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성장시킨 도희에게
오늘 한 초등학교에서 교직원들에게 '성평등'에 대해 강의를 했단다.
강의 중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문득 네 생각이 났어.
강의 주제 중 하나는 '교사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해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준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였단다.
나도 몰랐던 사이, 나의 말이나 태도가 너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었지.
잘 지내지?
그 당시 나는 교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교사였어.
병원에서 아픈 환자들을 돌보다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니
마냥 행복하기만 했었지.
그러던 어느 날, 관리자가 나를 불렀어.
그리고 너를 상담하라고 했지.
나는 그 지시에 따라 너를 상담했지만 너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어.
그래서 결국 이렇게 말해버렸지.
"혹시 네가 오해한 건 아닐까?"
너는 아무 말 없이 교실로 돌아갔고
나는 너의 침묵을 '괜찮음'으로 착각했지.
그리고 그 일이 그렇게 끝난 줄 알았어.
하지만 나중에, 너희 부모님이 관리자를 찾아오셨어.
"선생님이 우리 아이 말을 믿지 않았어요. 실망이 큽니다. 어떻게 교사가 그럴 수 있나요?"
관리자는 날 위로하고 싶으셨겠지.
"그렇게 큰 일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선생님, 아이 불러서 좀 다독여주세요."
만약 내가 너였고, 너희 부모님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나는 어땠을까?
믿었던 사람에게 외면당한 기분.
그건 정말 쓰라리고 아픈 일이야.
사건자체보다, 너를 믿어줘야 할 교사에게 받은 실망감이 더 컸겠지.
그러니 너도 너희 부모님도 예민한 것이 아니었어.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었어.
그 일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어.
나는 용기를 내어 너희 어머니께 전화드렸단다.
"도희에게 사과하고 싶습니다. 만나도 될까요?"
그때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
"도희는 선생님 수업을 참 좋아했어요.
아플 때마다 다정하게 대해주어 고마워했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도희 말을 믿지 않아 아이가 실망감이 큽니다."
그래. 신뢰하는 이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면
그 실망감은 말로 다 못 하지.
나는 너에게 말했어.
"네 이야기를 믿지 못해 미안하다."
너는 "아니에요. 선생님. 이제 괜찮아요."
정말 괜찮았을까?
그 말은 아마도 나를 위해서 한 말일 거야.
너는 괜찮지 않았을 거야.
그럼에도 용기 내어 나를 만나주고,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너와 너희 가족에게
나는 지금도 감사하고 있어.
그 일이 있고 나서
선생님은 한 동안 학생들을 가까이하지 못했단다.
또 같은 실수를 할까 봐 너무 무섭고 두려웠거든.
선생님은 아이들이 다가오면 밀어내기 바빴어.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날 포기하지 않았지.
어느 날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한 아이가 다가와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묻더니 땀에 젖은 마이쭈 하나를 건네주었단다.
그 순간 알게 됐어.
교사가 아이들을 멀리하면
삶의 즐거움, 기쁨, 행복, 의미를 하나씩 잃고
결국엔 빈 껍데기만 남는다는 걸.
껍데기만 있는 선생님을 붙잡아준 아이들이 너무 고맙더라.
그리고 깨달았어.
너에게 진 마음, 그 후회는
다가오는 학생들이 멀리하는 것으로는 절대 갚을 수 없다는 걸.
더 믿어주고.
더더 사랑하고.
더더더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죄라는 걸.
도희야, 고맙다.
너로 인해 선생님은 교사로서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단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삶의 기쁨, 행복, 의미, 사랑을 다시 채울 수 있게 됐어.
너는 나의 스승이다.
오늘도 너를 통한 배움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단다.
정말 고마워.
잘 지내고.
언제가 꼭 한 번 보고 싶다.
*성인지 (전데) 감수성
-우리가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왜'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그런 차이가 당연한 것인지, 자연스러운 것인지 생각하고, 그런 차이를 일으키는 요인이 사회구조적 요인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