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보건실은 두통 일 때 아무것도 안 해주나요?

초등학교 보건교사의 간호진단을 신뢰하라

by 민들레

머리가 아픈 2학년 땡땡이가 보건실에 왔다


10시 45분. 2학년 땡땡이가 5분 전부터 갑자기 머리가 아프단다. 문진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아파요?

1부터 10까지 있는 통증척도에서 4를 가리킨다.


-아침은 먹었어요?

-네

-뭘 먹었고 얼마만큼 먹었어요?

-콘프라이크 조금 먹었어요.


-잠은 잘 잤나요?

-네


-오늘 아침에 먹고 온 약 있어요?

-아니요.


-감기증상 있어요? 기침이나 콧물, 코막힘, 목 아픈 증상?

-없어요.


- 열이 나는지 보자.

-열 안 난다.

-혈압이나 맥박 재보자.

혈압과 맥박을 쟀다. 정상이다. 오심, 구토 증상이 있는지도 물었다. 없단다.


-공부 못 하겠어요?

-아니요.

-땡땡아, 일단 아프기 시작한 지 별로 안 됐으니 참아보자. 계속 아프면 다시 와요.

-네

일단 두통의 지속시간이 별로 되지 않았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오심 구토 등의 증상도 없었다. 안색도 좋다. 공부하는데 지장이 없을 것 같다고 하니 좀 더 지켜봐도 될 것 같아서 땡땡이를 교실로 보냈다.


11시 40분 땡땡이가 다시 머리가 아프다고 왔다. 머리 아픈 정도는 조금 전과 같았다. 안색도 괜찮고 공부도 할 수 있겠다고 한다. 활력징후도 정상이다. 나는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일단 땡땡이에게

-열도 안 나고 증상이 심해진 것도 아니니 교실에서 공부해 보자.

라고 다독였다. 그리고

-몸 컨디션이 좀 떨어지려나 보다. 일단은 오늘 너무 심한 활동하지 말아요. 몸에 변화를 잘 관찰하고 힘들면 또 와봐요.

라고 말하고 교실로 보냈다. 보건실에는 독감으로 열나는 학생들이 끙끙 앓으며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나는 상당히 바빴다.


12시 20분 땡땡이가 다시 왔다. 머리는 조금 전보다 안 아픈데 몸에 힘이 없고 속이 안 좋다고 했다. 다시 체온, 혈압, 맥박을 측정했다. 정상이었다. 안색도 괜찮았다. 갑자기 속 안 좋다고 했기에 이것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다. 아침 먹고 시간이 많이 지났다. 초등학생들은 점심을 먹기 전에 배고픔을 속이 안 좋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대체로 점심 먹고 나면 증상이 사라진다. 그러나 땡땡이가 보건실을 3번이나 방문하였기에 10분 정도 침상휴식을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고열이었던 학생들이 너무 많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괜히 침대에 눕는 것이 독감유행시기에 바이러스만 옮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나는 땡땡이에게

-계속 아프니까 좀 쉬면 좋겠지만 침대에 열나는 학생들이 누워있었거든. 침대에 붙어있는 바이러스가 너에게 옮기면 안 되잖아. 그래서 침대에 못 누워 있어요. 선생님이 따뜻한 물 한잔 줄게 마셔보자.

미온수를 주었다. 학생이 마셨다.

- 보건실에서 앉아서라도 쉴래요?

-아니요.

-그럼 교실로 가서 공부하고 오후에는 집에서 푹 쉬어요. 컨디션이 떨어질 때는 아무쪼록 잘 먹고 잘 자야 해요.

-네

그렇게 땡땡이는 아무렇지 않게 교실로 갔다. 점심을 먹고 다시 보건실에 들리지 않았다.


땡땡이 엄마의 전화가 왔다

바빠서 늦은 점심을 먹고 보건실에 왔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선생님, 땡땡이가 오늘 보건실을 3번이나 갔다고 하던데 상태가 어떤가요?

땡땡이 상태를 설명해 주고 침상휴식을 시키지 못 한 이유도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보호자에게

-저는 그렇게 판단해서 그렇게 처리하였습니다.

보호자가 말했다.

- 초등학교 보건실은 아이가 머리 아플 때 원래 아무것도 안 해주나요?

초등학교 보건실은 아이가 머리 아플 때 원래 아무것도 안 해주냐고? 사정하고 간호진단하고 이에 따른 조치를 했는데 왜 이런 질문을 하지? 그럼 내가 마법이라도 부려서 학생의 통증을 완전히 사라지게 해야 무엇인가 해 준 것이 되는 건가?


-네? 땡땡이는 제가 판단하건대 특이사항 없어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네.

보호자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밖에서 일하는데 아이가 3번이나 아파서 보건실을 들락날락거렸다면 어떤 보호자가 걱정이 안 되겠는가. 나는 그 보호자의 걱정스러움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초등학교 보건실은 두통인 학생에게 아무것도 안 하나요?'라는 물음은 무례하다. 순간 내가 했던 사정,간호진단,그에 따른 처치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쉽게 지우개로 나의 전문성을 지웠다. 자신이 자녀를 병원에 데려가도 양심 있는 의사라면 이런 경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건교사의 간호진단을 신뢰하라

우리 학교 보건실에서 작년에 학생을 진단하고 처치한 횟수는 9.000회가 넘는다. 숫자 9.000과 9.000번을 사정하고 학생을 간호진단하고 의료적 조치를 하고 더 나아가 보건교육까지 하는 일은 숫자처럼 단순하지 않다. 매우 복잡하고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이 필요한 작업이다.


초등학교 보건교사는 보건교사 자격증과 간호사 면허증을 가진 교사이자 의료인이다. 초등보건교사는 간호학과 교육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초등학생의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전문가다. 그런데 어떻게 보호자는 아무렇지 않게 "초등학교 보건실은 아이가 머리 아플 때 원래 아무것도 안 해주나요?"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초등보건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또한 보건교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그 보호자의 발언이 나를 힘 빠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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