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함피플탐구] 커뮤니티실 청신호팀 오슬기 매니저
[더함 피플 탐구] “타인과 함께, 타인을 통해서 협력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by 생텍쥐페리). 일을 하면서 좋은 동료를 만나는 것만큼 큰 복이 또 있을까요? 서로 공감하고 협력하며 더함에 다양한 색채와 가치를 더해 가는 사람들을 만나 봅니다.
우리 몸을 지탱하는 다양한 근육 중 가장 중요한 근육을 꼽으라면 단연 ‘코어근육’일 텐데요. 이 근육이 무너지면 몸 여기저기서 아프다는 원성이 빗발치죠.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단단해야 하는 ‘코어근육’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과 생각, 그리고 일상의 습관이 단단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청신호 명동’ 공간의 운영과 프로그램 기획을 담당하는 커뮤니티실 오슬기 매니저를 만나면, 이러한 일상의 코어가 단단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매일 아침 부지런히 참석하고 있는 요가 수련, 수년째 이어오고 있는 채식 실천, 그리고 늘 곁에 두고 읽는 다양한 책들까지. 일상을 좀 더 단단하게 챙기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의 일상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요가를 맨 처음 배우는 사람들에게 가장 힘든 자세 중 하나는 바로 ‘중심 잡기’일 텐데요. 그건 조금만 흔들려도 이내 평정심을 잃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미세하게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몸속 깊숙한 곳의 코어를 찾으며 숨을 고를 때, 어제보다는 좀 더 안정된 자세를 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그렇지 않을까요.
오늘은 매일의 흔들림 가운데에서도, 삶에서 중요한 가치와 중심을 잘 찾아가고 있는 오슬기 매니저의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더함 커뮤니티실 청신호팀에 있는 오슬기 매니저입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청년/신혼부부 맞춤주택 브랜드 ‘청신호’의 홍보공간 <청신호 명동>(링크)을 팀과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청신호 명동>은 카페와 홍보관이 위치한 ‘아랫집’과 커뮤니티 공간인 ‘윗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윗집’에서 일어나는 커뮤니티와 주거의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홈드레싱: 캘리그래피편>(링크), 더 잘 살기 위한 주제를 탐구하는 <책장 앞 책모임: 음식편>(링크), 여성청년이 주체적으로 일과 삶을 꾸리는 방법을 ‘방/집’을 통해 모색해 보는 <자기만의 방, 2020>(링크)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또 동시에 청년들 각자의 삶이 코로나 전후로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록하는 작업인 <2020 청년 집콕 기록>(링크)을 장기적으로 하려 합니다.
아 참, 그리고 제가 이 소개를 제일 좋아하는데요. ‘윗집’의 식물집사를 자처해서 매주 물을 꾸준히 주고 있습니다.
네 저는 조금 생소해 보이는 ‘항해’를 전공했는데요, 덕분에 어딜 가든 주목받고 있어요. (웃음) 항해를 전공으로 선택한 데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요, 제복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어릴 때부터 있었어요. 항해를 전공하기 전에는 경찰이 되게 오랫동안 꿈이었고요. 또 한 가지, 세계를 누비는 것에 대한 동경도 컸어요. 배를 타면 돈도 많이 번다고 하고요. 무엇보다 수업료가 없는 국립학교라는 점에서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막연한 기대만을 가지고 간 학교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제가 다녔던 학교는 1,600명이 단체생활을 하던 곳이었는데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장에 오와 열을 맞춰 줄을 서 있어야 했어요. 학년별로 줄을 서서 아침 인원 보고를 하고, 구보를 뛰고, 훈련을 받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1~2학년 때에는 항해사가 되기 위해 (법적으로) 수료해야 하는 과목들로 꽉꽉 채워서 수업을 들었어요. 학과를 마친 후에는 관악동아리에 가서 플롯을 불었습니다. 방으로 돌아가서는 제복을 다리고, 방 청소를 한 후에 인원 점검을 받았는데요. 이렇게 매일 반복된 일상을 보냈네요.
3학년인 1년 동안은 실제 배를 타며 지냈어요. 한 학기는 동기들과 학교배를 탔고, 한 학기는 팬오션이라는 선사에서 벌크선을 탔어요. 컨테이너선은 컨테이너 안에 물건을 실어 적재하는 배이고요. 벌크는 포장되지 않은 화물을 싣는 배예요. 저는 철광석이랑 석탄을 실었던 배를 탔습니다.
중국 대련에 입항한 학교 실습선 앞에서 항해학부 동기들과 함께 찍은 사진. 맨 우측이 오슬기 매니저이다. (사진 제공: 오슬기)
▲ 학교 관악동아리에서 플룻을 연주하는 오슬기 매니저의 모습. 드럼을 치고 싶었지만, 자의와 달리 플룻을 맡게 되어 아쉬웠다고 한다. 다음에 악기를 연주한다면 꼭 드럼 파트를 사수하시길..!
항해라는 일이 굉장히 동경했던 일이었잖아요. 실습을 나가면 선배들이 되게 멋있어 보였고요. 그런데 저는 배를 탄 1년 동안 내내 헛헛했어요.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헛헛함이 계속 제 주변을 감쌌다고 해야 할까요.
짜여진 시간표대로, 제한된 수업을 들어야 하다 보니 공부가 즐겁지 않더라고요. 배라는 제한된 공간과 그 안에서의 제한적인 인간관계 때문에 헛헛했던 것 같아요. 공허함을 채우려고 계속 먹었는데, 그러다 보니 1년 동안 10kg가 찌기도 했어요. 몸이 다 자란 이후에 제 인생 최저 몸무게와 최고 몸무게를 그 1년 안에 모두 경험했네요.
어느 날인가는 항해를 하다가, ‘내가 이 일을 계속 해야 한다면 그 이유가 뭘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됐어요.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웃음) 그건 아니잖아요. 돈 많이 벌어 집안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것도 저에게는 큰 동력이 되지 못했어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1년 실습을 마치고 휴학을 했어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고, ‘그냥 하고 싶었던 거 할 거야, 1년 동안만 날 내버려 둬’ 이런 마음이었죠. 제가 어렸을 때부터 다큐멘터리 이런 걸 좋아했었거든요.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독립영화도 종종 즐겨 봤고요. 영상 공부를 1년 해봐야지 마음먹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영상 스튜디오에서 오픈한 1개월 워크숍을 들었는데, 실제 촬영을 하는 분과 팀이 되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다큐를 만들었어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도 재밌었고, 제가 생각한 구도를 카메라에 옮기는 것도 좋았어요. 편집하는 것도 참 재밌었고요. 섬세하게 달라지는, 나만 아는 그런 부분들.. 이런 모든 게 좋았어요.
1개월 워크숍에 이어서 독립영화 감독님들과 함께하는 6개월 프로그램을 들으며, 시나리오 쓰는 법, 촬영 장비들을 다루는 법 등 영상 작업의 전반을 배웠어요. 저는 ‘엄마’를 주제로 시나리오를 썼는데, 실제 촬영과 편집을 마친 후 지인들을 불러 작게 상영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영상 작업에 대한 목마름은 이 1년을 통해 해소되었는데요, 제가 직업으로 가지고 싶은 분야는 아니라는 판단도 동시에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대외 활동을 통해 또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어요.
처음 청소년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저의 경험 때문이기도 한데요. 말하자면 제 경우가 진로의 미스매치 사례라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돌아보지도 못하고 전공을 선택했던 경험,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기존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이 결합되어서 청소년 활동을 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특히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청소년들을 만나보기로 생각했습니다.
청소년 관련 대외활동을 하던 때에, 우연히 ‘국립청소년해양센터’(링크)에서 일하시는 분의 강연을 들었는데요. 청소년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한 강연을 하시면서, 이 기관에 대한 소개도 해주셨어요. 기관 소개를 하면서 센터 사진을 보여 주셨는데요. 산 한가운데에 건물이 들어서 있고, 그 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는 모습에 반해 버렸어요. 경치만으로도 이미 반해 버렸는데, 항해라는 주제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하니 ‘대박’이라고 생각했죠. 경북 영덕이란 곳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연고도 없는 곳이었지만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국립청소년해양센터에서는 ‘청소년지도사’로서 항해 시뮬레이션, 선박에서의 안전 등을 주제로 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했어요. 그 안에서 레저, 해양과학, 해양생물, 환경 등 다양한 전공자들과 함께 일했는데요, 저도 그 안에 있다 보니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주제를 넓히며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해소되지 않는 몇 가지 목마름이 생기더라고요. 일상에서 같은 주제를 나누고, 고민하며 일을 도모할 또래가 없다는 점에서, 생활 지역에서의 커뮤니티가 필요했고요. 업무적으로는 항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대안적인 청소년 현장에 가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일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는데요, 감사하게도 서울에 소재한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링크)으로 자리를 옮겨 일을 계속해 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주셔서 서울로 오게 됐습니다.
진흥원에서는 PBL(Project Based Learning)이라고 하는 ‘문제기반학습’의 방법을 청소년 활동 현장으로 넓혀 가는 부서에서 일을 했어요. PBL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학습하고, 역량을 키워 나가는 방법을 말합니다. 좀 더 세부적인 직무로 들어가서 말씀드리면, 너무 신기하게도 제 고민과 맞닿아 있던 ‘진로’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됐어요. 꿈을 ‘직업’이 아닌 ‘가치’ 중심으로 꿀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예컨대, ‘나는 선생님이 될 거야!’라고 결심한 청소년에게 사범대 진학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되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 보게 하고,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게 하는 거죠. 동생들을 가르쳐 볼 수도 있고, 지역에 있는 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 이후에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해볼 수도 있겠고요. 이런 일들이 무척 재미있었는데요, 눈에 보이는 ‘직업’ 중심의 진로 탐색 체계를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중심으로 만들어 가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가 회사의 가치도 괜찮고, 일도 저에게 잘 맞을 것 같다면서 더함의 채용 소식을 알려주었어요. 이 친구의 지인이 더함을 다니는데, 좋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에요. 커뮤니티 공간의 운영자를 뽑는데, 이 일이 앞으로 제가 하려는 일들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그 친구의 진심이 닿아서 지원을 했고, 잘 다니고 있습니다.
3위는 ‘매니저 워크숍’이었어요. 사실 큰 기대는 없었거든요. 그런데 한 사람, 한 사람씩 본인소개를 하는 첫 순서부터 서로의 리액션이 너무 좋은 거예요. 앞에서 말하는 입장에서 리액션이 좋으면 사실 신이 나잖아요. 서로에 대한 호기심과 폭발적인 반응들이 참 좋았습니다. 더함 매니저들은 순수하고 열정이 많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웃음)
어느 조직이나 주니어급에서 조직 문화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들을 마련하기는 하지만, 형식적인 선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맨날 문제만 말하다가 끝나는 듯한 기분도 들고요. 주니어들이 문제를 말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는데, 매니저들이 워크숍에 진지하게 임하는 데서 많이 놀랐어요. 워크숍에서 그치지 않고, 매니저들 간에 정기적으로 만나 식사도 하고,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점심시간 등 막간을 활용한 ‘마이크로 플리마켓’, ‘단체티 제작’ 등도 같이 해나갈 예정이에요.
2위는 ‘페미니즘 독서모임’인데요. 열 명 정도 되는 구성원들이 2주에 한 번 점심시간에 모여 페미니즘 책을 읽고 있어요. 사실 일터에서 이런 동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은 일이죠. 아까 매니저 워크숍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다들 제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다 공감하고 받아들여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일상에서 많은 위로와 치유가 되고 있어요.
1위는 (두구두구..) 제가 몸담고 있는 ‘청신호팀’입니다. 요즘 들어, 제가 지금의 일에 꽤 만족하며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청년과 주거, 커뮤니티, 공간이라는 주제 모두 제 인생에서는 처음이고 생소한 분야이지만, 참 재미있는 주제들이에요. 특히나 저희 사업의 대상자가 청년인데, 사업을 운영하는 저 또한 청년이다 보니, 제가 평소 관심이 있었거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녹여내고 있어요. 이런 과정이 재미있더라고요.
무엇보다 그런 의견이 팀 내에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종종 ‘내가 이런 멤버들과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내가 이런 멤버들과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좋은 팀을 만났다는 오슬기 매니저.
지금 하고 계신 ‘구성원 인터뷰’가 재미있어 보여요. 다양한 배경과 이야기를 가진 구성원들을 만나 삶에 대한 촘촘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제가 가진 좁은 시야가 확장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청신호팀 구성원들은 일상 속에서 서로 ‘멋지다’라는 말을 자주 해줘요. 가끔은 남발한다고 느낄 정도인데요. (웃음) 멋지다는 말이 쑥스러워서 매번 ‘뭐가 멋지냐?!’고 하기도 하지만, 들을 때마다 좋고 힘이 나긴 해요.
계속 반복되는 말인 것 같은데, 순수함과 존경으로 서로를 대하는 문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구성원을 크고 작은 ‘수단’ 정도로 생각하고 대한다면, 겉으로는 하하호호 해도 뒤에 가면 공허함을 느낄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를 위한’ 일을 하는 ‘개인’들이 소외되지 않고,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3년 내내 공부만 하다 보니 척추가 휘고 골반이 비대칭으로 변했어요. 잘 모르고 있다가 대학에 와서 제복을 입으니 눈에 확 띄더라고요. 그때부터 이런저런 교정 운동들을 해왔는데, 이런 운동들이 모두 요가 동작에서 온 것들이더라고요.
요가를 하지 않을 때부터 요가 수련에 대한 동경은 있어 왔어요. 오랫동안 수련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외유내강’의 아우라가 있잖아요. 무엇보다 오랜 요가의 역사에서 오는 신뢰도 있었고요.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배워 오다가, 최근에 이사한 집 근처에 ‘찐’ 요가원을 발견해서 새벽반을 다니고 있어요. 마침 10시까지 출근할 수 있어서,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고 다니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되던 요가 동작들이 되기 시작할 때 ‘내 몸이 달라지고 있나 보다’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요. 코어에 점점 힘이 생기면 참 뿌듯하죠.
휴학하고 영화를 한창 많이 보러 다녔는데요. 환경재단에서 주최하는 환경영화제에 갔다가 황윤 감독의 <잡식가족의 딜레마>라는 영화를 보았어요(링크). ‘공장식 축산 시스템’ 안에서 돼지가 어떻게 길러지는지를 보여 주는 영화였는데,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황윤 감독 본인의 아이와 아기돼지를 교차해서 보여 주는 영상을 보면서, 인간과 비인간인 동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어요. 고기를 좀 더 먹자고 이렇게나 비윤리적인 환경에서 생명을 무참하게 대하는 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고, 또 그 사육현장이 자연 환경과 사람에게도 결국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돼지를 위해 울었는데요, 영화를 보자마자 단박에 채식을 결심했어요.
저희 커뮤니티 실장님께서 저를 두고 말씀하신 단어가 있어요. “20대의 배를 탔던 채식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 처음엔 와하하 웃었는데, 객관적이고, 명쾌하고, 군더더기 없어서 무척 마음에 들어요. 물론 저 안에도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이 공존하고 있어서, 여전히 저를 표현하는 일은 어렵게 느껴집니다.
커리어라는 말이 조금 거창하게 느껴지는데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하고 싶어요. 지역에서 ‘사회적 공간’을 조성하고 그 안에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채워 보고 싶어요.
평소 지역을 자주 여행하는데요, 사람들의 활력이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아 조금 휑한 느낌이 드는 곳들에 가면 항상 그런 ‘공간’을 생각해요. 고향에 가면 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나는데요, 그 친구들은 지역에서 무척 심심한 일상을 보낸다고 하더라고요. 청년문화도, 함께 모여 일을 도모할 공간도 없어서 일상을 지루해하는 친구들을 보면 그 필요가 절실하게 느껴져요. 생활공간을 거점으로 사람들이 재미있고, 의욕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거창할 건 없고,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계절요리와 디저트를 뚝딱 만들어내고, 빈티지한 패션을 기깔나게 소화하고, 남은 여생을 스스로 책임질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할머니요. 무엇보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는, 눈이 반짝거리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해당 글은 2020년 5월 21일 사회혁신기업 더함 공식홈페이지에 송출된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