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흔적 속에서
2024.11.17(일) 맑음
사랑하는 정숙 씨에게
어제 당신과 마지막으로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부엌 식탁 위에 지난번 먹던 저녁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당신을 급히 병원으로 옮기느라 온 가족이 정리할 겨를조차 없었지요.
그러나 그 순간엔 다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지키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으니까요.
이 세상에서 생사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집으로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당신의 흔적들로 가득했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그릇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하나하나가 당신의 존재를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남긴 작은 흔적들이 갑자기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이 여기 있었다는 증거였고,
우리 곁에서 항상 움직이며 우리를 위해 애쓰던 당신의 사랑이 깃든 흔적이었으니까요.
밤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눈을 감아도 자꾸만 당신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렇게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고,
오늘 아침은 늦게야 일어났습니다.
집안일을 하나씩 처리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개면서도
한순간도 당신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없는 집안은 너무나 조용하고 텅 빈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공간 자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듯합니다.
설거지를 할 때도, 먼지를 닦을 때도,
빨래를 개는 순간에도 당신이 남긴 따뜻한 웃음과 온기가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당신은 늘 제 곁에서 웃음을 주었고,
제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였으니까요.
저녁 늦게 빨래를 접다 보니
문득 우리가 함께 여행 갔던 스페인의 영상을 돌려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활짝 웃으며 거리를 걷던 당신의 모습,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행복해하던 당신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했습니다.
화면 속 당신은 여전히 활기차고 아름다웠는데,
이제는 그 웃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울 때는
당신의 사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집 안 어디를 봐도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정작 당신은 이곳에 없다는 현실이 여전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삼오제를 드리는 날이니까요.
당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당신을 위해 기도하며,
당신이 그곳에서 편안히 쉬고 있기를 온 가족이 바랄 겁니다.
더 이상 아픔도 고통도 없는 곳에서 평안히 지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주일이면 당신과 함께 나란히 앉아
영상예배를 드리곤 했는데,
오늘은 혼자 덩그러니 앉아 예배를 드리니 너무 허전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온전히 기도드렸습니다.
당신이 있는 곳에서 아픔도 눈물도 없이
영원히 평안하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정숙 씨, 당신이 없는 이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며
당신과의 추억을 되새기고,
당신을 향한 제 마음을 더욱 깊이 느낍니다.
당신은 항상 제 삶의 중심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이 웃는 꿈을 꾸게 된다면,
그날은 마음이 조금 따뜻해질 것 같습니다.
당신은 제게 늘 따스한 사람이었고,
살아 있는 동안 제게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 사랑, 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영원히 당신의 동반자로 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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