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5.30 (금)
달력보다 먼저 계절을 알려주는 것은 공기다.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벌써 여름이 왔음을 직감한다. 바람 속에는 봄의 잔향이 거의 사라졌고, 햇살은 이마를 짧게 쓸고 간다. 봄을 제대로 느껴보기도 전에 여름이 도착한 듯하다. 어쩌면 이건 처음 맞는, 혼자만의 여름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보다 빨리 반팔을 꺼내 입는다. 매년 그랬다. 여름옷은 늘 남들보다 한 달 먼저, 가을옷은 누구보다 늦게 꺼낸다. 더위를 잘 못 견디는 몸이기에 그렇지만, 올해는 그저 계절이 달라졌다는 사실에만 반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반팔을 입은 나를 확인할 때, 여름이 왔구나 하고 뒤늦게 체감한다.
집안도 조용히 계절을 바꿨다. 이불과 시트, 커튼까지 모두 여름용으로 교체했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함께하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혼자만의 몫이다. 그렇게 빨아 널어둔 두꺼운 이불을 개며 잠시 손끝에 머무는 체온 같은 감정을 느꼈다. 이불 위에 엎드려 일어나려 하지 않는 반려견 쿠키의 모습에서 묘한 저항감도 느꼈다. 마치 무언가를 간직하고 싶다는 듯, 낯선 이불 위에서 한참을 버티고 있었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이 들어오고, 볕이 머무는 오후. 식탁 위 노트북에선 7080 가요가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자연스럽게 따라 흥얼거리며 걸레질을 한다. 손끝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마음도 따라 움직이고, 음악은 마음속 먼지를 털어내듯 몸과 정신을 흔든다.
한때는 꿈꾸던 일이 있었다. 새로 이사하면 넓은 거실 네 코너에 스피커를 달아 클래식 음악이 흐르도록 만들자던 약속. 텔레비전은 필요 없다고, 그 대신 음악이 흐르는 집이 더 풍요롭다고 믿었다. 결국, 우리 집에는 정말 TV가 사라졌고, 음악만이 공간을 채우게 되었다. 그 소박한 이상이 지금도 내 생활의 리듬이 되었다.
아들도 음악을 전공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음악이 흐르던 집의 분위기가 그 아이의 선택에 영향을 준 건지도 모른다. 자유롭고도 진지하게, 음악은 마음을 보듬고 또 고양시키는 힘이 있다. 삶의 위로가 되었던 수많은 곡들이, 오늘도 배경처럼 흐른다.
집안 정리를 마치고 덕계공원 옆 행정복지센터로 향했다.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일이었다. 사회는 혼란했고, 정치는 분열되어 있었지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고 돌아왔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마음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다. 오히려, 나의 선택이 조금이나마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움직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투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아쉬움이 밀려왔다. 함께하지 못한 누군가의 빈자리가 새삼 선명하게 느껴졌다. 정숙 씨의 한 표가 있었더라면, 아마도 같은 생각으로 같은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 확신은 이상하게도 따뜻한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요즘의 정치판은 말이 너무 많다. 진심보다는 계산이 앞서고, 비방이 정당한 논쟁을 압도한다. 어떤 후보는 다른 이의 험담을 서슴지 않고, 선거의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흐려진 듯하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또 한 번의 거대한 선거가 치러진다는 사실에 씁쓸함도 감돈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품는다. 이 나라가 지금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따뜻한 사회가 되기를, 누군가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혼란한 시기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기도가 더욱 절실해진다.
여름은 그렇게, 소리 없이 깊어가고 있다. 바람은 조금씩 더워지고, 마음속 빈자리는 여전히 차갑다. 그러나 그 빈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살아 있음을 안다. 계절은 지나가고,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또 한 번, 새로운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