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회복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8월의 첫날, 그녀와 내가 건너오던 하루

by 시니어더크


7월의 마지막 장을 떼어내던 순간, 달력이 얇아지며 바스락하고 울리는 소리가 마치 계절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또 한 장 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처럼 들렸다. 그 작은 움직임 속에는 지난 몇 달 동안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이 층층이 겹쳐 있었고, 병원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며 느꼈던 냉기와 두려움,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실려 있던 조심스러운 안도감까지 모두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종이 한 장을 넘기는 그 단순한 행위가 어쩌면 새로운 삶의 문턱에 다시 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날의 달력은 유난히도 다른 결을 품고 있었다.


오랜 치료와 수술, 끝없는 검사와 두려움 속에서 그녀는 몸을 가누기조차 힘겨울 만큼 연약해져 있었다. 그러나 병실의 차갑고 낯선 공기 대신, 집안의 익숙한 냄새와 작은 창문으로 스며드는 부드러운 빛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던 그 순간, 나는 몸보다 마음이 먼저 회복의 방향으로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있음을 느꼈다. 집이라는 공간은 아픔의 깊이를 그대로 품어내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힘은 회복이라는 말이 아무리 멀게 느껴지더라도 결국 첫 발을 내딛게 만드는 조용한 위로가 되었다.


병원은 늘 경계와 긴장으로 가득한 곳이었고, 인간의 나약함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잔인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집은 달랐다. 이 집은 그녀의 숨결이 놓일 자리가 있었고, 내가 다시 마음을 붙일 작은 여백이 있었다. 그녀가 문틈으로 스며드는 공기를 깊고 조심스럽게 들이마시던 그 미세한 순간 속에서 나는 확신했다. 비록 더디더라도, 우리 삶은 다시 한번 시작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집이라는 작은 공간에 내려앉은 조용한 숨결에서부터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아들은 지방의 예술대학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등록금과 생활비는 물론이고, 오래 지낸 좁은 원룸을 정리하고 더 나은 공간을 찾아야 하는 일까지 겹치며 신경 써야 할 일이 한꺼번에 밀려 있었다. 예술대학이라는 특성상 현실적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늘 아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어떤 방식으로든 뒷받침할 길을 찾고 있었다. 젊은 날의 꿈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과, 그 꿈이 현실의 무게에 눌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다음 주에 아들을 만나러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녀도 그 길에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이 내게는 한편으로 뭉클한 고마움이었지만,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휴가철 차들이 끝없이 도로에 갇혀 몇 시간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을 수없이 경험해 온 터라, 약해진 그녀의 몸이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더 앞섰다. 마음은 언제나 앞질러 가지만 몸이 그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지난 시간 속에서 조용하고도 처절하게 배운 바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들의 기쁨과 그녀의 의지, 그리고 그녀의 몸 상태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8월의 첫 아침, 우리는 회복을 향해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내딛자는 마음으로 산책을 나섰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논둑길을 따라 걷다 보니, 달맞이꽃이 노랗게 몸을 열어 아침 햇빛을 받아내고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가 빽빽하게 들어선 지역이지만, 그 시절의 그곳은 넓은 하늘과 논바람의 냄새가 뒤섞인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을 여전히 품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꽃을 하나둘 따기 시작했다. 언젠가 우리 몸이 더 약해지는 날이 오면 이 꽃이 작은 힘이라도 되어줄지 모른다는, 어쩌면 단순하고 순진한 바람이었지만, 꽃을 따는 그 순간만큼은 오래 묵혀둔 희망의 조각을 찾는 일처럼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다.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 조용히 나를 바라보다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고개를 들어 풍경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오랜 항암과 수술로 지친 몸이 무거웠을 텐데도, 논길을 스치는 바람을 맞는 그녀의 표정에는 참 오랜만에 생기가 어렸다. 나는 꽃을 따다가도 몇 번이고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결에 살짝 흔들리는 달맞이꽃보다도, 햇빛을 머금은 그녀의 얼굴이 더 환하게 빛나는 순간이었다.


달맞이꽃의 노란 빛깔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선명했다. 손끝으로 꽃잎을 건드리면 아주 미세한 바람에도 얇게 떨리며 은근한 향기를 흘려보냈고, 우리는 그 향을 맡아보고, 꽃잎을 살짝 씹어 보기도 하며 천천히 논둑길을 걸었다. 어쩌면 이 조그만 꽃 한 송이도 우리에게는 희미한 희망의 조각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꽃을 따고 향을 음미하는 동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고, 한여름의 햇빛은 점점 더 강렬하게 논길을 덮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나는 양산의 각도를 수없이 바꿔가며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가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힘들다는 말은 끝내하지 않았다. 대신 "꽃이 참 예쁘다"는 말만 조용히 반복했다. 그 말이 오히려 내 마음을 더 조여왔다. 그녀는 몸이 힘들수록 더 밝은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고통을 숨기려고 할 때면 눈빛이 더 또렷해졌고, 미소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나는 그 표정을 수없이 보아왔기에, 그녀가 내게 전하려는 말보다 숨기고 있는 고통이 더 크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 샤워기의 차가운 물줄기가 온몸을 감싸며 여름의 열기와 피로를 한꺼번에 씻어냈다. 그녀도 "살 것 같다"라고 짧게 말하며 환하게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아침 내내 견뎌낸 무더위가 모두 물속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뒤늦은 아침 식탁 앞에 마주 앉아 따스한 밥을 나누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고, 처남이 흔한 인사처럼 커피 한 잔 하러 왔다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무심한 듯 밝은 웃음은 집 안 공기에 작은 바람처럼 스며들었고, 짧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숨을 고르며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병원에서의 긴장과 고통 속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표정이었기에, 이런 소소한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문득 깨닫게 되었다. 말없이 건네지는 그 평온함이 그동안 잃고 지냈던 일상의 조각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 마음 한편이 뜨겁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 평온함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잠시 후 그녀가 어깨가 아프다고, 손끝이 저리다고 말했다. 이미 진통제 패치를 붙이고 있었지만 통증은 깊은 곳에서 서서히 차오르는 듯했고, 결국 마약성 진통제인 아이알코돈을 여러 알 삼킬 수밖에 없었다. 약 하나로도 버티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녀는 짧은 시간에 여섯 알을 견뎌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가슴은 조여왔다. 작은 손에 알약을 쥐고, 물을 한 모금 삼킨 뒤 천천히 숨을 고르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천천히 흘러가듯 펼쳐졌고, 그 장면들은 모두 나에게 오래 남아 묵직한 고통처럼 가라앉았다. 그녀가 삼킨 것이 약인지, 아니면 고통을 버티겠다는 결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그 순간은 조용하고도 절박한 시간이었다.


처남은 돌아가기 전 그녀의 머리 위에 조용히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다. 기도를 받을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그녀는 자주 말하곤 했다. 몸의 통증이 잠시라도 가라앉는 순간이면, 그 빈틈으로 마치 따뜻한 숨결 같은 평온이 스며드는 듯했다. 잠잠해진 통증을 확인하듯 그녀가 천천히 숨을 고르자, 우리는 생수와 설탕을 사러 정우마트로 향했다. 마침 딸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함께 장보기 짐을 들었다. 아무런 말 없이도 자연스럽게 손을 거들어주는 이 작은 도움들이, 병으로 매일 흔들리던 우리 가족에게는 생각보다 더 큰 힘이 되어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달맞이꽃을 씻고 물기를 빼 정성스레 통에 담았다. 설탕을 같은 양으로 부은 뒤 발효가 잘되도록 입구를 살짝 잠그며, 통 너머로 꽃이 설탕 속에 천천히 잠기고 모양을 잃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장면은 마치 시간을 한 겹 한 겹 발효시키는 일처럼 느껴졌다. 꽃이 효소로 바뀌고, 그 효소가 다시 몸을 살리는 약이 되듯이, 우리의 회복도 그렇게 느리고 더디지만 분명한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희망이 조용히 마음속에서 일었다. 달맞이꽃이 설탕 속에서 천천히 변해가듯 우리 역시 어딘가에서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날은 묵묵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저녁에는 아들이 군 제대할 때 가져온 와인을 꺼냈다. 나는 잔에 담긴 붉은빛을 바라보다 한 모금 삼켰고, 그녀는 오래 망설이다가 입술만 살짝 적셨다. 병원에서 지내야 했던 지난 시간은 우리에게 와인 한 잔조차도 쉽게 마실 수 없는 낯선 의미를 남겼고, 그 얇은 금기와 조심스러움은 우리의 일상 구석구석에 스며 있었다. 그녀가 다시 편안한 밤, 편안한 자리에서 와인을 한 모금 기울일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찾아오기를, 그 작은 소망이 잔을 들어 올리는 내 손끝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텔레비전에서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장미 선수가 권총사격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밝은 뉴스가 들려오자, 오랜만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잊고 지낸 기쁨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처남 교회 교인들과 함께 화천으로 야유회를 가기로 되어 있었다. 스무 명 남짓한 작은 공동체였지만 서로를 살피는 따뜻함이 있어, 그녀도 이 소풍 같은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 한편이 쉽사리 놓이지 않았다. 통증이 언제, 어떤 모양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몸을 지니고 먼 길을 나선다는 것은 항상 조심스러운 일이었고, 그녀의 기대를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과 혹시라도 무리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 겹쳐 조용한 불안으로 남아 있었다.


이른 아침, 우리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교회로 향했다. 사창리 계곡으로 가는 길은 익숙하지 않았고, 백운산 고갯길에서는 잠시 화장실에 들른 사이 앞차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지도도 없이 낯선 길을 더듬어 가야 했던 우리는 잠시 불안에 휩싸였고, 길을 잃은 채 헤매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는 지친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다. 그 말투 속에는 피로와 통증이 고스란히 숨어 있었기에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수 있었다. 그날 하루만큼은 무엇보다 그녀에게 좋은 기억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내내 목을 죄었다.


겨우 도착한 계곡에서는 해물탕이 끓어오르는 냄새가 아침 공기에 실려 퍼지고 있었다. 계곡물의 흐르는 소리,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차가운 물에 손끝을 적시는 교인들의 웃음이 뒤섞이며 작은 축복처럼 느껴지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녀도 마음이 조금은 풀렸는지 해물탕 그릇을 조용히 비우며 오랜만에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점심에는 돼지갈비와 삼겹살이 구워졌고, 오후에는 갓 찐 옥수수와 감자가 연달아한 상에 올랐다. 계곡 위로 펼쳐진 하늘은 한없이 맑았고, 햇빛은 따갑지 않을 만큼만 따뜻했다. 잠시 동안 우리는 아픔으로 가득했던 시간을 벗어나, 아주 작은 휴식의 섬 위에 머무는 듯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의 몸은 무너지듯 힘을 잃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 틈에서 긴장을 놓지 못한 탓에 에너지가 바닥나 있었고, 몸은 잔뜩 경직된 채 통증을 신호처럼 보내기 시작했다. 결국 밤이 깊어질수록 양팔은 견딜 수 없이 아파졌고 손은 저릿하게 차올랐다. 그녀는 진통제를 아홉 알이나 삼켜야 했고, 나는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회복은 이렇게 작은 고비들을 넘고 또 넘어가야만 조금씩 나아가는 길이었다. 회복은 단숨에 찾아오는 기적이 아니라, 이렇게 버티고 견디며 지나가는 느리고 어려운 과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금 깨닫고 있었다.


그녀가 밤새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그날의 기록을 남겼다. 조용한 방 안에는 그녀의 숨결이 잔잔히 흐르고, 창밖의 어둠은 더디게 밀려가며 새벽의 첫 빛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복의 길은 언제나 그렇듯 더디고 때로는 잔인했지만, 우리는 서로의 손을 놓지 않은 채 그 하루를 끝까지 건너왔다. 그렇게 견뎌낸 하루가 쌓여 또 하나의 시간이 되었고, 그 시간들은 여전히 우리를 붙잡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 기록을 다시 펼쳐 보게 된다면, 그날의 고통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결국 서로를 지탱하며 버텨낸 마음일 것이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마음으로 서로를 감싸 안았던 그 순간들은, 아픔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을 잃지 않던 작은 기적임을 그때는 더욱 분명히 알게 되리라. 그리고 나는 아마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낸 하루하루가 얼마나 위태로우면서도 얼마나 깊은 사랑의 형태였는지를.


하루의 문을 닫으며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우리가 건너온 그 시간들 속에는 온기와 두려움, 그리고 희망이 섞여 묘한 결을 이루고 있었고, 그것은 어쩌면 우리 둘에게만 허락된 한 조각의 은총 같은 것이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기록을 천천히 덮으며, 이 하루가 비록 고단했을지라도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


이제 남은 일은 내일을 향해 아주 작은 걸음이라도 다시 내딛는 것이다. 그 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은근한 믿음일 것이다. 그 믿음 하나가, 어둠을 지나 새벽으로 스며드는 빛처럼, 우리의 발걸음을 또다시 부드럽게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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