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어지러움, 두통, 복통, 근육통, 구토, 오심, 오한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며 보건실을 찾는다. 보건교사는 문진, 시진, 촉진, 청진의 사정과정을 통해 이상증상의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이상증상의 원인을 찾다 보면 보건실은 어느덧 탐정 사무소가 되고 나는 탐정이 된다. 끈질긴 추리과정을 통해 고객의 문제가 해결했을 때의 희열은 짜릿하다. 그래서 이 일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지러움증을 추리해가는 탐정의 영업기밀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2학년 땡땡이 고객이 어지럽다며 보건실에 왔다. 그런데 안색이 좋아도 너무 좋다.
-선생님 어지러워요.
-언제부터 어지러웠어요?
-3교시 시작할 때부터요.
-(통증척도를 가리키며) 하나도 안 어지러운 것은 0입니다. 119가 올정도로 어지러운 것은 10이에요. 그럼 어느 정도 어지러운가요?
-5 정도 어지러워요.
-어젯밤에도 어지러웠어요?
-아니요.
-어제 아팠어요?
-아니요.
-아침에 집에서 아팠어요?
-아니요.
-집에서 먹고 온 약 있어요?
-없어요.
말을 잘한다. 목소리 크기도 적당하다. 중간중간 미소도 짓는다. 아픈 고객이 아니다. 교실에서 좀 벗어나서 환기시키고 싶은 고객으로 판단된다.
-아침밥 먹었어요?
-아니요.
-오늘만 안 먹었어요? 날마다 안 먹어요?
-오늘만 안 먹었어요.
아침을 먹지 않아 어지러운 경우도 있다. 보건실 방문고객의 약 60%는 아침을 먹지 않은 경우다. 보호자가 차려주지 않아 아침을 먹지 않는다는 고객들도 있다. 30분 후면 급식시간이다. 어쩌면 배가 고파서 어지러움증을 호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왜 안 먹었어요?
-늦게 일어나서요.
-다음부터는 늦어도 괜찮아요. 아침밥 먹고 와요. 식물은 물과 햇빛, 바람들을 먹으면서 자라지요. 선생님은 이미 다 커버렸지만 땡땡이는 쑥쑥 자라야 하잖아요. 아침밥을 먹지 않아서 어지러운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선생님이 좀 드네요.
-네
-어젯밤에 잘 잤어요?
-네
잠을 못 자서 어지러운 고객도 많다. 저번에는 3학년 고객은 전날 롯데월드 갔다가 새벽에 집에 도착해서 잠이 부족해 어지러웠다.초등학생 고객들은 수면이 중요하다. 요즘은 학원숙제나 휴대폰을 보니라 늦게 자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만약 어떤 사유로 잠을 잘못 잤다면 그 이유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대기고객이 없는 경우에는 스마트폰 불빛과 수면에 대해서 알려주어야 한다.
-옛날에도 오늘처럼 어지러운 적 있었어요?
-네
다행이다. 고객에게 어떤 증상이 처음 생겼을 때는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보호자에게 고객의 이상 증상을 알려 가정에서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게 해야한다.
-언제 어지러웠어요?
-2학년때요. 한 달에 한 번 정도요.
얼마나 자주 이런 일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어지러움증이 일주일에 2번정도 발생하고 정도가 심했을 때는 보호자와 전화상담을 해봐야 한다. 다행히 한 달에 한번이라니 큰질병으로 인해 생기는 어지러움증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6학년 고객은 반복되는 어지러움증으로 보건실을 자주 왔다. 그 고객은 보호자 상담 후 병원에 갔고 달팽이관 이상 으로 판정되었다. 반복되는 어지러움의 원인이 빈혈인 경우도 있었다.
-아침밥 안 먹었을 때 어지러웠어요?
-그건 몰라요
-어디서 어지러웠어요?
-잘 모르겠어요.
장소를 찾아야하는데 그래야 심인성 질환인지 알 수 있다. 저학년 고객들은 묻는 말마다 '몰라요'라고 너무 쉽게 말한다. 그래도 아무말 안하거나 우는 고객들보다는 낫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생각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어지러웠을 때 어떻게 하면 괜찮아요?
-누워서 좀 쉬면요.
이 문진으로 평상시 고객의 가정에서의 대처 방법을 알 수 있다. 만약 가정에서의 대처방법이 잘못되었을 때는 올바른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얼마나 쉬면 괜찮아져요?
-조금요.
-아! 그렇구나.중간놀이 시간에 뭐했어요?
-친구랑 술래잡기했어요.
-많이 뛰어다녔어요?
-네
밥도안먹고 뛰어 다녀서 어지러울 수 있겠다 싶다. 다만 중간놀이시간 30분 동안 잘 놀고 3교시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지럽다는 점이 왠지 수상하다.
3교시는 어떤 공부 시간인가요?
-수학이요.
-어려워요?
-아니요. 쉬워요.
간혹 공부하기 싫어 어지러운 경우도 있다. 축제, 운동회, 교실파티, 쉬는 시간, 중간놀이시간, 급식시간에는 어지럽지 않다. 그 시간에는 침상에서 경과를 관찰하자고 해도 고객들이 기어코 교실로 가려고 한다. 교실이 즐겁다면 초등학교에서 보건실에 오는 학생의 70%는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너무 슬프다.
과목으로 따지면 고객들은 국영수사과 시간에 가장 많이 어지럽다. 간혹 음악시간 리코더 불기 싫거나 너무 많이 불어서 어지러운 경우도 있다. 체육시간에는 절대 어지러움증을 호소하지 않는다. 이 고객은 공부가 싫어서 보건실로 피신한 것 같지는 않다.
-열나는지 보자.(체온을 측정한다.) 열나면 어지러울 수 있거든. 정상이네.
-심장이 잘 뛰는지, 얼마나 뛰는지 보자. (맥박을 잰다) 규칙적으로 잘 뛰네,
-심장에서 피가 잘 나오는 보자, 잠깐 팔이 아팠다가 괜찮아져요. 저번에도 혈압 잰 적 있지요.(혈압을 잰다) 정상이네
- 몸속에 산소가 얼마나 있는지 보자.(산소포화도를 측정한다.) 산소가 부족하면 어지럽거든. 정상이네. 다행이다.
열이 났을 때는 일반적으로 두통과 함께 어지러움증을 호소한다. 어지러움증의 원인을 찾는데 활력징후 측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번에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땡땡이가 먼저 말했다. 아마도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았다.
-선생님, 그런데 아빠가 학교에서 아프면 집에 와도 된다고 했어요?
-언제?
-오늘 아침에요. 아빠가 회사에서 나올 수 있어요. 엄마는 회사가 바빠서 못 와요.
마음 속에서 아빠랑 즐겁게 집에서 놀고 싶은 상상을 하고 있나보다. 아니면 자신은 아프다고 침대에 누워있고 아빠가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상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아빤가 보다.부럽다.
-집에서 아팠어요?
-아니요.
-근데 아빠가 왜 아프면 집에 오라고 했어요?
-몰라요.
아빠가 왜 아프면 집에 오라고 했을까? 건강기록지를 살펴봤다. 특이사항이 없었다. 드디어 어지러움의 직접적 원인을 찾았다.
-선생님이 봤을 땐 좀 참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교실에서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해봐요. 그럼 어지러움증이 싹 하고 마법처럼 없어져요.
-선생님, 공부도 하기 싫고 친구들하고 놀기도 싫어요. 침대에 누워있고 싶어요.
-왜?
-그냥요. 그게 좋아요.
쉽게 교실로 돌아가서 공부할 것 같지 않다. 이미 '아빠가 아프면 집에 오라고 했어.'가 머리 깊숙이 박혀있다. 오로지 집에 가고 싶을 뿐이다. 일단 조금만 쉬게 하자.
-급식시간인데 급식 먹어볼까요? 아침도 안 먹었잖아요. 점심 먹으면 어지럽지 않을 거예요. 음식을 안 먹으면 뇌가 움직일 힘이 없어 어지러운 거예요. 점심 조금만 먹어보자.
-선생님, 아빠가 아프면 집에 와도 된다고 했어요. 아빠한테 연락해 주세요.
-그래. 아빠랑 통화해 보자.
고객이 보호자와 연락하기를 원하므로 계속 무시할 수 없다. 무시했다가 보호자가 민원을 넣을 수도 있다. 일단은 담임교사에게 현재 상황을 알려야 했다.보호자는 왜 아프면 집에 오라고 했을까? 담임선생님나내가 고객을 본 후 아프면 알아서 가정에 연락했을 텐데 말이다. 내가 모르는 상황이 있었겠지 싶다.
- 선생님 땡땡이 안색도 괜찮고 활력징후도 괜찮아서 공부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호자분께서 학생에게 아프면 집에 와도 된다고 했답니다. 학생이 보호자와 연락하기를 원합니다. 보호자에게 상황을 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 제가 지금 수업 중이고 바빠서요. 선생님께서 대신 연락해 주실 수 있나요?
-선생님, 그럼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오늘 교실에서 평상시와 다른 점이 있었나요?
-없었어요.
-교실에서 활동은 잘했나요?
-잘 까불고 잘 놀았습니다. 공부시간에 발표도 잘했어요. 중간놀이 시간에도 잘 놀고요.
-네. 알겠습니다.
교실에서 잘 까불고 잘 놀았다고? 보건실에 대기 중인 고객이 많았다. 내가 직접 보호자에게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일단 담임교사도 바쁘다고 하니 내가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담임교사가 고객의 평상시 교실에서의 모습과 오늘의 모습을 비교하고, 나의 의학적인 판단을 종합하여 보호자와 연락해 고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기를 바랐다.그러나 바쁘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보호자 연락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서로 도우면 좋은 것이다.
-땡땡학교 보건교사입니다. 땡땡이가 11시 즈음 보건실에 왔습니다. 11시부터 어지러웠다고 하더라고요. 담임선생님 말씀이 교실에서 평상시와 다른 점은 없었다고 합니다. 어지러움의 정도는 10점 만점 중에 5점 정도라고 합니다. 제가 봤을 때는 혈압, 맥박, 체온 다 정상이고, 안색도 괜찮아서 공부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땡땡이가 아버지께서 학교에서 아프면 집에 와도 된다고 했다며 연락해주라고 해서요. 땡땡이 바꿔 드리겠습니다. 땡땡이와 통화해 보세요.
-네. 선생님.
보호자도 다 성향이 다른지라 어떤 보호자일지 궁금했다. 이 고객의 아빠는 공손했다. 아이가 아빠랑 같이 있고 싶은 이유를 알겠다.
-아빠, 저 어지러워요. 집에 가고 싶어요. 아빠가 아프면 집에 와도 된다고 했잖아요. 회사에서 나올 수 있잖아요.
갑자기 어린양을 피운다. 귀엽다. 보호자가 땡땡이에게 마법을 걸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대기 중인 다른 고객을 처치하고 있었다.
고객이 나를 불렀다.
-선생님,아빠가 선생님 바꿔주래요.
-네. 아버님. 어떻게 할까요?
-선생님, 일단은 점심 먹고 더 아프다고 하면 다시 연락 주세요. 제가 직장이라 나가기 어렵습니다.
-네. 아버님. 학생은 안색도 괜찮고 아마 점심 먹으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아침을 안 먹고 와 어지러운저학년 학생들이 종종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일하십시오. 급식 먹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순간 상상했다. 내 남편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애초에 아파도 학교에서 참으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가 아프다고 연락하면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하고 끊었겠지. 보호자가 참 좋은 아빠여서 내마음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땡땡아, 아빠가 일단 급식 먹으라고 하니까 급식 먹자. 가서 밥 먹고 다시 보건실에 와요. 선생님 기다리고 있을게.
-네.
고객이 보건실을 나갔다. 담임선생님에게 학부모와의 통화내용을 알렸다. 급식 먹이고 다시 보건실로 보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느새 고객이 급식을 먹고 친구 3-4명을 데리고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보건실에 왔다. 너무 귀엽다. 참새같다. 세상에 저렇게 귀여운 천사가 어디 있을까. 안색은 더 좋아지고 목소리는 우렁찼다.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어지러웠나 보다.
-선생님, 이제 괜찮아요.
-잘 됐다. 다음에는 오늘처럼 어지러울 때는 좀 참고 급식먹어보자. 그리고 아침밥 꼭 꼭 먹고 다녀요
-네.
-근데 아빠가 조금전에 걱정 많이 하시더라. 괜찮다고 아빠에게 전화하자.
-이미 괜찮다고 전화했어요.
급식이 맛있었나보다. 급식이 맛있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다 날아갔나보다.
고객이 친구들과 무엇을 모의하는지 속닥속닥 거리며 신나게 탐정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이번 사건은 잘 해결됐다. 꼬마 고객은 정말 귀여웠다. 아마도 이 고객님은 또 다른 사건으로 조만간 탐정 사무실을 재 방문해 할 것 같다. 어쩌면 골치 아픈 단골이 될 지도 모르겠다. 다른 고객들에게 나를 소개해서 내 사무실이 북적북적 거릴지도 모르겠다. 이미 북적거리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