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할 수 밖에 없는 계절의 진미
“입에 넣으면 강한 바다 풍미와 함께 옅은 금속성 맛이 느껴지는데, 나는 이걸 화이트 와인으로 씻어낸다. 오직 바다의 맛과 즙이 풍부한 식감만 입안에 남았을 때 나는 껍데기에 남은 차가운 바닷물을 마신 후 입안을 화이트와인의 청량함으로 또 한번 씻어낸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공허한 기분을 털어내고 행복에 젖어 다음 계획을 세우게 된다”(어니스트 헤밍웨이)
굴. 대한민국이 가장 싸다. 아니 신선굴에 한하자면 그렇다.
우리나라 주변에 오로라, 대평원, 에메랄드빛 바다, 사막, 만년설산은 없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가끔 한반도 이남 땅에 태어난 것을 감사할 때가 있다. 특히 굴이 나는 요즘에 더욱 그렇다.
한국의 굴은 저렴하고 싱싱하다. 청정해역에서 채취, 직송한 석화를 바로 까먹고 구워먹고 끓여먹는다. 아예 알굴을 숟가락으로 퍼먹기도 한다. 세상 어느 나라에도 이런 호사는 없다.
전용 2단 은쟁반과 스푼, 레몬과 샴페인을 곁들여 한알 씩 입맛을 다셔가며 음미하는 정도다. 바로 옆 일본에서도 그렇다. 주로 가키프라이(굴튀김)로 먹는데 한 개 가격이 요리 한 접시 가격에 이르기도 한다.
해외에서, 특히 유럽에서 온 셰프나 맛 비평가가 한국의 굴 가격을 알고나면 눈이 휘둥그레지게 마련이다.
현지에선 석화 하나에 소매가로 4~5유로 정도씩은 줘야 하는데(크리스마스나 연말에는 더욱 올라간다.) 한국에선 1kg에 7~8유로 정도에 불과하다. 식당에서도 킬로그램 당 2만원 대면 다양한 반찬과 함께 맛볼 수 있다. 통큰 횟집에선 가끔 서비스로도 굴 한접시를 내준다.
이런 풍경은 꽤나 생소하고 놀라운 것이다.
유럽에서 고급식당에서나 볼 수 있을만큼 귀한 석화인데, 양푼에 가득 올려 쪄먹거나 불판에 올려 구워먹는 모습도 그들에겐 경이롭게 느껴질만 하다.
유독 한국이 굴이 싼 이유는 바로 생산량에 있다.
세계 양식 굴 생산량 2위를 자랑한다. 물론 중국이 양식이나 자연채취에서 압도적 1위지만 주로 말려서 먹기 때문에 오히려 신선 상태로 유통되는 굴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반도는 세계적으로 소문난 명품 갯벌과 다도해라는 천혜의 굴 양식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굴은 원래 해안가 바위에 붙어 산다. 그래서 ‘굴을 딴다’고 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 가면”이란 동요(섬집아기) 가사가 있을 정도로, 우리네 어촌 마을에선 굴을 채취하며 사는 것은 일상이었다. 선사시대 패총에서도 굴 껍데기가 많이 출토되니 예전부터 상식하던 우리 먹거리였다.
굴이 많이 나는 명품 갯벌과 다도해는 하늘의 선물이다.
우리 갯벌 토양은 미네랄 등 영양가가 많고, 섬과 섬이 빽빽이 들어선 다도해는 파도를 막아주고 지상의 영양분을 바다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굴이 자라기에도 좋다. 또한 1960년대부터 일찌감치 굴 양식산업을 진행하면서 축적한 양식(수하식) 기술도 수준급이다.
특히 통영과 거제 등 남해안 지역은 청정수역으로, 굴이 별탈없이 빠르게 성장하기에 더없는 조건을 지녔다.
통영은 세계 굴 양식 산업의 수도 쯤으로 불러도 된다. 세계 수출 2위 국가인 한국에서도 약 80%가 통영에서 거래된다. 주요 산지인 거제와 고성에서도 굴을 수확하면 대부분 통영에서 위판한다.
통영 위판장에서 국제 가격까지 결정되는 셈이다.
통영 양식 굴은 주로 수하식이라 해서 육지의 밭처럼 일렬로 부표를 띄워놓고 그 아래 굴줄에 종패를 붙여 키우는 방식을 쓴다.
말이 양식이지, 사실 인공부화가 아닌 자연 굴 유생을 조가비에 붙여 사료 없이 키우니 양식이란 말이 버겁다.
서해안에선 투석식과 지주식으로 키웠는데 1960년대 통영에서 수하식이 시작되면서 지금은 생산량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통영 인근 바다의 수하식 굴이 많다.
이쯤 되니 감칠맛 덩어리 굴을 좋아한다면 한반도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있다.
굴은 트뤼플, 캐비어 등 다른 진미보다는 채취가 쉽고 풍미가 뛰어나 옛날부터 즐겼다.
로마시대에도 굴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귀족의 연회에 단골로 올라왔다는 기록이 있다.
군벌 출신 로마황제 아울루스 비텔리우스는 하루 1000개 씩 먹었는데 그 금액이 현재 가치로 몇십억 원이 넘는다.
철학자 세네카는 매주 굴 1200개 굴을 먹었고, 카이사르는 굴이 많이 나는 갈리아를 정복했다. 동 시대를 살았던 클레오파트라도 미용식으로 굴을 즐겼으며 프랑스 앙리 4세도 전채로 굴 300개를 먹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발자크, 비스마르크, 아이젠아워, 헤밍웨이,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굴을 좋아하는 인물로 알려졌다.
특히 하루키는 스코틀랜드에서 굴에 위스키를 뿌려먹고는 ‘바다 안개처럼 아련하고 독특한 맛이 입안에서 녹아날 듯 어우러진다’고 썼고, 다른 책에는 해질녘 굴튀김과 맥주의 궁합도 예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