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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살점이 맺힌 순대의 전쟁

[문화일보 연재] 인류의 침략전쟁이 낳은 유산, 순대와 소시지

by 이우석 더 프리맨
싸우자, 밥 먼저 먹고

인류가 전쟁할 땐 늘 새로운 음식이 탄생했다. 건빵과 비스킷이 그랬고 인스턴트 라면도 포화 속에 생겨났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전쟁 역시 식후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전쟁 기간 탄생한 대부분 전투식량은 지금의 일상 메뉴가 되었다. 식품공학은 전쟁 때 가장 눈부시게 발전한 셈이다. 유라시아 북부 유목민의 서진(西進) 침략전쟁에선 육포와 순대가 생겨났다. 유럽의 바다엔 바이킹이 그토록 지겨워했을 말린 대구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지금이야 시장에 온 주부들과 밑뚫린 위장의 고교생 주요 간식 거리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만. 순대는 대표적 전쟁음식(MRE)이었다.


느린 가축떼를 끌고 원정을 갈 수 없는 기마병단은 가축을 죄다 도축하고 육포와 순대로 만들어 이를 둘둘 말아 안장에 차고 출정했다고 한다.


몽골기병의 생명줄 순대-s.jpg 기마병의 생명줄같은 순대

육포와 순대는 고기가 상하지 않게 안전히 보관하고 간편히 섭취할 수 있는 고열량 음식. 전투식량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18세기 병조림과 통조림이 개발되기 전까지 순대(소시지)는 동서양에 매우 유용한 병참 물품으로 각광받았다.

순대의 제조 원리는 매우 그로테스크하다. 동물을 도축해 살을 발라내고 피와 함께 그 내장에 되집어넣는다. 가축 입장에선 겉과 속이 뒤집히는 셈이다.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의 살코기와 혈액이 되려 제 창자에 들어가는 일을.

가축의 운명이야 어찌됐든 유목민들은 먹일 풀이 바닥나는 추운 겨울을 앞두거나, 전쟁 등 장거리 이동을 해야할 때 늙고 병든 가축을 잡아 순대를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훌륭히 활용될만큼 창자는 최고의 포장재였다. 수분을 적당히 유지해주고 끈으로 양쪽을 밀봉해 휴대하기 편했다. 그을려두면 조리없이 그대로 썰어 먹을 수도 있었다. 현대의 ‘콜라겐 케이싱’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맛’까지 있다.

영양가도 충분했다. 고기의 단백질과 지방의 열량, 피의 무기질에다 함께 넣은 푸성귀의 섬유소까지 함께 들었다. 가축의 내장 속에는 소화효소까지 남아있었다. 초원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염분까지 혈액 속에 있으니 한마디로 완전식품이었다.

피순대.JPG 곡성 피순대와 수육

로마제국을 유린했던 훈(Hun) 족이나 최강 몽골 기마병의 가공할만한 진격 속도는 당시 최고의 전투식량 순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동고트 에르마나리크 왕이나 아바스의 칼리파 알 무스타심은 인정하기 싫었겠지만, 고작 순대에 당했다.

견고한 유럽의 성곽은 파죽지세로 무너져내렸고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잿더미가 되고 남은 터에 순대 만이 남았다.

유럽판 순대 소시지의 탄생이었다.

이 대목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아시아 전래설과 배치되는 의견은 유럽 자생설이다.

애초 그들도 낙농과 유목을 했고 육식을 했다. 또한 기나긴 겨울을 나야했기 때문에 창자에 고기를 넣어 보관하는 법은 스스로 터득했다는 이론이다.

이에 맞춰 그리스 로마 시대에 이미 피순대와 유사한 내장 요리가 생겨났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유럽과 아시아가 침략과 전쟁이라는 상호 접촉을 통해 서로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가설은 소시지와 순대 사이에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곡물과 채소를 넣고 창자를 말리는 방식은 중앙아시아에서 만들어져 전해졌을 것이란 견해다. 덕분에 현재도 매우 유사한 원리로 만들어진 각국의 전통 순대(소시지)를 찾아볼 수 있다.

순대스테이크.jpg 유럽의 고급 소시지와 원리나 맛이 흡사한 순대스테이크

오랜 세월 순대를 연구해온 육경희 씨가 직접 3년 6개월 간 한국, 중국, 유럽 등을 다니며 집필한 저서 순대실록에 따르면 순대의 존재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우리 찹쌀순대와 외양이 비슷한 모르시야(스페인), 부댕(프랑스), 피순대 격인 블랙 푸딩(영국), 비롤도, 부리스토(이탈리아), 해기스(스코틀랜드), 슈발츠부어스트(독일) 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순대에 대해 서로 비교하며 기술했다.

육 씨의 주장처럼 소시지와 순대는 제조와 섭취법에 있어 그 궤를 같이 해왔다.

특히 선지와 곡물을 함께 넣은 소시지는 누가 봐도 순대와 똑같다고 느낀다.

유럽의 ‘유사 순대’는 독자적 발전을 통해 ‘매우’ 훌륭한 식문화 장르를 개척했고, 지금은 그들의 ‘전통’이 됐다.

명색이 제국인데 자국령에 특별한 영향을 준 곳이 어디 유럽 뿐이랴.

북방민족에 수차례 중원을 내준 덕에 자연스레 중국에 전파된 순대는 소시지 샹창(香腸)과 라창(臘腸)의 형태로 각각 발전했다. 동북 지방의 샹창은 그곳에 살고 있던 조선족의 피밥(선지찹쌀순대)과 함께 별미로 인기를 끌고 있다.

광동지방의 라창(랍청)은 촉촉한 샹창과는 달리 바싹 말라 있어, 소시지처럼 잘게 잘라 볶음밥 재료로 쓰거나 삶아먹는다.

용인 백암 제일식당.JPG 국내 곳곳에 다양한 순대가 발전했다. 용인 백암순대

북방 유목민 군대는 한반도에도 내려왔다. 이때 순대(슌디)가 전해졌다. 만주어로 senggi duha(피와 창자)는 발음조차 비슷한 ‘순대(슌대)’가 됐다.


한국의 순대는 농경민족답게 곡물과 푸성귀를 많이 넣는 형태로 발전한다. 메밀이나 찹쌀을 넣고 아예 채소를 듬뿍 썰어넣기도 하는데 그래도 대부분 선지가 들어간다.

선지와 쌀만 넣거나(혹은 오직 선지만 굳혀 넣는다), 케이싱으로 대창을 쓰는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근대에 들어 시꺼먼 당면순대가 등장하면서 순대하면 떠오르는 지금의 형태가 대중에 인식됐지만, 구황식품에 가까운 당면순대는 기나긴 한민족의 순대 역사 속 매우 작은 사례에 불과하다.


순대실록 순대전골.jpg 순대를 끓인 순대전골, 아마 부대찌개의 소시지를 끓여보자는 발상 역시 여기서 출발한 듯 하다.

세계적으로 순대가 상용되고 있지만 거의 유일하게 국탕류로 끓여먹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순댓국은 든든한 한끼를 책임지는 서민들의 별미로 사랑받고 있다. 시장이 서면 늘 순댓국집이 붐빈다. 고깃국 중에 가장 저렴하고 푸짐하기 때문이다.


순대실록.jpg 순대실록의 전통 순대

푸짐한 전골은 안주로서 별미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것 저것 주워 먹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경기 용인 백암, 충남 천안 병천, 전북 피순대, 전남 암뽕순대, 강원 속초 아바이순대, 제주 메밀순대(수애) 등이 지역색을 선명히 드러내며 자릴 잡은 경우다.

지역에서 많이 나는 재료를 이용해 각각 특색있는 순대를 고안했고, 세월이 흐르며 뿌리를 내렸다.

이중 대창이나 막창을 쓰는 것은 속초 아바이순대와 전남 암뽕 순대, 제주 수애의 경우인데 실제 창자 부위라 두툼하고 고기 맛이 강해 고급‘요리’로서 이미지가 강하다.

아바이순대는 사실 함흥의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실향민이 대거 월남하며 고기소가 꽉찬 아바이순대를 이남에 알렸다. 돼지가 귀할 때 쓰는 오징어순대나 명태순대는 생선에 속을 채워넣는다는 뜻만 빌려왔다.

암뽕순대는 사실 암뽕(새끼보)과는 상관없다. 순댓집에서 막창으로 순대를 만들어 내주는데 곁들이는 고기류에 따로 암뽕을 끼워주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제주 수애(순대의 방언)는 막창에 메밀이나 보리가루를 선지에 섞어넣어 겉은 존득하며 속은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백암순대는 선지 대신 다진 고기와 채소를 터질 듯 많이 넣은 것이 특징이라 담백한 맛으로 사랑받는다. 한입 깨물면 마치 고기만두처럼 가득한 소가 입안에서 터지며 만족감을 준다. 선지를 거의 넣지않아 색도 밝아 순대에 거부감이 있는 이들에게 문턱이 낮다.

아우내(竝川) 장터 순대로 유명한 병천순대는 채소가 많이 들어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신선한 선지에 채소와 찹쌀 등을 다져넣어 집어 먹기에 부담이 없고 국밥에 넣으면 풍미가 더욱 좋아진다.

뱀파이어가 좋아할 듯한 피순대는 처음 맛보는 이들에겐 아주 두려운 존재감이다. 막창 순대 안에 선지 덩어리만 들었다. 전주한옥마을에 여행을 온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졌지만, 사실 전라북도에선 순대하면 피순대를 떠올리는게 보편적이다.

쫄깃한 막창과 부드러운 선지 덩어리를 함께 씹으면 터져나오는 진한 풍미에 길들여지면 고기나 채소를 넣은 순대는 싱겁게 느껴진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순대에는 함께 곁들이는 메뉴가 따로 정해져 있다.

창자에 소를 집어넣은 것을 ‘음식’ 순대라 부르지만 부속 내장과 머릿고기 일부를 함께 내줘야 비로소 ‘요리’ 순대가 된다.


곡성 순대.JPG 피순대 국밥(전남 곡성)

어묵과 무, 힘줄, 곤약, 달걀을 함께 넣은 요리인 오뎅과 같은 원리다(한국에선 어묵을 오뎅이라 부르지만). 순대란 이름에는 간, 허파, 염통, 오소리감투(위), 귀까지 보통 함께 포함한다.

오장육부가 거의 다 들었다. 삶은 내장은 탄수화물이 많은 당면순대보다 오히려 고단백 저지방 식품이라 같이 먹는 편이 맛이나 영양면에서 낫다.

요즘 오소리감투는 값비싼 까닭에 떡볶이집에선 내장이라곤 간이나 허파밖에 내주지 않지만, 그래도 챙겨먹는 것이 좋다. 순대와 곁들일 때 더욱 맛이 풍성해진다.

워낙 국민 간식거리로 인기를 끌다보니 순대를 무슨 조미료(소스)에 찍어먹는가에 대한 논쟁도 생겨났다.

서울 사람들에게 ‘순대 소금’이라 불리는 고춧가루 소금이 보편적일지 몰라도 부산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아니다.

부산에서 순대는 꼭 막장(된장)을 찍어먹는다. 서울에서 순대를 시켰는데 소금만 준다고 화를 냈다는 사례도 이따금 들려온다.

전라남도에선 초고추장을 찍는다는 사실도 놀랍다. 충남 해안가에는 새우젓, 제주에선 당연히 간장이라 답한다. 저마다 순대를 먹는 방식이 있다.

사람들의 입맛에 꽤나 널찍한 영역을 이미 순대가 점령해 버린 까닭이다. 허릿춤에 순대를 둘둘 말아차고 대륙을 달린 12세기 몽골제국 기마병처럼.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망원동 순대일번지.jpg 망원동 순대일번지
어디서 먹을까?
최고 전투식량이던 순대. 몽골군대에 입대하지 않고도 맛볼 수 있는 곳이 요즘엔 충분히 많다. 대학로에 위치한 순대실록은 그야말로 ‘순대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집이다. 직접 빚은 순대를 삶거나 심지어 구워먹을 수 있다.
철판에 구워먹는 순대스테이크는 독일 명품 소시지처럼 안주로 썩 훌륭한 음식이다. 쫄깃한 케이싱과 부드러운 소가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면 군침이 순대 기름처럼 흐른다. 순댓국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내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한다. 특히 순대연구가 육경희 대표가 ‘시의전서’를 두고 복원한 ‘1877순대’와 ‘주방문’의 고증으로 만든 ‘소순대’ 등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순대요리다.
망원동 순대1번지는 직접 빚어 만든 대창순대로 유명한 곳. 시그니처 메뉴인 순댓국은 뚝배기에 대창순대와 오소리감투, 머릿고기 등 각종 돼지부속을 담고 깻잎, 양념장, 들깻가루를 얹어 내온다. 하지만 담백한 사골국물이 푸짐한 부속 건더기를 한데 어울리게 만든다. 맛좋고 푸짐해 많은 이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집이다.
박진덕 찰순대.jpg
사회적 거리두기에 신경이 쓰인다면 여차하면 순대를 집에서 바로 맛볼 수 있는 HMR(가정간편식)을 이용하면 좋다. 순대전문기업 진성푸드의 ‘박진덕 찰순대’는 전자렌지 만으로도 간단하게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상품이다. 너른골 등 다양한 브랜드로 30여년 순대와 부속고기에 집중한 덕인지 과연 맛이 좋다. 비록 마이크로 웨이브가 조리했지만 풍미와 식감을 보자면 바로 쪄낸 듯 하다. 통으로 똬리를 튼 제품도 있고 미리 슬라이스해놓아 바로 집어먹을 수 있는 상품도 있다.

<놀고먹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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