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6 그립고 따뜻한 꿈 한 조각

김장 준비, 당신이 곁에 있었더라면

by 시니어더크

2024년 11월 29일(금) 흐림/눈 약간


사랑하는 정숙씨,

어젯밤, 드디어 당신이 꿈에 나왔어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요. 눈을 뜨자마자 한참을 멍하니 누워 있었어요. 꿈속의 당신은 조금 희미했지만, 표정은 평온하고 건강한 모습이었답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는 듯했어요. 마치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했지요. 꿈의 다른 내용은 흐릿하지만, 그 미소 하나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그 모습만으로도 제 마음은 잠시나마 따뜻해졌답니다.


정숙씨, 지난 보름 동안 당신이 너무나 보고 싶었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당신이 없는 일상 속에서 한숨처럼 흘러가는 시간들을 견디고 있었답니다. 그리움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지, 마침내 이렇게 꿈에라도 나타나준 것 같아요. 이제는 더 자주, 그리고 더 또렷하게 당신을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꼭 그렇게 해 주세요.


요즘 저는 나름대로 잘 지내보려 애쓰고 있어요. 하루하루, 주어진 일들을 하나씩 해내며 당신 없이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너무도 사소한 순간에 당신 생각이 불쑥 떠오를 때면 모든 걸 멈추고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게 돼요. 그럴 땐, 아무 말 없이 울음이 차올라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휴대폰 속 당신의 사진과 영상을 들여다보며 그리움을 달래보려 해요. 당신의 웃음소리, 말투, 살짝 짓던 그 미소까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때로는 당신이 바로 곁에 있는 것만 같아서 괜히 뒤를 돌아보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따뜻해지는 마음 한켠엔 더 깊은 그리움이 들어서곤 해요. 이 감정은 아마도 영원히 내 안에 머물겠지요.


오늘은 김장을 준비했어요. 내일 김치를 담가야 하니, 하루 종일 부지런히 움직였답니다. 어젯밤 미리 끓여둔 육수의 건더기를 건져내고 맑은 국물만 따로 담았는데, 맛을 보니 제법 괜찮더라고요. 당신이라면 분명 “정말 맛있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흐뭇하게 웃어주었겠지요.


무채를 썰면서도 당신 생각이 나서 자꾸 손이 멈추곤 했어요. 무 양이 부족한 것 같아 리치마트까지 다녀왔지요. 무 한 단을 더 사 와서 깨끗이 씻고 채를 썬 뒤, 이제야 양이 딱 맞춰졌어요. 예전에는 이런 일을 함께 하곤 했는데, 이젠 나 혼자서 하려니 손도 느려지고 마음도 허전하네요.


거실에서 김치통을 꺼내 하나하나 깨끗이 씻고, 김치냉장고도 닦았어요.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요. 김치가 들어갈 자리를 정리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정돈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양념 재료들을 챙기며 혼자 피식 웃었답니다. 이렇게 많이 섞으면 얼마나 양이 많아질까 싶었지만, 당신처럼 저도 넉넉한 게 좋더라고요. 부족한 것보다는 남아서 나누는 편이 마음이 편하니까요.


늦게 퇴근한 아들이 김장 양념의 간을 보고, 모든 재료를 섞어 마무리해줬어요. 어릴 때부터 당신을 도와 김장을 돕던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자라나 내 옆에서 한몫을 해주니 참 든든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 모습 속에서 당신의 손길이 느껴지기도 했답니다.


저녁 무렵, 배달 온 저린 배추를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어요. 배추 상태가 너무 좋아서, 노란빛이 도는 배추잎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당신이 곁에 있었다면 “참 잘 골랐네” 하며 웃었을 것 같았어요. 아들이 인터넷으로 주문한 건데, 다음에도 꼭 이곳에서 다시 주문해야겠어요.


내일은 언니가 와서 함께 김장을 할 예정이에요. 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당신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겠지요. 만약 당신이 함께 있었다면, 웃음소리가 더 넘쳐났을 거예요.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찡하면서도, 한편으론 위로가 되네요.


김장이 끝나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다시 당신에게 편지로 전할게요. 매일 이렇게 당신에게 소식을 전하는 이 시간이, 제 하루 중 가장 따뜻한 순간이랍니다.


오늘 밤도 평안하게 지내세요.
제 마음 가득 담은 사랑과 그리움을 이 글에 실어 보냅니다.

당신의 영원한 동반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