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103 카레가 있다

봄을 앞둔 우리, 입맛을 화악 끌어올려줄 마법의 황색가루

by 이우석 더 프리맨
원래 일요일은 짜파게티가 아니라 오뚜기 카레였다


예전엔 카레를 참 많이도 먹었다.

영식이는 엄마가 놀러갈때마다 한 솥 가득 끓여 이틀이고 사흘을 먹어야 했다.
당시 흔치않던 맞벌이를 하는 훈영이네 놀러가면 찬장엔 어김없이 3분카레가 있었다.
선진이는 도시락으로도 가져왔다.(차가운 밥에 데우지도 않은 카레를 올려먹었다)
아현동 분식점에서 카레라이스를 시키면 튀김만두나 작은 돈가스 조각을 곁들여 줬다.
윤상병은 휴가나 외출을 나오면 꼭 카레를 주문해 먹었다.
오다기리 조는 자신의 심야식당에서 '어제의 카레'를 낸 적 있다.
카레떡볶이를 스스로 개발한 건이 누나는 우리를 테스터로 삼아 많은 시행착오를 했다.
....
이렇게 세상에는 103(백세) 카레가 있다. 아니 있겠지. 그렇게 믿는다.


역병이 창궐해 심신이 위축됐다. 입맛 역시 그렇다. 이럴땐 입맛을 확 끌어올려줄 처방이 필요하다.

카레가 딱이다.


신이 지은 듯 '갓'한 밥 위에 물파스를 삼킨 듯 입안이 얼얼해지는 매운맛 카레를 붓고,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김치를 올리면, 보는 것 만으로도 모든 소화액이 한꺼번에 분비되는 듯 하다.


인도에서 태어나고 영국에서 크림을 만난 커리는, 일본 해군배를 얻어타고 개명해 카레가 된다.

모항(일본 요코스카)에 상륙. 천상배필로 밥을 배우자로 삼은 카레라이스는 이후 알루미늄 포일을 덮은 채 '3분 시리즈'를 결성해 한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되는데.


왜 김치와 이처럼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위생상태가 썩 좋지 않은 인도에서 코로나19의 피해 소식이 거의 들려오지 않는다.

커리를 즐겨먹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솔깃)


정말로 향신료의 종주국인 인도에선 수많은 약초와 씨앗 향신료를 섞어 만든 커리를 매끼 즐긴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후추, 너트메그, 생강, 계피, 정향, 코리앤더, 커민, 딜, 회향, 심황, 카더몬 등을 섞어 커리(사실은 마살라)를 만든다.


집집마다 달리 만드니 사실 인도에만 몇 억 종류의 커리(마살라)가 있는 셈이다. 내겐 고작 백세 카레지만 좋다. 입맛이 좀비처럼 살아난 바람에 냅킨과 알루미늄 팩까지 먹어치울 뻔 했다.


아직 일요일.. 그래, 잘 생각해보니 원래 짜파게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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