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 무엇이던 넘어설 수 있다.
헬레네의 선택, 혼돈 속에 피어난 사랑의 역설
프롤로그: 전쟁의 불꽃을 지핀 한 줄기 사랑
기원전 12세기, 트로이아의 성벽 아래 피로 물든 10년의 전쟁은 한 여인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 그녀는 남편 메넬라오스를 버리고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 역사는 그녀를 ‘얼굴이 천 척의 배를 불태운 여인’이라 비난했지만, 그녀의 선택은 단순한 배신을 넘어 인류의 영원한 질문을 던진다.
"사랑은 과연 이성과 도덕의 경계를 넘어설 권리가 있는가?"
1. 신화 속 인간의 욕망: 아프로디테의 선물, 혹은 자유의지?
파리스가 아프로디테에게서 받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선물은 신화적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헬레네의 선택은 신의 조작보다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왕비의 도피는 왕국의 명예를 짓밟는 중죄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금지된 사랑을 택했다. 이는 계략에 휘둘린 수동적 존재가 아닌, 욕망을 관철시킨 주체적 결단이다.
"사랑은 자신을 파괴할 폭풍이라도, 그 눈을 똑바로 응시하게 만든다."
오비디우스, 《사랑의 기술》
2. 전쟁의 잿더미 위에 선 사랑의 모순
트로이 전쟁은 헬레네의 선택이 초래한 참화로 그려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끝난 후 그녀는 스파르타로 돌아와 메넬라오스와 평범한 삶을 이어간다. 역사가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그녀를 ‘당당한 왕비’로 복권시킨다. 이는 당대 사회가 그녀의 사랑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의 불가항력성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쟁의 원흉이자 피해자인 그녀의 운명은 사랑의 이중적 본질, 파괴와 치유를 상징한다.
3. 현대적 재해석: 우리 안의 ‘헬레네’를 마주하다
21세기의 헬레네들은 더 이상 신화에 갇히지 않는다. SNS 시대, 연예인의 스캔들이 ‘디지털 관음증’으로 확산되거나, 정치인의 사생활이 공적인 비난을 받을 때, 우리는 여전히 사적 욕망과 공적 윤리의 충돌 앞에서 갈등한다. 그러나 헬레네의 이야기는 경계를 넘나드는 사랑이 ‘비도덕’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원초적 표현임을 일깨워준다.
"사랑은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폭풍처럼 오고, 심장을 뒤흔들고 사라질 뿐이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4. 논리를 거스르는 사랑의 교훈
윤리보다 강력한 본능: 사랑은 사회 규범을 초월하는 생물학적 코드다. 파국 속의 아름다움, 트로이의 몰락은 비극이지만, 헬레네의 선택은 인간다움의 정수를 보여준다.
용서의 의미: 메넬라오스가 헬레네를 받아들인 것은 ‘사랑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성의 승리’다.
에필로그: 사랑은 여전히 난해한 수수께끼
트로이의 재는 사라졌지만, 헬레네의 질문은 남는다.
"당신은 논리와 윤리를 버리고 사랑을 택할 용기가 있는가?"
그녀의 이야기는 완벽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사랑할 때마다 그 순간만큼은 이성의 감옥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속삭인다.
칼럼니스트의 한 마디:
사랑은 때로 불편한 진실이다.
그리스 신화의 세계관에서는 인간은 운명의 세 여신에 의해 미래가 예지되지만 인간은 그 미래를 벗어나기 위해 발바둥친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이고 그리스의 비극처럼 때론 잔인기도 하다. 그러나 그 불행함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