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대신 사다리를 놓아주는건 어떨까>
어떤 사람을 죽도록 욕하다가도,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사실은 괜찮은 사람이었는데…”라는 말이 나온다.
살아 있을 때는 그렇게 몰아세우더니, 죽고 나서야 갑자기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 반전의 속도와 가벼움이 늘 낯설었다.
패턴은 단순하다.
1) 죽도록 몰아붙인다.
2) 정말로 무너지거나, 심지어 죽는다.
3) 사실은 좋은 사람이었다고 재평가한다.
4) 여론은 반성보다 망각을 빠르게 선택한다.
5) 그리고 다음 타깃을 조준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윤리는 이렇다.
1) 살아 있을 때는 잘못을 지적하되, 법적인 문제는 법이 처리하도록 맡기고, 사람은 살려두기.
누군가가 잘못을 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숨통을 완전히 조이는 건 다르다.
비판은 하되, 돌아올 수 있는 길은 남겨둬야 한다.
차라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하고, 돌아올 다리를 남겨두는 게 사회의 일 아닌가.
2) 죽은 뒤에 미화하지 않기.
죽고 나서 “사실은 좋은 사람이었는데”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화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남긴 잘못과 배움을 차분히 남겨야 한다.
죽은 뒤의 미화는 의미가 없다. 죽고 나서 칭찬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나는 ‘빠져나갈 구멍’이라는 단어를 종종 떠올린다.
모든 생물은 본능적으로 탈출구가 없다면 광기에 빠진다고 생각한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가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곤란에 빠졌을 때
사회가 최소한의 구멍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빠져나갈 구멍이란?
1) 조용히 물러날 수 있는 통로
2) 회복 가능성을 인정하는 제도
3) 관심을 거두는 작고도 큰 배려
현실은 반대다. 빠져나갈 구멍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제일 먼저 반박부터 한다.
“그럼 살인자도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 줘야겠네?”라는 되묻는 식의 ‘반박을 위한 반박’.
논점을 비틀어 끝까지 끌고 가는 목 조르기 기술.
세상은 정답이 없는 문제로 가득하다.
그래서 중요한 건 정답보다 숨통을 열어두는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더더욱, 사회가 ‘살아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남겨두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믿는다.
죽은 뒤의 용서와 칭찬은, 살아 있는 우리에겐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치과에서 우리들끼리 (치과의사, 직원, 가끔 환자분께) 쓰는 말 4
어시스트 관련
1. 어시 좀 서주세요.
- 나 혼자 두지 말라는 뜻이다.
2. 목구멍에 썩션 좀 해주세요.
- 환자 목에 물이 찰랑찰랑하니 물을 썩션 해달라는 뜻이다.
3. 라이트 좀 맞춰주세요.
- 환자 입안이 잘 안 보이니 헤드 라이트 각도를 맞춰달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