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학교-사회가 돌봄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아침 여덟 시 반, 학교의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보건실 문은 이미 분주하다. 학생들이 보건실로 오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어떤 학생은 배가 아파서, 어떤 학생은 단순히 밴드를 갈기 위해서, 또 어떤 학생은 엄마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서다.
학교에 아픈 아이를 보내고 출근하려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나는 '이렇게 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건가"싶으면서 아이에게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공무원이라 일반 사기업 워킹맘보다는 자녀가 아팠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편이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초등학생은 보호자의 돌봄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학교현장에서 보면 충분히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 보호자일까, 사회일까. 굳이 따져야 한다면 사회적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2학년 땡땡이는 8시 30분에 보건실에 왔다. 전날부터 배가 아팠고, 밤새 잠도 못 잤다고 했다.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엄마가 보건실에서 약 먹고 쉬래요."
아이에 대한 책임이 보건교사인 나에게 전가되는 듯해 마음이 불편했지만 동시에 연민도 들었다. 약을 먹이고 침대에 눕힌 뒤, 온찜질을 해주었다. 담임교사에게 메시지도 보냈다.
30분이 흘렀다. 학생을 교실로 보내려고 침상에 갔는데 학생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속으로 '얼마나 밤새 고생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차마 학생을 깨울 수 없었다.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와 전화기를 들었다.
"선생님 땡땡이 깊게 잠들었더라고요. 밤새 많이 아팠나 봅니다. 중요한 공부 아니면 더 자게 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렇게 땡땡이는 한 시간 하고도 삼십 분 동안 새근새근 잠들었고, 괜찮아져 교실로 갔다.
8시 40분, 3학년 땡땡이가 왔다.
"선생님, 어제 집에서 코피가 났어요. 엄마가 보건실에 가서 코 안에 바셀린을 바르라고 했어요."
"그랬구나. 코안이 건조하면 또 코피가 날 수도 있지. 바셀린 바르자. 오늘은 코를 세게 풀거나 만지지 마. 아무래도 코 안이 약해 있어서 다시 코피가 날 수도 있거든."
치과 지혈용 솜에 바셀린을 바르고 있었다. 그때 땡땡이가 말했다.
"선생님 엄마가 면봉으로 바셀린 바르라고 했어요."
"그랬구나. 그런데 이렇게 바르는 것이 더 안전하고 골고루 바를 수 있단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마도 엄마가 말한 대로 내가 하지 않아 불안한 것 같았다.
"다른 학생들도 다 이렇게 코 안에 바른단다. 걱정 안 해도 돼."
그제야 안심하는 표정이다. 코 안에 바셀린을 바른 후 학생을 교실로 보냈다.
6학년 땡땡이 흐느적흐느적 걸어왔다.
"선생님, 저 새벽에 배가 아팠었어요. 설사하고 그랬어요."
"응. 그랬구나. 지금은 괜찮니?"
"지금은 괜찮아요. 그런데요. 선생님 엄마가 집에 백초시럽 없다고 보건실에서 먹으라고 했어요."
"그랬구나. 근데 땡땡 아, 지금은 배 안 아프잖아. 새벽에 설사하면서 병균들이 다 몸 밖으로 나갔을 거야. 교실에 가서 공부하다가 다시 배가 아파지면 와. 오늘은 너무 차갑거나 매운 음식, 인스턴트 음식 먹지 말아라."
"엄마가 보건실에서 약 먹으라고 했는데요."
"일단 더 지켜보자. 선생님이 너 같은 경우 많이 봤어. "
"네."
2학년 땡땡이다. 벌써 오일째다.
"선생님, 아빠가 밴드 갈으래요."
"그래."
정성 들여 소독하고 밴드를 붙여줬다.
4학년 땡땡이다. 무슨 일일까?
"선생님, 눈에 안약 넣어야 해요. 엄마가 보건실 가서 안약 넣으래요."
"그래."
안약을 넣어줬다.
2학년 땡땡이다.
"선생님, 저 눈 가려워요. 엄마가 보건실 가래요."
"그래. 잘 왔다. 일단 눈 씻고 좀 차갑게 해 보자."
세안을 시킨 후 거즈에 차가운 생리식염수를 적신 후 눈 위에 올려주었다.
5학년 땡땡이가 왔다.
"선생님, 저 어제 태권도에서 발목 삐끗했어요."
"그랬구나."
"엄마가요. 보건실에서 얼음찜질하고 파스 바르고 붕대 감으래요."
"일단 발목을 좀 보자."
발목 상태를 확인하고 파스를 바른 후 붕대를 감아주었다.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활동량을 줄이고 그냥 그대로 두어도 시간이 지난 면 나을 것 같았다.
"선생님, 엄마가 얼음찜질도 하라고 했어요."
"곧 1교시 시작이야. 선생님이 보니 붓지도 않았고 너도 조금 아프다면서. 굳이 할 필요는 없어. 대신 뛰어다니거나 달려 다니지 마. 얼음찜질을 꼭 해야겠다면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 와. 그때 해줄게."
"네."
1학년 땡땡이가 왔다.
"무슨 일이야?"
"선생님, 저 모기 물렸어요. 엄마가 보건실에서 얼음찜질 하래요."
"자, 바보자. 곧 공부시작인데. 많이 가려운 건 아니니까 일단 약 바르고, 쉬는 시간에 얼음찜질하자."
"안 돼요. 엄마가 학교 가서 아침에 보건실에서 얼음찜질하라고 했어요."
고학년은 이런 경우 말로 설득된다. 그러나 저학년, 특히 1학년은 설득하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 그럼 얼음찜질하고 약 바르고 가자."
"네."
그제야 웃는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야 안정이 되나 보다.
등굣길 못지않게 하굣길 돌봄 요구도 만만치 않다. 하굣길에 한 아이가 열이 난다며 보건실에 왔다. 활력징후를 측정하니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일단은 좀 지켜보자고 이야기하고 학생을 보냈다. 그런데 5분 후에 학생이 다시 보건실에 왔다. 그리고는 대뜸 자신의 핸드폰을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선생님, 아빠가 보건샘 바꿔주래요."
보호자가 말했다.
"선생님,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해주시나요?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요.? 제가 밖에서 일하는데 아이가 열나는 것 같다고 하면 얼마나 신경 쓰이겠어요."
순간 당황스러웠다. 만약 내 아아였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래. 보건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니까 집에서 좀 쉬어봐. 그리고도 아프면 다시 아빠에게 연락해."
아버지는 말을 덧붙였다.
"선생님 혹시 집에서 열이 날지도 모르니까 해열제 몇 개만 아이에게 챙겨주세요."
보호자의 요구 앞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버님. 방과 후에 해열제가 필요하면 약국이나 편의점에서 사면됩니다. 지금은 아이가 열이 나지 않아요. 혈압, 맥박도 모두 정상이고 안색도 괜찮습니다. 학생의 주관적인 증상만을 가지고는 제가 어떤 처치를 할 수가 없네요. 학원에 좀 늦어도 된다면 보건실에서 30분 정도 경과를 관찰해 보겠습니다."
"우리 아이 학원 가야 됩니다. 선생님, 그냥 약 챙겨주세요."
"안 됩니다."
단호하게 말했지만 솔직히 아버님의 목소리가 커서 상당히 위협적으로 들렸다.
방과 후에 아픈 아이를 봐주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아이들은 복통이나 두통이 생겼을 때 병원에 가지 않아도 2-3시간만 요양하면 괜찮아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가정에 아무도 없다는 이유로 보건실에 무리한 부탁을 하곤 한다.
"선생님 몇 시에 퇴근하시나요? 제가 지금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없어서요. 퇴근시간까지 봐주세요."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도 못하고 "네'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왜냐면 아이만 혼자 집에 두면 불안할 보호자의 마음을 아니까. 또 아이도 짠하니까. 아이들이 방과 후에 몇 시간 누워 있어도, 그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보호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보지만, 동시에 솔직히 불편하다.
보호자의 주문을 들고 오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충분히 가정에서 돌봐도 될 텐데도 보건실로 보내지는 경우가 흔해졌다.
보호자에게 보건실은 어떤 의미일까? 보건실은 학교 공동체 안에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 역할이 '응급처치와 건강관리'에서 '가정 대신 아이를 돌보는 곳'으로 확장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나는 오늘도 아이들을 돌본다. 그러나 그 순간마다 묻게 된다. 부모와 학교, 그리고 사회가 어디까지 아이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