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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하늘 아래 당신과의 마지막 동행

당신과의 마지막 길

by 시니어더크

2024.11.16(토) 맑음


정숙 씨,

어제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습니다.
깊은 슬픔이 밀려왔지만, 이상하게도 제 마음은 조용히 진정되었습니다.
당신의 평화롭고 고요한 얼굴이 그 어떤 위로보다 강하게 저를 감싸주었기 때문일 겁니다.
아들과 딸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떠난 날부터 오늘까지, 저는 숨을 쉴 때마다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짧은 순간조차 당신의 부재를 잊을 수 없었지만,
어제 당신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그 깊은 평온함이 제 마음에 작은 위안을 안겨주었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 5시 반, 교회에서 목사님과 사모님, 장로님을 비롯한 성도님들이 오셔서
당신을 위한 마지막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 당신의 사진이 걸린 장례식장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 찬송가 소리는

당신의 삶을 감싸 안는 축복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 가족도 함께 찬양하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였기에,
순간순간이 더 깊이 새겨졌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우리는 성남의 장례문화사업소로 향했습니다.
1시간 40분가량의 여정이었지만, 저는 그 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는 내내 차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과 나무들,
그 모든 풍경이 마치 당신과의 마지막 동행을 위해 준비된 듯했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우리는 화장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조문객들은 식사와 커피로 허기를 달랬지만,
저는 조용히 당신 곁에 머물렀습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8시 25분.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이동했습니다.
당신을 선두에 두고 가족과 친지들이 조용히 뒤를 따랐습니다.


화장장은 제게 너무도 두려운 장소였습니다.
당신의 사랑스럽고 따뜻한 육신이 한 줌의 재로 변하게 되는 곳이었으니까요.
15번이라 쓰여있는 곳에서 직원이 “곧 시작됩니다”라고 말했을 때,
제 마음속 깊은 곳이 조용히 무너졌습니다.
요즘은 유족을 위해 검은 막을 설치해
과정을 직접 보지 않도록 배려한다고 하더군요.
그 말이 오히려 현실을 더 실감 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육신이 사라지는 동안, 저는 이상하게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토록 당신을 사랑하는 제가 이 순간에 왜 울지 않는 걸까,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제 당신의 평온한 얼굴을 보고 난 뒤부터,
제 마음은 묘하게 차분하고 안정되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당신의 육신은 하얀 유골로 변했습니다.
저는 가장 아름다운 봉안함을 골라
당신의 분신을 조심스레 모셨습니다.
딸은 당신의 사진을, 아들은 그 분신을 소중히 안고 장지로 향했습니다.


장지는 경춘공원에 있는 당신의 부모님, 오빠, 올케가 계신 곳으로 정했습니다.
따뜻한 햇살이 남쪽에서 가득 내리쬐는, 전망 좋은 자리였습니다.
예전부터 당신은 그곳을 좋아했지요.
이제는 사랑하는 친정 가족과 함께 있으니 외롭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조용히 예배를 드리며 당신을 추모했습니다.


당신이 떠난 날, 날씨는 놀라울 만큼 맑고 따뜻했습니다.
조문객들은 하나같이 “하늘도 돕는 날씨”라고 말했습니다.
주말이 오기 전에 모든 절차를 마칠 수 있도록 준비된 일정과
맑은 날씨, 그리고 조용한 예배의 시간들.
이 모든 것이 당신이 우리를 위해 마지막까지 배려한 것 같아
마음 깊이 감사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천국에서 평안히 쉬고 계시겠지요.
당신의 육신은 이 땅에 없지만,
당신의 사랑과 기억은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물 것입니다.


사랑하는 정숙 씨,
당신은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
그리고 제 마음 깊은 곳에 머물러 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천국에서 평안히 쉬세요.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고,
영원히 그리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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