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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그날의 온기, 그리움으로 남다

따뜻한 기억을 품은 겨울날의 김밥

by 시니어더크


2024.12.12 (목) 맑음


정숙 씨,

오늘은 기온이 그리 낮지 않은데도 유난히 춥게 느껴졌어요.

오후에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려고 나갔는데,

아들은 춥지 않다더군요. 그런데 나만 혼자 추위를 느꼈습니다.

아들은 학원 끝나고 고읍동 집에서 자고 온다며 자동차를 두고 가겠다고 했어요.

내일은 딸이 차를 써야 하니 이렇게 서로 배려한 거지요.


우리 아이들, 남매인데도 정말 사이가 좋아요.

자동차가 한 대라서 탈 때 겹치기도 하는데, 싸우지 않고 늘 서로 양보하고

방법을 찾더라고요.

당신도 알겠죠? 어릴 때부터 둘이 크게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어요.

집안 행사가 있을 때면 늘 힘을 합쳐서 파티 준비를 돕곤 했잖아요.

아들은 당신처럼 착하고,

딸은 당신처럼 속이 깊어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늘 다투지 않고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란 영향도 있겠지요.



며칠 전에는 딸이 식사 중에 자동차를 한 대 더 사야 할지 물어보더라고요.

자동차 회사에 다니다 보니 직원 할인으로 싸게 살 수 있다면서요.

나는 급하면 사도 되지만

지금처럼 둘이 잘 타고 다닌다면 굳이 필요 없다고 했어요.

아무리 싸게 산다 해도 자동차세, 보험료, 기름값까지 감당하려면

돈이 꽤 들어가잖아요.

딸도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답니다.



오늘은 딸이 출근을 했고,

나는 낮에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준 뒤 저녁 준비를 했어요.

오는 길에 농협 하나로마트에 들러 아들이 좋아하는 대봉감과 딸이 좋아하는 딸기를 샀지요.

당신도 있었으면 좋아하는 딸기를 맛있게 먹었을 텐데요.

참 신기하죠? 전에는 과일을 잘 안 먹던 당신이,

아픈 뒤로는 과일을 제법 즐겼잖아요. 키위, 사과, 딸기, 바나나, 귤...

오늘 마트에서 과일을 보며 당신이 떠올라 한참 서 있었습니다.







저녁으로는 김밥을 만들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만든 김밥이에요.

당신이 참 좋아하던 음식이잖아요.

당신은 늘 내가 만든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하곤 했죠.

그래서 오늘도 당신 생각하며 정성을 다했어요.

계란, 단무지, 당근, 시금치, 햄, 어묵, 게맛살... 그리고 우엉을 추가해 네 줄만 말았어요.

아들이 집에 없으니 남을 것 같아서요.

이것도 남는다면 내일 아침으로 먹어도 괜찮겠지요.

김밥과 함께 먹으려고 어묵국도 끓였답니다.


요즘은 당신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던 그때가 참 그립습니다.

당신이 있을 때는 늘 당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걸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이제는 아이들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고민하게 되네요.

그래도 배달음식은 되도록 피하려고 해요.

집에서 만든 음식이 건강에도 좋고, 아이들도 더 좋아하니까요.



저녁 준비를 마치고 실내 자전거를 탔는데, 또다시 당신 생각이 밀려왔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울기도 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애쓰지 않기로 했는데, 쉽지가 않네요.

하지만 억지로 당신을 잊으려고 하지는 않을 거예요.

당신은 내 삶의 한 부분이고, 여전히 내 곁에 있는데 잊으면 안 되잖아요.

당신이 남긴 추억들이 내 머리와 가슴속에 가득합니다.


정숙 씨,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있는 그곳은 춥지 않을 거라 믿어요. 따뜻하고 평온한 곳에서

잘 지내고 있겠죠?

내가 당신을 만나러 가는 날, 우리 그날처럼 환하게 웃으며 다시 만나요.

그때까지 당신이 내 곁에서 늘 함께한다고 믿으며 살아갈게요.


사랑합니다. 정숙 씨

당신의 반쪽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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