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랬어? 왜 그랬니?

딸의 친구이자 나의 제자였던 수정이에게

by 민들레

너는 내 딸의 친구였지.

기억나니?

초등학교 5학년 수련회.

장기자랑에서 춤춘다며 우리 집에 와서 연습도 했잖아.


나는 널 잘 기억하고 있어.

너는 학교에서는 늘 조용했지만

묵묵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였어.

나에겐 인상 깊었던 제자 중 한 명이었단다.


나는 모든 제자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했지만

특히 딸의 친구인 너에게는 더 애정을 쏟은 것도 사실이야.


그런 너도 이제 대학생이 되었겠구나.

선생님 딸도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작년에 우리 아이가 불쑥 묻더라.

"엄마, 수정이 기억나?"

나는 반가운 마음에 대답했지.

"응. 그 애. 수련회 때 장기자랑에서 너랑 춤춘다며

우리 집에 왔던 그 애잖아."

"맞아. 엄마, 근데 나 그 애 때문에 중학교 때 한동안 많이 힘들었어."


우리 아이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어.

"중학교 때 그 애가 갑자기 변해서 일진이 됐었어.

이동 수업에 좀 늦어서 복도를 지나가다

우연히 그 애랑 어깨가 부딪혔어.

근데 그 애가 아주 큰소리로 나에게 쌍욕을 했어.

나는 너무 무섭고 당황해서 눈물이 나더라고.

근데 애들이 그 애 눈치 보느라 날 외면한 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

그 뒤로 그 애가 나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퍼트려서

애들이 수정이에게 찍힐까

날 피하고, 미워하고, 째려보더라고. 그랬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선생님은 심장이 무너졌단다.

그 아이가 그렇게 상처받았다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마음이 찢어지더라고.

차리리 울어주었으면 좋았을걸 싶었어.


선생님은 아이에게 말했단다.

"미안해. 네가 그렇게 힘든 줄 엄마는 몰랐구나."

진심으로 사과했지.

나는 아이와 소통을 잘하는 부모라고 믿었는데

아이의 힘듦을 몰랐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휩싸였지.


그런데 우리 아이가 그러더라.

"그래도 엄마, 학원에서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집에 와서 엄마랑 놀다 보니까 점점 괜찮아졌어.

3 때 코로나로 학교에 못 가게 된 게 오히려 다행이었어."

우리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지만 난 너무 슬펐어.


내가 교사로서 너에게 참 많은 정성을 쏟았고,

딸도 너에게 늘 친절했는데

너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혹시라도 내가 너 초등학교 시절에 나도 모르게 너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곱씹게 되었어.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어.


왜 그랬어? 왜 그랬니?


만약 길거리에서 우연히 널 만나도

"수정아, 잘 지내지?"라고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진 못할 것 같아.

널 보게 된다면 심장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릴 것 같아.

그만큼 내 딸의 눈물은 쉽게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어.


그래도 한 가지 부탁이 있다.

언젠가 너도 더 자라서 너의 행동을 돌아볼 날이 온다면

부디 진심으로 선생님 딸에게 미안했다고 사과해 주면 좋겠어.

그게 너 자신을 용서하고, 더 깊은 어른으로 자리는 첫걸음이 될 테니까.


나는 지금, 너를 응원할 수 없어.

다만 바라기는

너의 잘못을 네가 직접 돌아보고

그 상처 앞에서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래.


그날이 오면,

어쩌면 내 마음도, 우리 아이의 마음도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이 고통스럽다.

하지만 나는 한 아이의 엄마이기 전에,

너를 지도했던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쓴다.


너도 내가 사랑하던 수많은 제자 중 하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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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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