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공원에서의 소중한 추억
2024.11.21(목) 맑음
정숙씨,
오늘은 덕계공원을 한 바퀴 돌고 왔습니다. 가을이 깊어가며 단풍이 화려하게 물들었지만, 공원 곳곳엔 낙엽이 뒹굴고 겨울을 준비하느라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가네요.
당신과 함께 투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자주 들렀던 이 공원, 참으로 소박하지만 따뜻한 추억이 담긴 곳입니다. 공원의 낙엽을 보며 문득 생각이 듭니다... 이별이란 정말 우리 곁에 있는 모든 것들과의 작별일까요?
이곳에서 우리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원 한쪽의 작은 노천 무대에서 노래잔치가 열리면 우리 집까지 들려오던 노래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나훈아다!” “조영남이네!” 당신은 늘 그렇게 노래를 듣고 맞히며 웃곤 했습니다. 설운도가 공연을 왔을 때는 더욱 신나셨죠.
당신의 건강이 호전되어 스포츠댄스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덕계공원의 무대에 서서 화장을 짙게 하고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춤을 추던 당신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요. 당신의 환한 미소는 주변을 밝히며 저에게도 큰 행복을 주었습니다.
요즘은 쿠키와 함께 이 공원을 찾습니다. 쿠키는 당신이 없는 시간을 채워주는 소중한 친구입니다. 밖에 나가면 쿠키는 마냥 신나서 뛰어다니지만,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 채입니다. 저도 아직 당신이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당신의 빈자리를 이해하려면 저와 쿠키 모두에게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당신이 아끼던 발코니의 화분들을 돌보며, 날이 추워지니 화분들을 거실로 옮겨 물을 주고 흙을 돋우어 줍니다. 봄이 오면 다시 예쁜 꽃을 피우겠지요. 당신과 함께 화분을 돌보며 나누던 이야기가 그립습니다.
발코니 한쪽에서는 여전히 핑크빛 서양란이 피어 있고, 동백나무에는 새빨간 꽃봉오리들이 달려 있습니다. 당신이 있었다면 꽃집에 들러 새로운 화분을 사며 “이 꽃 예쁘지?” 하고 물어봤을 텐데요. 이제 그럴 수가 없어졌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딸과 함께 닭강정을 먹었습니다. 딸이 치과에 다녀오며 아파트 앞에서 사 온 닭강정이 오늘의 저녁식사였습니다. 당신이 있었다면 우리는 함께 웃으며 식사를 했을 텐데요, 이제는 그럴 이유를 찾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립니다.
딸의 치아 교정을 위해 당신이 기꺼이 투자했던 그날, “예쁜 웃음을 만들어주고 싶다”며 오백만 원이 넘는 돈을 내놓았던 당신의 마음은 얼마나 따뜻했는지요. 딸은 지금도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몇 번만 더 치료를 받으면 모든 과정이 끝납니다. 교정이 끝난 딸의 환한 미소를 당신도 꼭 봤으면 좋았을텐데요.
정숙씨, 오늘도 당신과의 추억으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덕계공원에서 시작된 추억들이 하루 종일 제 곁에 머물렀습니다. 당신과의 기억은 너무 소중해서 잊고 싶지 않습니다.
밤이 깊어 가는 이 시간, 당신이 몹시 보고 싶습니다.
오늘 밤 꿈속에서 꼭 만나길 바랍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