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늘 같은 길을 걷는다.
"이 작은 생명이, 오늘도 그 사람을 찾아 걷는다."
어제는 종일 비가 퍼부었다.
하늘이 무너진 듯 장대비가 쏟아졌고, 관청에서 보내는 안전 안내 문자가 핸드폰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그런 날엔 누구든 조용히 안으로만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하물며 그 작은 존재도 하루 종일 소파 한 구석에 웅크려 있었다.
오늘은 거짓말처럼 하늘이 그쳤다.
가랑비가 잠시 흩날리긴 했지만 이내 자취를 감췄고, 흐린 하늘 아래 공기는 다소 서늘했다.
현관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은 어김없다.
산책을 나가자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신호.
줄을 꺼내 들기 무섭게 문 앞에서 몸을 들썩이며 나갈 채비를 한다.
그 작은 생명에게 산책은 단순한 바깥나들이가 아니다.
하루의 감정을 푸는 시간이고,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다.
며칠째 눈에 띄게 달라진 점 하나가 있었다.
소변은 여느 때처럼 패드 위를 적시지만, 대변은 바깥에 나가야만 해결하는 듯했다.
어제처럼 비바람이 몰아치던 날엔 산책을 생략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날은 끝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하루에 한 번쯤은 속을 비워야 마음이 가벼워지는 법인데.
덕계공원까지 걷는 길은 익숙하다.
그러나 오늘도 어김없이 그 생명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걸어간다.
줄을 반대쪽으로 당기면 멈춰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고집스럽지만 그 고집이 왠지 미워지지 않는다.
어쩌면, 그 길 끝 어딘가에 기다림 같은 게 있을 것만 같아서다.
왜 하필 덕계공원일까.
한동안 머릿속으로 그 이유를 더듬었다.
첫째는 그곳이 가장 익숙한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걷던 이의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는 길.
따뜻한 눈빛과 손길, 발걸음이 느껴졌던 시간의 자취가 배어 있는 곳.
그 사람의 부재를 견디는 방식이, 어쩌면 그 길을 다시 걷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그곳에서 종종 동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체온과 향기를 가진 존재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마음속에 쌓인 하루의 외로움을 털어내고 돌아올 수 있으니까.
그 둘 중 어느 쪽이든, 그 작은 생명이 바라는 건 결국 '만남'일 것이다.
말을 할 수 없을 뿐, 그리움만은 누구보다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덕계공원에 도착하자, 야외무대에는 포장 부스들이 설치돼 있었다.
"양주예술제."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고, 리허설 음악이 잔디밭 위로 울려 퍼졌다.
지방에 살면서 이런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던 여유.
며칠 전 충북 음성에서는 마침 '품바축제'가 한창이어서 잠시 구경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이런 마을 축제를 보면 유독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만약 지금도 곁에 있었다면, 분명 오늘도 함께 손을 잡고 걷고 있었을 것이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함께 웃었을 그 사람.
그래서일까.
오늘 나는 무대 앞을 서성이다가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 사람 없이 걷는 축제의 풍경은 왠지 반쪽 같았다.
함께였기에 즐거웠고, 함께였기에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자꾸만 덧칠되기만 했다.
작은 생명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 어김없이 소파 위에 자리를 잡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눈빛으로 조용히 눈을 감고, 그 자리를 지킨다.
나는 그런 모습을 주방 식탁에서 바라본다.
식탁 위의 커피잔, 정리된 식기, 창밖의 바람.
그 모든 일상 속에 아직도 당신이 있다.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길, 그 존재가 전해준 건 뚜렷한 한 가지였다.
그리움은 발끝에서 시작되어, 결국 마음으로 돌아온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