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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그리움으로 쓴 편지

그리움 너머의 약속

by 시니어더크


2024.12.11 (수) 맑음


나의 사랑 정숙 씨,

오늘은 겨울인데도 공기가 포근해요.

특별히 할 일이 많지 않아서 소소한 집안일을 끝내고 집 앞 은행에 다녀왔습니다.

지난번 국민은행에서 해약한 주택청약예금을 이 은행에 다시 가입했어요.

당장은 청약 계획이 없지만,

혹시 나중에 좋은 기회가 생길지 몰라 준비해 두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부동산 경매가 자꾸 생각이 나요.

경매는 가장 경제적으로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이잖아요.

예전에 당신과 경매를 다녀보자고 얘기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당신이 아프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꿈꿨던 전원주택에서 함께 살 수도 있었을 텐데요.

몸이 점점 나아지지 않으면서 기회를 잃어버린 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어요.



아들도 당신처럼 아파트보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 해요.

이제는 시간이 많으니 경매를 통해 그런 집을 찾아보려고 해요.

그동안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이 우선이었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했지만,

이제는 천천히 준비해서 다시 도전해 보려고요.

급하게 서두르지 않을 거예요. 안전하고 좋은 물건을 찾아서

차분히 진행할 겁니다.

당신이 건강했더라면 전국을 다니며 경매물건도 보고,

여행을 하는 즐거운 시간들이 되었을 텐데요.

늦었지만 이제 그 꿈을 조금씩 이뤄보려 합니다.



정숙 씨,

어젯밤엔 당신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떠오른 기억들이 참 힘들었어요.

행복했던 순간이 아니라, 당신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던 모습들이

자꾸만 떠올랐거든요.

특히 중환자실에서의 당신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양쪽 손이 침대에 묶여 있고, 입에는 산소마스크가,

몸에는 기계와 연결된 수많은 선들이 달려 있던 모습.

머리는 빗지도 못해 엉켜 있고,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얼굴엔 고통만 가득했어요.


당신은 얼마나 힘들었나요?

그 아픔과 외로움을 내가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게 지금도 너무 미안해요.

간병을 했던 나조차도 당신의 고통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주사 한 번 맞는 것도 두렵고 아픈데,

당신은 그 오랜 시간 수많은 주사와 치료, 수술을 견뎌냈으니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당신의 고통을 내가 느낀다 말할 수조차 없어요.

그저 옆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내가 너무 무력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픈 기억을 내려놓으려고 해요.

당신도 나에게 그걸 바라지 않을까요?

우리가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 함께 웃고 기뻐했던 날들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당신이 좋아했던 음식, 함께 걸었던 길, 우리만의 추억을 되새기며

하루하루를 보낼 거예요.

당신은 늘 내 곁에서 웃어주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정숙 씨,

오늘 밤엔 당신과의 좋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편안히 잠들어보려 해요.

당신도 그곳에서 평안하기를,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요.

당신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내겐 소중한 선물이었어요.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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