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는 윤지에게
너는 웃고 있을까?
심심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던 그 시절을 지나, 이제는 조금 덜 외로운 어른이 되었다면 좋겠다.
안녕, 윤지야. 잘 지내지?
교실에서 은근히 따를 당해 보건실을 찾는 아이들을 보면 네가 생각난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네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어.
학기 초 너는 보건실에 거의 매일 왔지.
어느 날 너희반 여학생 3명이 보건실문을 열고 들어왔어.
"선생님, 윤지 다 꾀병이에요.
공부하기 싫어서 보건실 가는 거예요."
당돌한 아이들이었지.
나는 황당하면서도 가슴이 철컹했지.
"그래? 너희들이 꾀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아?"
"다, 알아요. 걔, 친구도 없고 다들 싫어해요."
그날도 네가 배가 아프다고 보건실에 왔어.
선생님은 물었지.
"윤지야, 학교 끝나면 뭐 해?"
"집에서 텔레비전 봐요."
"심심하겠다."
"괜찮아요. 저는 항상 심심해서 오히려 심심하지 않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그 말이 가슴 아프더라.
"선생님이랑 학교 뒷산 갈래?"
"네. 좋아요."
나는 너의 심심한 일상에
여느 초등학생들이나 일상에서 누리는 즐거움, 재미, 따뜻함을 선물하고 싶었어.
다행히 교장 선생님께서 허락하셔서
우리는 매주 한 번씩 학교 뒷산을 40분씩 함께 걸었지.
너는 조금 뚱뚱해서 걷는 걸 힘들어하면서도
묵묵히 나름의 속도로 따라줬어.
그러던 어느 날 너는 말했어.
"선생님, 저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가 있었다면 좋았을까요?"
"뭐가?"
"다른 애들처럼 학원도 다니고, 친구들도 많고, 예쁜 옷도 입고요."
"엄마가 있으면 좋았겠지. 하지만 너에게는 아빠가 있잖아."
"아빠도 괜찮은데요... 한 번씩 술을 드세요. 그래서 저는 그게 싫어요."
라고 했어.
선생님은 이미 너의 가정환경을 알고 있었어.
엄마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사실도.
무직에 가끔 술을 마시는 윤지를 진짜 사랑하는 선생님보다 어렸던 아빠가 있다는 걸.
그때는 지금처럼 지역 아동센터도 많이 없었어.
지금 같았다면 너도 지역사회에서 더 많은 돌봄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래. 너에게는 따뜻한 품이 필요했지.
엄마가 있어더라면...
아니면 아빠가 술을 먹지 않았더라면
넌 외로움이 일상이 되진 않았을거야.
너는 나랑 다니는 산행은 즐거워했지만
여전히 교실에서는 힘들어했어.
친구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너희반 여학생들과
그 분위기에 휩쓸린 남학생들 속에서.
너희반 은주는 착한 아이였어.
공부도 꽤 잘하고
책도 많이 읽는 진중한 아이였지.
은주는 너희 반의 다른 여자아이들과 어울리지 않았어.
은주가 보건실에 왔을 때, 선생님이 물었지.
"은주야, 윤지가 친구도 없고 많이 힘들어하더라.
네가 윤지랑 친구 해줄 수 있니?"
"네. 우리 반 몇몇 애들이 윤지를 싫어해요. 담임선생님한테도 윤지 편만 든다고 따졌어요."
"근데... 걔들이 너까지 힘들게 하진 않을까?"
"저한테는 그렇게 못 할 거예요. 제가 나름 쎈 편이거든요."
그렇게 은주가 너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너는 점점 보건실과는 멀어졌지.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 은주랑 너랑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데 정말 흐뭇했어.
하지만 끝까지 몇몇 친구들은 너를 차갑게 대했어.
너랑 같은 조 하기 싫다고 영어선생님께 따지고
수학여행 때는 너랑 함께 자지 않겠다고
담임선생님께 대들었지.
선생님도 인생을 오래 살진 않았지만
살다 보면 소나기처럼 악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더라.
소나기가 지나가면 햇빛이 나는 것처럼
은주 같은 착한 사람도 나타나더라.
세상살이 쉬은 게 뭐가 있겠니?
어린 나이에 힘든 일들 겪으면서 잘 견뎌낸 윤지라
앞으로 그 어떤 어려움도 잘 이겨낼 거야.
이제 너도 서른이 넘었겠구나.
초등학교 시기 정말 고생 많았다.
어쩌면 중고등학생 시기도 힘들었을지도 모르겠구나.
선생님은 언제나 너의 앞날에 심심하지 않은 꽃길이 펼쳐지길 소망한다.
우리 윤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