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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한 줄기가 내려앉던 날

회복을 향해 조용히 걸어가던 시간

by 시니어더크


2012년 7월 26일.
그날 아침 공기는 유난히도 투명했다. 한여름 햇살 특유의 짙고 단단한 빛이 창문 너머로 스며들어 방 안에 잔잔히 번져 있었다. 그 빛은 마치 멀리 떠났던 희망이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듯, 손가락 끝으로 내 어깨를 살며시 건드리는 것만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듯했고, 나는 무언가 사라져 가던 마음의 한 귀퉁이가 다시 제자리를 찾아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은 아내가 조혈모세포 이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꼭 보름째 되는 날이었다.


병원이라는 커다란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바람을 막아내며 버티던 날들이 지나, 다시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우리는 완전히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마치 얇고 투명한 얼음 위를 천천히, 발끝으로 조심스레 디디며 나아가는 사람들처럼 불안정했고, 그 위에서 작은 숨소리 하나에도 금이 갈 것만 같은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흙 속에서 싹이 오르는 듯한 조심스러운 바람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정말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미약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희망이었다.


아내의 몸은 아직 상처투성이였다. 항암제가 스쳐 지나간 자리마다 보이지 않는 흔적들이 남아 있었고, 이식 과정이 남긴 고통은 뼛속 깊은 곳에서 서서히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상처들은 단지 몸의 상처만이 아니었다. 마음의 한쪽도 아물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햇살처럼 한 줄기 따뜻함만 있어도, 우리는 다시 하루를 살아낼 이유가 충분했다.


나는 매일같이 그녀의 몸을 바라보며 아주 작은 변화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가 흘려온 시간만큼, 그녀의 몸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길 바랐다. 언젠가는 이 상처들이 시간의 온기에 녹아 서서히 아물어가겠지. 그런 믿음을 조용히 가슴속에 새기며, 우리는 또 하나의 하루를 시작했다.


그러나 통증은 여전히 우리의 삶 한가운데를 흔들어놓는 단단한 벽처럼 존재했다. 방심하는 순간 파도처럼 밀려오는 통증은 아내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잠식해 버렸다. 마약성 진통제와 패치는 그녀가 하루를 버티기 위해 붙드는 외줄 같은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 약들의 부작용이 다른 통증을 몰고 오기도 했다. 통증이 누그러질수록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고통이 번져 나오는 듯한 느낌. 그 복잡한 변주 속에서, 우리는 조용한 한숨만 깊게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포기라는 단어는 우리의 입술에 닿은 적이 없었다.
정기 외래가 있는 날이면 아내는 아픈 몸을 이끌고 묵묵히 병원을 향했고, 나는 그녀 옆에서 변화를 기록하듯 하루를 정성스럽게 살아냈다.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말자'는 다짐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서로를 붙드는 힘줄 같았고, 흔들리는 삶을 다시 세우는 기둥과도 같았다.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의 작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애썼다. 병원 복도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집에서 약을 챙기고 누웠을 때의 어두운 방 안에서도, 우리는 조용히 서로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오늘도 잘 버텼어요."


병원에 도착하면 익숙한 순서대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혈액검사를 위해 두 시간 일찍 채혈을 하고, 소독약 냄새가 가득한 복도를 지나 엑스레이실로 향했다. 오래된 기계가 켜질 때 들리는 낮고 둔탁한 진동음, 금속의 차가운 감촉, 하얀 벽면에 비치는 희미한 그림자들… 그 모든 풍경이 어느새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낯설고 무서웠던 장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를 감싸는 듯했고, 그 기계음마저도 "오늘도 잘 견뎌봅시다" 하고 등을 토닥이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내의 가슴에는 히크만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교수님의 진료가 끝나면 그 관을 반드시 소독해야 했다. 나는 늘 그 과정을 지켜보며 조심스레 숨을 삼켰다. 작은 움직임에도 통증이 번질까 봐, 혹시라도 무언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온몸이 긴장되곤 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나를 아는 듯, 아무 말 없이 부드러운 미소 하나로 나를 진정시켰다. 말보다 더 깊은 위로를 건네는 미소였다.


진료실 앞 복도는 언제나 긴 대기 의자가 늘어서 있었고, 우리는 나란히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소독약 냄새, 간호사들의 단단한 걸음, 반복되는 안내 방송… 병원만의 공기가 혈관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때 복도 끝에서 낯익은 모습이 다가왔다. 예전에 같은 병실을 썼던 분이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말없이 웃음이 먼저 번졌다. 긴 시간 동안 같은 전쟁을 견뎌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깊은 위로를 공유하고 있었다.


"많이 좋아지셨나요?"
짧은 질문이었지만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응원이 겹겹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고단한 유리창 너머로 작은 바람 한 줄기가 스며드는 것처럼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 낯선 여정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그때 병원 창을 통해 들어오던 햇살이 아내의 손등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저 평범한 빛 한 줄기였지만, 그 빛은 이상하게도 이 차갑고 긴 싸움 속에도 온기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신호처럼 보였다.


진료실 문이 열려 들어가자 교수님은 아내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고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주일은 훨씬 좋아 보이네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은 오랫동안 누적되어 있던 무게를 단숨에 덜어내는 듯했다. 혈액수치는 지난주보다 안정적이었고, 늘 위험 수치를 넘나들던 칼륨도 마침내 안정권에 도달했다. 교수님이 차트를 넘기며 말했다. "칼륨 약은 당분간 중단해도 되겠습니다." 그 순간 아내의 얼굴이 아주 미세하게 풀어졌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숨이 가볍게 올라오는 듯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오렌지 주스는 먹어도 될까요?" 몇 달 동안 혀끝에서만 맴돌던 그 질문. 그동안 절대 마시면 안 된다고 했던 바로 그것. 교수님이 "네, 조금씩은 괜찮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눈동자에 작은 빛이 번져 올랐다. 그 빛은 단순히 한 잔의 주스 때문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닫혀 있던 '일상으로 돌아가는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는 신호였다.


병원을 나서는 길, 아내가 내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 갈비 먹고 갈까요?"
그 말속에는 오랜만에 입술 끝에서 흔들리는 작은 여유, 아주 얇지만 분명한 희망의 숨결이 담겨 있었다. 병원 문을 나설 때마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움이 잠시나마 가볍게 풀리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수락산 근처의 돼지갈빗집으로 향했다. 걱정이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소갈비를 먹고 싶은 마음이 스쳤지만, 주머니 사정도 고려해야 했고, 무엇보다 아내가 돼지갈비를 더 좋아했다.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늘은 그냥 아내가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되뇌었다.


식탁에 마주 앉자 아내는 냉면 국물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며 조심스레 혀끝을 굴려보았다. 항암 후유증으로 무뎌진 미각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온전히 맛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작은 아쉬움이었고, 나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력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배부르네요."
크지 않은 웃음이었지만, 그날의 나에게는 하루를 환하게 밝혀주는 선물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근처 제과점에 들러 롤케이크 두 개를 샀다. 양주에 있는 친구에게 잠시 맡겨둔 강아지 해피를 보기 위해서였다. 치료 일정이 이어지는 동안 집에서 해피를 돌볼 수 없어 맡겨둔 것이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해피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케이크 상자를 들고 친구 집으로 향하는 길은 오랜만에 소중한 얼굴을 다시 만나는 듯한 설렘이 묻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해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아내에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무릎 위로 올라앉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작은 몸짓이 아내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로 번져갔다. 아내의 얼굴에는 병원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부드러운 웃음이 피어올랐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 작은 웃음의 조각 하나를 지켜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라고.


그러나 기쁨은 언제나 그리움과 함께 찾아오는 법이었다. 해피를 당장 데려오고 싶었지만, 아직 아내의 체력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통원 치료도 계속되고 있었다. 해피의 머리를 쓰다듬던 아내의 손끝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도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아내는 해피를 향해, 그리고 어쩌면 우리 자신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그 말은 약속이자 위로였다.
해가 저물어가는 길 위에서,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다시 확인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평온한 하루를 믿으며,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회복을 향한 길 위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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