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 의자 하나
2025.6.12 (목) 맑음
두 달에 한 번씩, 나는 병원으로 향한다.
한 군데도 아니고 세 군데.
피부비뇨기과, 내과, 정형외과.
정해진 순서처럼 이곳저곳을 돌며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온다.
병원이 좋아서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으니 가는 것뿐이다.
살아가기 위해, 아프지 않기 위해.
젊었을 땐 병원이 참 싫었다.
조금 아파도 그냥 참고 넘겼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그때 미뤄났던 진료받아야 할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다.
밀린 숙제처럼, 내게 다가온다.
그 무게가 제법 크다.
가끔은 숨이 턱 막힌다.
이럴 때면, 정숙 씨가 떠오른다.
그 사람만 옆에 있었어도
덜 외롭고, 덜 무거웠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없다.
지난해, 내 곁을 조용히 떠나갔다.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남들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아내는 그 많은 날들 중 하루를 골라
그냥 훌쩍 떠나버렸다.
그날 이후, 병원 가는 일이 더 쓸쓸해졌다.
같이 앉던 진료실 의자,
차 안에서 나누던 소소한 이야기들,
이제는 모두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오늘은 집 근처 피부비뇨기과에 다녀왔다.
오래된 병원이다.
기록지는 누렇게 바랬고, 종이 끝은 동그랗게 말려 있었다.
환자들은 대부분 나이 든 남성들이다.
다들 나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이곳을 찾는 것이겠지.
남자에게만 있는 작은 기관, 전립선.
방광 아래, 요도를 감싸고 있는 밤톨만 한 기관이다.
나이가 들면 커지기도 해서,
소변이 자주 마렵거나, 시원하게 나오지 않기도 한다.
밤에 자꾸 화장실에 가게 되면
대부분 그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소변 검사, 전립선 촉진 검사,
혈액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암의 징후는 없다고 했다.
정기적인 검진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노태우 대통령, 레이건 대통령,
그리고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까지
모두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처방전에는 전립선 약 두 가지,
그리고 '우루사'가 적혀 있었다.
젊은 시절, 술을 참 많이 마셨다.
그 당시 주류회사가 있는 그룹의 건설회사에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회식이 잦았고, 술을 마시는 날들이 많았다.
지금은 주류회사를 모두 다른 그룹에 팔고 없다.
아마 중장비 쪽으로 그룹을 키워나가는 것 같다.
지금은 아예 한 방울도 안 마시지만,
그때 혹사당한 간은 아직도 편치 않다.
혈액검사 결과를 보면
간 수치가 늘 조금씩 높게 나온다.
건강은 젊을 때 지켰어야 한다는 말,
이제야 절실히 느껴진다.
오늘도 병원을 다녀오며 생각했다.
정숙 씨는 이보다 훨씬 더 힘들고, 극심한 아픔을 겪었다.
무려 13년 동안이나.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며
참아야 할 고통을 말없이 견뎌냈었다.
그 모습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았고,
그때의 장면들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치 오래된 드라마처럼
내 마음속에 저장되어 있다.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들.
어떻게 잊겠는가.
평생을 함께했던 사람인데.
약국을 나오는데,
약사님이 칫솔 하나와 비타민 드링크 몇 개를
약봉투에 함께 넣어주셨다.
"감사합니다"
그 인사에 나도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속으로 조용히 불러본다.
"정숙 씨, 오늘도 병원 잘 다녀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