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마저 아름다움으로 남긴 사람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이 있다.
그녀는 생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꼼꼼히 담아두었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때로는 메모처럼 남긴 말들까지.
누군가 보고 싶어질 때면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정갈하게 정리해 두고, 그렇게 조용히 떠나갔다.
얼마 전, 아들이 새로 핸드폰을 장만하면서 받은 혜택 하나.
넷플릭스처럼 영화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디즈니 앱'을
4개월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이었다.
그 덕분에 내 태블릿에도 그 앱이 설치되었고,
나는 자주 보지는 않지만,
혼자 있는 밤에 문득 마음에 여백이 생길 때면
영화를 틀어놓고 시간을 보내곤 한다.
요즘은 기업들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마케팅을 펼친다.
할인, 증정, 체험, 이벤트, 그리고 프로모션.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것 하나가 구매를 결정짓는 큰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그 작은 혜택 하나가 소비자의 발길을 이끌고,
그 선택이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 덕분에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은 <우리 영화>.
디즈니 앱에 올라온 따끈따끈한 신작이라
2회까지만 공개되어 있었는데,
처음엔 단순히 영화인 줄 알고 클릭했던 것이다.
하지만 금세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결국 두 편을 단숨에 모두 보아버렸다.
그 드라마는 SBS 금토드라마로
매주 밤 9시 50분에 방송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집엔 텔레비전이 없다.
아내가 있을 때에도 그랬다.
그 시간엔 보통 책을 읽거나,
식탁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각자 다른 일을 하며 조용히 지내곤 했다.
가끔 TV가 생각날 때면
태블릿으로 영화를 찾아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각자의 태블릿을 가지고 있었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며
조용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영화>는
한 번의 기회밖에 남지 않은 영화감독과
시한부 선고를 받은 배우 지망생의 이야기다.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한 편의 영화 속 주인공으로 불살라내며 살아간다.
끝을 앞두고도 온 힘을 다해 아름다움을 남기는 사람들.
그 모습에서 나는 아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여주인공의 얼굴에 아내의 모습이 겹쳐 보여 두려웠다.
아내 역시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견뎌냈다.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썼고,
두 눈은 입처럼 환하게 웃어주곤 했다.
그 표정은 지금도 선명하게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사실 나는 가능하면 슬픈 이야기는 피하려 한다.
슬픔에 잠기다 보면,
그녀가 더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만큼은 도중에 멈출 수 없었다.
여주인공 ‘이다음’이 내뱉는 말들은
마치 아내가 내게 남긴 말처럼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는 요즘도,
그녀가 남긴 기록들을 조용히 꺼내어 본다.
사진첩, 영상들, 짧은 메모들.
"보고 싶으면 언제든 꺼내 보라"라고
속삭이듯 남겨놓고 떠난 그녀.
그녀는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살날이 많을 것 같니?
영원히 살 것 같아?
일흔, 여든, 아흔까지 건강하게 살 거 같냐고?
이~ 바보들아~!"
그 말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를 하루,
그 하루를 사랑하고,
더 소중히 여기라는 다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