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치는 밤, 기억 속 그녀와 강아지

그리움은 천둥소리처럼 불쑥 찾아온다

by 시니어더크


밤새 천둥이 요란했다.

창밖으로는 비가 거세게 내렸다가, 이내 잦아들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다시 세찬 소리와 함께 땅을 울리는 천둥이 몰아쳤다.

그 소리에 쿠키와 나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겁먹은 얼굴로 내 품을 향해 다가왔다.

특히 쿠키는 짧은 꼬리를 사타구니 밑으로 꼭꼭 감추고, 몸을 잔뜩 웅크린다.

늘 그렇듯, 그 작고 귀여운 강아지는 무서움 앞에서 더 작아진다.


문득 떠오른다.

아내도 천둥과 번개를 유난히 무서워했다.

번개가 번쩍하고 하늘을 가를 때면 팔을 움켜쥐고 눈을 질끈 감던 모습.

놀란 표정을 보면 장난기가 발동해 "그렇게 무서워서야~" 하고 놀리면

그녀는 머리를 내 어깨에 묻으며 "진짜 무섭다니까…" 하곤 했다.

그때의 따뜻한 체온, 그 조용한 떨림이 오늘따라 유독 그립다.



쿠키는 우리가 문정동 애견 분양센터에서 직접 데려온 아이였다.

원래는 여자 강아지를 데려오려 했지만, 마음에 드는 아이가 없었다.

짖어대는 녀석은 아파트 생활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하고 돌아서려던 찰나,

한쪽 구석 철장 안에서 조용히 우리를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유난히 얼굴만 깨끗하게 이발된, 뽀얀 털의 푸들 한 마리.

이미 꼬리는 잘려 있었지만, 그 아이의 눈빛이 유독 맑고 고요했다.

아내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그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렇게 '쿠키'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쿠키가 우리 집에 온 건 단순한 입양이 아니었다.

아내는 두 번째 골수이식 후 건강을 되찾고 있었고,

정서적으로 회복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퇴원하며 교수님께 "강아지를 키워도 될까요?"라고 묻자

교수님은 "정서적 안정감을 생각하면 키우는 게 좋습니다" 라며

기꺼이 허락해 주셨다.

그 말 한마디로 우리는 쿠키를 데려오게 되었고,

그 아이는 아내의 웃음을 되찾게 해 준 존재가 되었다.


쿠키가 벌써 일곱 살,

쿠키는 사람을 참 좋아했다.

낯선 사람도, 이웃도, 산책길의 아이들도 다 좋아했다.

무엇보다 아내를 많이 따랐다.

아내도 쿠키를 볼 때마다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고,

그 웃음은 병상 위에서도 빛이 났다.



오늘 새벽 4시까지 밤새 뜬 눈으로

책상 앞에 앉았지만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았다.

늘 밤마다 아내에게 편지를 쓰듯, 하루를 정리하고

진심을 꺼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오늘은 아무 말도 꺼내기가 힘들었다.

글도 막히고, 댓글도 쓰기 어려웠다.

물길이 말라버린 것처럼 마음이 메마른 느낌이었다.

겨우 5시가 다돼서야 이 글 하나 건졌다.


요즘은 브런치북에 연재할 글을 준비하고 있다.

프롤로그는 올려두었고, 이제 곧 본문을 써야 하는데

막상 글 앞에 서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출간 작가들이 빼곡한 이곳에서

어느 날은 부끄럽기도 하고, 어느 날은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과연 내가 여기 있어도 될까,

지금껏 쓴 글들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다 삭제하고 새로 쓰면 어떨까?

반복되는 고민 속에 새로운 하루가 열린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어느 날 불쑥 그리움이 차오른 이들에게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면,

이 글이 의미를 잃진 않을 것 같다.


천둥이 치는 밤,

작은 강아지가 꼬리를 감추고 떨 듯

사람도 때론 그 무서움 앞에서 움츠러든다.

하지만 그 떨림을 안아주던 따뜻한 기억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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