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들레는 민들레 Dec 15. 2024

나답게 쌈뽕하자

4학년 성평등 수업이야기

그래. 사람은 나 다 울 때 쌈뽕 할 수 있어.

*쌈뽕하다: 멋지다, 쿨하다, 힙하다, 대단하다, 세련되다는 의미의 신조어


하나의 성별을 찾아보자

하나는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머리를 곱게 빗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홍색 티를 입고 학교에 갔습니다.

아침시간에는 얌전히 앉아서 '마법의 립크로즈'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미술시간에는 알록달록 예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체육시간에는 유정이가 던진 피구공에 얼굴을 맞아 눈물을 찔끔거렸습니다. 점심시간에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습니다.

방과 후에는 피아노 학원과 발레학원에 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는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자신의 방을 정리하고 컬러링을 하였습니다. 저녁에는 엄마와 함께 요리를 하였습니다. 저녁밥을 먹은 후에는 설거지를 했습니다.

자기 전에는 유튜브를 보면서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일기를 쓰고 잠이 들었습니다.

하나의 성별은 여성인가? 남성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하나의 성별을 추리해 보자고 했다.  ' 하나가 여자다' 20명,  '하나가 남자다'는 6명이었다.

하나를 여성으로 추정한 근거다음과 같다.

- 엄마랑 요리했다

-설거지를 했다.

-수다를 떨었다.

-손발은 씻었지만 목욕하지 않았다. 남자는 씻지 않는다.

-방정리를 했다.

- 남자들은 책을 잘 안 읽는다.

-남자들은 세수를 하지 않을 때도 있다.

-하나가 유튜브를 봤다. 남자들은 게임을 한다.

-하나가 노래를 불렀다.

-컬러링을 했다.

-발레학원에 갔다.

-피아노 학원에 갔다.

-피구공에 맞아서 울었다.

-분홍색 티셔츠를 입었다.

-머리를 곱게 빗었다.

-자습시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남자들은 얌전히 앉아 있지 못한다.

-남자들은 모닝똥을 싸는데 모닝똥을 쌌다는 말이 없다.

-미술시간을 좋아한다.

-그림을 알록달록하게 그렸다.

-일기를 썼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책 제목이다.


남성으로 추정 근거

-여자애들은 핫핑크를 좋아하는데 핑크 옷을 입어서 남자일 수도 있다.

-남자도 일기를 쓰는 경우도 있다.

-남자도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다.

-하나가 하남자일 수도 있다.

-우리 피아노학원에 남자애들도 많다.

-발레리노를 본 적 있다.

-눈물을 찔끔 흘렀다. 여자였다면 엄청 울었을 것이다.

-남자는 유튜브 프리미엄을 본다. 하나가 유튜브 프리미엄을 본 것 같다. 

-하나가 변태일 수도 있다.


학생들은 두 팀으로 나눠져서  근거를 많이 찾았다고 좋아했다. 좋아할 일인가? 학생들이 성별을 구분 짓는 근 거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남자와 여자 다르지 않아

남자와 여자 다르지 않다. 남자도 사람, 여자도 사람이다. 굳이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

생물학적인 차이를 사회문화적으로 연결하면 안 된다.  성고정관념, 성편견, 성차별, 성폭력 모두가 순환고리다. 학생들의 성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한다. 


하나를 여성 또는 남성으로 추정한 이유를 항목별로 점검했다.

-엄마랑 요리한 적 있는 사람 손 들어봐요?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나를 외치며 신나게 손을 들었다.

-자, 누가 손들었는지 살펴봅니다. 여자든 남자든 성별과 상관없이 엄마랑 요리할 수 있습니다. 자, 다음은 설거지해 본 사람?

이런 식으로 항목 하나씩 해당하는 사람은 손을 들게 하고 손 든 친구들의 성별을 살펴보게 했다.  어떤 항목도 일방적으로 남학생이 많거나 여학생이 많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자녀가 남자아이인데 이야기 속 주인공인 하나 같다면 보호자는 민에 빠질 수도 있다.  주변에 남자아이가 계집아이 같다며 고민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 학교에 짧은 머리에 남학생들과 어울려 다니고 운동을 엄청 좋아하는 고학년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을 보며 많은 선생님들이 걱정했었다. 언젠가는 달라질 거라고 믿고 싶었던 선생님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면 될 일이었다. 여학생이 머리가 짧은 것이 왜 걱정거리인 세상이 되었는가. 여학생이 운동을 좋아하는 것이 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야만 하는가.


남학생과 여학생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교사들도 생각보다 많다. 다르다고 생각하면 다르게 대하기 쉽다. 다르다고 생각하면 어떤 부분에 대해 너그럽게 허용하게 되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인색해진다. 이는 학생들의 많은 기회를 빼앗는다. 이는 학생들이 한쪽 성향만 추구하게 한다.


몇 년 전 동상이몽에는 여자아이가 남자아이 같다며 고민하는 엄마가 출연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JGHx2yUkk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 심리학자 자넷 시불리 하이드는 20년간 124가지 젠더차이 연구물을 비교 분석한 결과 (표본 128만 명) 남성과 여성은 다른 점보다 유사한 점이 훨씬 많았다고 했다. 성별차이에 대한 주장은 직장에서는 여성의 기회를 빼앗고 남녀의 의사소통 문제 해결 노력을 저해하며, 무엇보다 어린이들과 청소년의 자신감을 해칠 수 있다고 했다. (*출처: 핑크와 블루를 넘어. 크리스니아 스피어스 브라운 지음/창비(2018.11))


 남녀를 성별이분법으로 나누고 성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이는 누구일까? 보호자? 미디어? 교사? 우리 모두 다.


학생 수 200명 정도의 공립여고를 다녔던 우리 큰 아이의 경우 미적분을 선택한 학생은 고작 60명이었다. 기하 선택자는 20명 정도였다. 대부분이 보건의료계열, 교육계열, 사회복지계열의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2021년 교육통계 서비스를 살펴보면  이공계를 전공하는 여학생의 비율은 25.4 %밖에 되지 않았다.(내일신문공대 진학 여학생 급증, 졸업 후 취업률 높여야. 2023. 07.26.)

20대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양육하다 보면  성별 이분법이 더 많이 작동한다. 이는 여성도 남성도 불행하게 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성평등한 국가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


세계 경제포럼의 '2024 세계 성격차 보고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146개국 중 94위다.  특히 경제활동, 교육 부문의 성 격차는 여전히 100위 이하 최하위권이었다.(여성신문. 2024.06.19)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까?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성차별을 당한 경험을 물었다.

여학생들은 주로 운동이나, 옷차림, 외모 때문에 성차별을 경험했다. 여학생들의 이야기다.

- 피구를 하고 싶어서 남학생들에게 끼어주라고 했더니 너는 여자니까 사방치기나 해라고  말했어요.

- 어두운 색의 모자랑 바지를 입고 학교에 왔는데 야, 너 완전 남자 같아라고 친구들이 말했어요.

- 체육시간에 철봉하고 있는데 여자가 무슨 철봉이냐며 친구가 하지 말라고 했어요..

- 친구가 여자애가 못 생겨서 연애도 못하지라고 놀렸어요.

- 친구가 머리가 짧다며 남자 같다고 말했어요.

- 피구 할 때 선생님이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하라고 했는데 나는 남자애들하고 하고 싶었어요.

- 둘씩 짝지어 게임을 하라고 해서 남자애랑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하라고 했어요


남학생들의 이야기다.

- 핑크색 옷을 입고 왔는데 친구가 아, 너 여자냐라고 말했어요.

- 핸드폰 케이스를 예쁘게 꾸몄는데 친구가  케이스가 여자 같다고  놀렸어요.

- 피구 하는데 공이 세게 와서 못 잡았는데 친구가 남자가 그것도 못 잡아라고 핀잔줬어요.

- 여자애들이 남자는 때려도 괜찮다고 우리 때리고 다니고, 우리가 때리면 남자가 여자 때리는 것 아니라고 차별했어요.

- 태권도에서 발차기를 힘없이 했더니 친구가 남자가 여자처럼 왜 힘이 없냐고 그랬어요.

-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게 '꺼져라'라고 막말을 해서 선생님께 말했는데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남자애들이 여자애들을 괴롭혀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해서 속상했어요.

남학생들은 주로 여성성을 가졌을 때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여성성이 어때서? 


성차별을 당했을 때  학생들은 속상하다, 짜증 난다, 화난다, 괴롭다, 당황스럽다, 서운하다, 우울하다, 슬프다 등을 찾았다. 학생들도 우리가 성차별을 당했을 때와 똑같이 불행하다. 학생들의 불행은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우리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간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게 있는 성평등한 사회를 꿈꾼다.



그래, 나 답게 쌈뽕하자.

학생들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감을 가지고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나다움 시쓰게 한 후 자유롭게 교실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의 시를 감상하게 했다. 마음에 드는 시에 스티커도 붙였다. 나는 학생들이 성별과 상관없이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성평등하게 살아가기를 바래본다.

학생들의 활동 자료
학생들의 활동 자료를 복도에 전시했다.  


 나답게 살자. 쌈뽕 하자.



우리 사회 성평등의 현주소ㅠㅠ

https://v.daum.net/v/20240824043211287

[공대진학 여학생] 공대 진학 여학생 급증, 졸업 후 취업률 높여야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8931



도움이 될만한 도서

https://blog.naver.com/freetime30/22265851385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