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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얼굴, 그 길 위에서

2025.6.8 (일)

by 시니어더크


주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아침 일찍 교회에 갔을 텐데, 오늘은 가지 못했다.
아이들과 정숙 씨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신앙을 지킨다고 하면서 주일을 소홀히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셋이 함께 가려면 오늘뿐이었다.
하나님께 조용히 양해를 구했다.
돌아와 영상예배로 대신드리겠다고, 마음으로 말씀드렸다.


점심 무렵,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바깥은 이미 한여름.
뜨거운 햇볕이 바닥을 달구고 있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는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문을 여니 열기가 확 쏟아져 나왔다.
차에 올라 에어컨을 켜고 겨우 숨을 돌렸다.


운전은 아들이 맡았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목적지는 가평을 지나 춘천 방향에 있다.
정숙 씨가 잠들어 있는 곳까지는 대략 한 시간 반쯤 걸린다.


가는 길 반대편 도로는 차들로 가득했다.
현충일을 낀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귀경 차량이 몰린 듯했다.
다행히 우리가 향하는 방향은 한산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다.
정숙 씨와 함께일 때도 늘 멈추던 곳이다.
그때마다 우동을 빠뜨린 적이 없다.
아내가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자연스럽게 우동과 김밥 한 줄을 시켰다.
셋이 나눠 먹으며 잠시 쉬었다.


휴게소 뒤쪽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산책로가 있다.

그 이름을 따서 휴게소 이름도 '벚꽃길 휴게소'로 지은 것 같다.
그 산책로는 한 번 가본 그 길이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정숙 씨와 갔던 길이기 때문이다.


다시 길을 나섰다.
차량 행렬은 줄어들었고, 도로는 한결 여유로웠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도로는 조용해졌다.


청평, 가평, 양평…
이 지역은 늘 교통이 붐비는 곳이다.
명절이나 휴가철이면 평소보다 배는 더 걸린다.
하지만 오늘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숙 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설렘과 그리움이 발길을 재촉했다.


도착하니 성묘 차량은 몇 대뿐이었다.
아내가 잠든 곳은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차로 5분쯤 더 올라갔다.


길가엔 이름 모를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꽃잎은 코스모스를 닮았지만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장미꽃다발을 들었다.
지난번 가져온 꽃은 비를 맞아 시들어버렸기에,
오늘은 새 꽃을 준비했다.
핑크빛의 은은한 장미에 빨간 장미를 더한 화사한 꽃다발이었다.
정숙 씨의 웃음처럼 고왔고, 우아했다.


우리 셋은 고개를 숙이고 기도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틀었다.
며칠 전 현충일에 들은, 이해원 소프라노의 <보고 싶은 얼굴>.
그 노래를 아내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음량을 최대한 높이고 가사를 따라 마음을 전했다.


아내도 들었을 것이다.
노래엔 우리가 전하고 싶은 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으니까.

이제는 사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얼굴.
세월이 흐를수록 더 그리워지는 그 얼굴.


오늘도 우리는 그 얼굴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 길 위에서, 여전히 아내 정숙 씨를 사랑하며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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