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학생들에게 경계침해 체크리스트 활동지를 주었다.친구사이에 지켜야 할 선인 경계를 넘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V표시를 하게 했다.
초등학생들에게 키와 몸무게 물어보지 마세요. 학생들이 싫어해요. 엉덩이 토닥토닥하며 위로하는 것. 머리를 쓰담쓰담하는 것도 학생들 싫어합니다. 학생들의 경계를 존중해 주세요^^
날신하거나 이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임 소 해피할 수도 있지만 싫을 수도 있어요. 외모칭찬이나 비난 모두 경계를 침해하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경계 존중해 주세요^^
학교에서 실제 학생들 사이에서 많이 발생하는 경계침해 사례들로 경계침해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경계침해 범위 사람마다 다르다
학생들에게 경계침해 체크리스트의경계침해 횟수를 센 후 발표시켰다.발표 한 번하겠다고 손을 높이 쳐들고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귀여웠다. 학생들의 발표를 칠판에 적었다
학생들에게판서를 보고 알 수 있는 경계의 특징이 무엇인지 물었다. 바른 자세로 수업에 집중하고 있던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 사람에 따라 경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맞습니다. 태양이, 명은이, 은지, 소연이, 태희 어떤가요? 모두경계가 다릅니다.또 알 수 있는 점이 더 있나요?
칠판에 적어진 기분과 친한 친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 순간을 포착한 서너 명이 눈이 번쩍해지더니 손을 들고 또 엉덩이를 달싹달싹 거렸다. 손만 들면 되는데 학생들은 왜 자꾸 엉덩이도 들었다 놓고, 입을벌려 '저요', '저요'를 외치는 걸까? 중고등학교처럼 발표 점수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친한 정도에 따라 경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 다른 친구가 발표할 수 있게 하나만 말했다. 눈으로 나를 애타게 끌어 당기는 4학년 최고의 말썽꾸러기에게 발표기회를 주었다.
- 기분에 따라 경계가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의기양양했다.
사람마다, 친밀한 정도,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경계가 다르다
타인의 경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그럼 사람마다, 친한 정도에 따라,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경계가 다른데 우리는 타인의 경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답이 간단하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들은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 머리를 갸우뚱 거리며 한 여학생이 표정이나 행동, 몸짓, 평상시 성격, 느낌등으로 알 수 있다고 답했다. 더 확실하게 경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은없는지 물었다.
-친구랑 같이 도서관에 손 잡고 가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친구의 경계를 알 수 있을까요?
라고 예를 들어주었다. 안경 낀 학생이 손을 아주 낮게 들고
-말로 물어봅니다.
그렇다. 타인의 경계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다. 쭈뼛쭈뼛 손을 들었던 학생이 자신이 모범답안을 말했다는 사실에 몸을 활짝 폈다. 학생의 모습이 우스웠다.
내가 상대에게 말로 경계를 확인했는데 상대가 다음과 같이 반응한다면어떤 경우가 허락(동의)인지 학생들에 찾게 했다.
어떤 경우에 상대방이 동의한 것인지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몰랐다. 참 신기하다.
학생들은 그냥 웃기나 웃으면서 싫다고 말하기, 아무 말 안 하기를 동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생들에게
-혹시 친구가 여러분에게 허락을 구했을 때 싫은데 그냥 웃었던 적 있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절반 정도의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학생들에게 싫은데 웃으면서 싫다고 말하거나 그냥 웃은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학생들은 친구가 상처받을까 봐 웃으면서 거절했거나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려고 그냥 웃었다고 답했다.
학생들에게 매년 일어나는 학교폭력 사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정말 매년 심심하면 한 번씩 일어나는 사건이다.
- 다른 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남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면서 친구 음경을 만지고 훔쳐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땡땡이라는 학생이 친구들에게 웃으면서 생식기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계속 땡땡이의 음경을 만지고 소변볼 때 훔쳐봤습니다.
어느 날 땡땡이가 너무 힘들어서 담임선생님께 이 사실을 말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놀린 친구들에게 왜 친구의 음경을 만지고 훔쳐봤냐고 물어봤습니다. 놀린 친구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땡땡이도 좋아서 같이 웃고, 웃으면서 싫다고 말했다고요. 놀린 친구들은 땡땡이가 웃었기 때문에 허락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런 경우 허락한 것인가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또 목소리 제일 크고 관심받기 좋아하는 학생이
-아니오
라고 외쳤다. 다른 사례들도 적당히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었다.
'좋아'가 거절 일 수도 있어
'좋아'라고 말한 경우 이것이 진정한 허락이 되려면 많은 조건들이 붙여져야 한다. 일단 상대와 내가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 또한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여서 상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좋아'하고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학생들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힘 즉, 권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학급 내에서도 센 친구가 있고 약한 친구가 있다. 우리는 센 친구를 권력, 힘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교장선생님과 보건선생님, 누가 더 권력이 있을까?
라고 묻자 학생들이 입을 모아 교장선생님이라고 외쳤다. 나를 비웃는 듯한 그 표정. 가소롭다.
맨 앞에 앉아있던 학생 책상 위에 물통이 있었다. 나는
-만약 여기 물통이 보건 선생님 물통이라고 했을 때 교장선생님께서 선생님한테 '보건선생님 물통 저 주세요.'라고 말하면 보건선생님이 뭐라고 할까요?
학생들이 막 웃더니
-'교장선생님, 가지세요.'라고 말하며 물통을 줄 것 같습니다.
-'네.'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내가 권력 앞에 그렇게 아부하는 인간으로 보이는 건가.
- 어떻게 알았지. 선생님은 교장선생님께 '네. 교장선생님 이 물통 가지세요.'라고 말하고 교장 선생님께 물통을 드릴 겁니다.
또 학생들이 웃는다. 비굴한 날 상상하니 즐거운가 보다. 나는
- 왜 보건선생님이물통을 교장선생님께 드릴까요?
학생들이
-잘 보이고 싶어서요.
-안 주면 잘리니까요.
- 월급 안 줄까 봐서요.
나는
-그렇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보건선생님보다 권력, 힘을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건 선생님은 물통을 교장 선생님께 주기 싫어도 좋다고 말하고 물통을 줄 것이 뻔합니다. 상대방과 내가 위치, 권력, 힘의 세기가 다를 때는 좋아라고 말하는 것이 거절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항상 자기의 위치를 잘 알아야 합니다. 특히 상대보다 내가 권력을 더 가지고 있을 때는 상대방이 '좋아'라고 말해도 거절 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권력을 가진 사람은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겁니다.
이 반에서도 센 학생들, 여러분 말로 인기 좋은 학생들은 자기보다 약한 학생들에게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선생님 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이 예쁜 필통을 사줬습니다. 그런데 같은 반에 있는 인싸친구가 '필통 예쁘다'라고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선생님 딸이 '이거 너 가져.'라고 말하고 필통을 준 적이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 말 한마디에 힘없는 약한 사람들은 싫어도 싫다고 말을 못 합니다.
교장선생님은 선생님 물통을 갖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어도 보건 선생님물통을 보고 이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왜? 선생님이 교장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욕심에 선생님 물통을 교장 선생님께 줘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선생님, 진짜 교장선생님이 물통이 이쁘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물통 줬어요?
라고 물었다. 아이 진짜, 뭐야. 예를 든 것뿐인데. 내가 아니다고 말하기도 전에 나대기 좋아하는 학생이
-야, 만약이라잖아. 너 뭐 하고 있었어.
라고 핀잔을 주었다. 나는 얼른 다시 한번 만약이라는 말을 강조함과 동시에 교장선생님을 미화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교장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입니다. 절대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분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예를 든 것일 뿐입니다. 교장선생님은 보건선생님에게 물통을 주면 줬지 빼앗아가는 그런 분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 교장선생님은 우리 지역에서 최고로 훌륭한 분입니다. 선생님은 교장선생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라고 변명 아닌 변명과 아부성 멘트를 날렸더니 또 한 학생이
-거짓말
이라고 말해 교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존경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교장선생님은 꽤 괜찮은 편이긴 하다.
나는교장선생님과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나 말고도 교장선생님은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엄청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권력 앞에 굽신거리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 권력 앞에 굽신거리며 살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늘 학생들 앞에, 우리 집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다. 그러다 보니 관리자에게 이쁨은 못 받았다. 대신 미움은 좀 받았다.
경계존중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
경계존중 수업을 할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교사라는 위치, 권력으로 학생들에게 강제 동의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