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6.9 (월)
"아빠, 오늘 뭐 해 먹지?"
딸의 물음에 한참을 생각하다, 문득 지난해 말려놓았던 시래기가 떠올랐다.
"그래, 시래기밥을 해 먹자."
그렇게 말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지난해 겨울은 내게 가장 슬픈 계절이었다.
눈물이 마를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나,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70 평생, 그만큼 많이 그리고 슬피 운 적은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이토록 깊은 슬픔은 아니었다.
정성을 다해 간병했건만, 아무런 소용없이 정숙 씨는 쓸쓸히 떠나갔다.
차라리 서로 미워하게 되어 헤어진 것이라면, 이렇게 가슴이 저리지는 않았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2024년 11월 30일, 우리 집에서는 김장을 했다.
늦가을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 탓에, 김장은 말일로 미뤄졌다.
아내와 함께 해남절임배추를 주문하고,
"그날은 당신이 방법을 꼭 알려줘야 해."
나는 그렇게 약속을 부탁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평생 약속은 철두철미했던 사람이었는데…
11월 말일, 나는 혼자서 김장을 했다.
해남에서 도착한 절임배추 네 박스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마트에서 무 두 단을 사 와,
아내가 하던 대로 무청을 잘라 하나하나 발코니에 널었다.
햇빛은 들지 않고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무청 말리기 좋은 자리.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면 시래기가 된다.
지금도 그 시래기가 한 박스 가득 쌓여 있다.
시래기밥은 구수하고 담백하다.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풍부해 속도 편하고 건강에도 좋다.
칼로리는 낮지만 포만감은 높아 다이어트식으로도 제격이다.
예전 서울에 살 때가 생각났다.
우이동 4.19 민주묘지로 가는 길목, 4.19 탑이 우뚝 서 있던 그곳.
자유를 외치던 이들을 기리는 상징적인 공간.
그 앞에는 조용한 시래기밥집이 하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영업이 잘되고 있을 것이다.
무청을 정성껏 삶아 지은 밥 한 공기.
그 구수한 향이 몸속 깊이 따뜻함을 채워주곤 했다.
서너 번쯤 갔던 그 집은 늘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 맛을 다시 떠올리며, 나는 시래기밥을 짓기 시작했다.
시래기는 물에 충분히 불리고, 껍질을 살짝 벗긴다.
끓는 물에 10분 이상 삶아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알맞게 익었다 싶으면 찬물에 헹군 후, 꼭 짠다.
2~3cm 크기로 자른 시래기를 간 마늘, 들기름, 굴소스로 무친다.
불린 쌀과 무친 시래기를 전기밥솥에 번갈아 넣고, 백미 취사를 누른다.
30분쯤 지나면, 고들고들한 시래기밥이 완성된다.
넓은 공기에 밥을 푼 뒤, 미리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넣고 슥슥 비빈다.
딸은 맛있다며 두 번이나 더 떠서 먹는다.
기분까지도 건강해지는 맛이다.
아들도 오면 이 밥을 먹으라고 해야겠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우리끼리만 먹는 것이 어쩐지 죄송스러웠다.
정숙 씨가 함께 있었으면, 참 좋아했을 텐데…
그녀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이 바로 시래기밥이었다.
오늘은 그 시래기밥으로 하루를 지탱했다.
정숙 씨, 고마워요.
당신이 남겨준 손맛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건강하게 밥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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