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에 걸친 ‘무정보’ 실험기>
같이 일하는 타과 과장님이 있다. 연세가 있으시고, 경력이 나보다 훨씬 깊은 분이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아드님 결혼 과정에서 분당에 집을 마련해 줬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말 끝에 “다행이다”라는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나는 단순한 정보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아드님은 나보다 어리다. 그리고 나는, 나보다 어린 그 사람보다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심지어 바로 '아예 못 따라잡겠다'라는 결론까지 빨리 도달해 버렸다.
그분이 나에게 자랑하려고 하신 이야기가 아니었다.
일상적인 대화였고, 말투에도 우월감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안도감에 가까운 말투였다.
그분은 단순히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곱씹었고, 종일 곱씹으면서 마음 한구석을 불편해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곱씹는 내가 문제다.
사실 ‘무엇을 따라잡고 무엇을 못 따라잡는다’는 생각 자체가 어처구니없다.
명확한 기준도 없고, 목표도 없는데, 사회가 정해놓은 척도에 내가 스스로를 끼워 맞춰버린다.
대한민국에서 7차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한 나로서는, 이런 생각의 씨앗이 이미 오래전에 심어져 있었다.
아무리 뽑아내려고 해도, 가끔은 불쑥 올라온다.
그 사고방식은 비교를 자연스럽게 만든다.
사람은 누군가의 정보를 알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비교를 한다.
그게 이성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반사작용처럼 일어난다.
비교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때도 있지만, 대개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초라함이 오래가면, 그것은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무정보’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알지 않으면 비교할 재료가 줄어든다.
그만큼 불필요한 생각이 줄어든다.
이런 이유로 몇 년 전에 이미 가족이나 친척, 친구가 없는 지방으로 내려왔다.
낯선 환경과, 정보가 없는 환경 자체가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의 상황이 조금씩 귀로 들어왔다.
그리고 과거에 알았던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어도, 시간이 지나면 정보는 결국 들어왔다.
아무리 멀리 와도, 마음이 열려 있으면 정보는 들어오고, 그 정보는 나를 또 비교하게 만든다.
물론 예전처럼 가까이 있을 때보다는 확실히 낫다.
결국 무정보를 유지하는 건 물리적 거리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거리가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요즘은 방법을 바꿨다.
정보를 완전히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니, 들어온 정보를 오래 붙잡지 않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곱씹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얘기든, 아무리 불편한 얘기든, 잠깐만 듣고 흘려보낸다.
물론 그게 잘 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다.
아직 결론은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사람은 비교하지 않으면서 살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그걸 줄이는 건 평생의 숙제일지도 모른다는 것.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5
마취 관련
1. 마취 준비해 주세요.
- 치과용 마취 주사기를 조립해 달라는 뜻이다.
2. 앰플 더 갖다 주세요.
- 주사 더 놓겠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