 라면에도 파를 넣지 않는 것이 좋다.
영양학적으로 주재료를 도와주는 부재료도 많다. 돼지고기찜에 새우젓, 뱀장어에 생강, 곱창구이·돼지국밥에 부추, 감자샐러드에 치즈, 닭고깃국에 삼, 복국에 미나리, 선짓국에 시래기 등이다. 특히 선지는 철분 등 무기질이 풍부한 식재료다. 다만 변비를 유발하기 쉬운데 섬유질이 많은 시래기를 찾아 함께 끓여 먹은 조상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기름기가 많은 곱창을 구울 때도 부추를 넣으면 섬유소와 무기질(칼륨)이 피를 맑게 해주니 궁합이 딱이다. 간 해독에 좋은 비타민 A와 C가 풍부한 까닭에 술안주에 부추를 많이 넣으면 좋다.
이처럼 다른 존재는 홀로서기보다는 각자 서로를 도와주는 가운데 동반 상승할 수 있음을 우리 식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호사가들이 그것을 궁합이라 부르든 천상의 조합이라 말하든, 인간 세상의 만고불변의 이치인 ‘어울림의 소중함’을 우리는 밥상머리에서 배운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안주·식사 모두 좋은 ‘교동집’ 주꾸미삼겹살… 알싸한 묵은지 ‘오미락’ 홍어삼합
매콤한 주꾸미 삼겹살 불고기를 내놓는 식당은 서울 시내 곳곳에 있지만 ‘교동집’이 유명하다. 홍대 입구 일대에서 주꾸미 볶음으로 오랜 역사를 지닌 맛집이다. 칼칼하고 매콤한 양념에 재운 주꾸미와 삼겹살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일단 둥근 번철에 삼겹살을 빙 두르고 주꾸미를 가운데 놓고 볶아 먹는다. 삼겹살 기름이 가운데로 흘러들어 주꾸미의 담백한 맛을 보완한다. 안주로도 식사로도 좋다.
알배기나 제철 주꾸미는 아니지만, 머리까지 저릿한 양념이 맛있다. 기분 나쁘지 않게 맵고 탱탱한 주꾸미 맛과 잘 어울린다. 볶음을 먹은 후 밥을 볶아먹어야 한다. 밥도 잘 어울려 제3의 궁합임을 곧 깨닫는다. 1, 2층으로 자리는 넓은 편이지만 시원한 날씨에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먹을 수 있는 1층이 좋다는 것을 먹다 보면 알게 된다.
홍어삼합의 ‘수도’ 격인 목포 하당에 있는 ‘오미락’은 홍어삼합을 곧잘 한다. 홍어회의 강력한 풍미와 묵은지의 알싸한 맛을 두툼하고 부들부들한 삼겹살로 감싸 안는 어울림의 미학(味學)을 체험할 수 있다. 각기 다른 맛의 재료가 서로 보합해 새로운 맛을 내는 홍어삼합은 특출난 음색의 솔로 가수들이 모인 프로젝트 그룹 같은 모양새다. 해산물과 육지의 것, 그리고 이들을 지휘할 강한 맛의 채소(김치)가 들어간다. 아직 삭힌 홍어가 두렵다면 그리 삭히지 않은 차진 식감의 홍어를 주문하면 된다. 홍어는 숙성미도 좋지만 자체의 씹는 맛도 찰떡처럼 존득해 그 맛을 찾는 사람이 많다.
장흥삼합이야말로 새로운 궁합의 선두주자다. TV 여행 테마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전 국민에게 이미 알려진 장흥삼합은 그 호화로운 식재료 구성만으로도 눈길을 잡아두기에 충분하다. 장흥 한우에 키조개 관자, 표고버섯을 함께 구워 먹는 것이 장흥삼합이다. 쌈에 키조개 관자를 얹고 그 위에 소고기와 표고버섯을 올린 다음 입안에 넣으면 진한 감칠맛이 그윽하게 퍼진다. 향과 맛이 잘 어우러지는 삼합이다. 특히 담백하면서도 쫄깃한 관자가 들어가 폭신폭신하며 꼬들꼬들 씹히는 느낌이 압권이다.
장흥은 호수(장흥호), 바다(득량만), 산(천관산·가지산), 강(탐진강) 등을 안고 있어 모든 재료가 이곳에서 나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로컬 식재료’의 매력 포인트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장흥 ‘만나숯불갈비’는 좋은 고기와 화려한 칼솜씨로 장흥삼합의 맛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곳. 고소한 한우삼합을 보다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솜씨’까지 가히 사합(四合)이라 부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